[매경 MBA] CEO는…의사결정자 아니다 최고실험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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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애드센스 서비스로 올해 1분기만 34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전체 매출의 22%에 달했다. 애드센스는 콘텐츠와 관련된 광고를 붙이는 서비스다. 애드센스는 구글 엔지니어 폴 부크하이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그는 구글의 이메일 서비스인 지메일에 광고를 붙이자는 생각을 했다. 이메일 콘텐츠와 밀접히 관련된 광고를 붙이면 사용자가 좋아할 것 같았다.

그러나 당시 구글 임원이던 메리사 메이어 현 야후 CEO는 부크하이트의 제안을 거부했다. 프로토타입(시제품)도 못 만들게 했다. 하지만 부크하이트는 상사 의견을 무시했다. 밤을 새워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메이어의 출근 전인 오전 7시에 구글 직원들에게 배포했다. 출근한 메이어는 이메일을 열어보고는 처음에는 언짢았다. 이메일 옆에 광고가 붙어 있었다. 부하 직원이 자신의 지시를 무시한 게 분명했다. 그러나 웬걸, 메이어는 광고가 유용해 보였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스탠퍼드대에서 연설할 예정이라는 메일 옆에는 고어가 쓴 책 광고가 붙어 있었다. 고어 연설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필요한 정보였다. 프로토타입을 이용한 다른 사용자들도 마음에 들어했다. 이 같은 사용자 반응이라는 데이터를 근거로 메이어는 자신의 생각을 바꾼다. 지메일 콘텐츠와 연결된 광고를 출시한다. 이는 구글의 효자 상품인 애드센스의 출발이었다.

이 일화는 리더의 역할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지금껏 리더는 최고의사결정자로 여겨져 왔다. 의사결정이 리더의 핵심 역할인 줄 알았다. 그러나 메이어가 의사결정자라는 리더 역할에 충실해 당초 자기 결정을 고집했다면 애드센스는 사장됐을 것이다. 애드센스는 부크하이트의 ‘실험’덕분에 빛을 보았다. 부크하이트는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메이어를 포함한 사용자를 대상으로 테스트를 했다. 그리고 사용자의 긍정적 반응이라는 데이터를 얻었다. 그러자 메이어는 자신의 결정을 버리고 실험 결과를 받아들였다. 덕분에 구글은 애드센스를 통해 올해에만 136억달러(약 15조원)의 매출을 올릴 전망이다.

혁신에 관한 한 세계 최고 석학 중 한 명인 제프 다이어 미국 브리검영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애드센스 사례를 들어 “CEO를 포함해 리더는 더 이상 최고의사결정자(chief decision maker)가 돼서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 다이어 교수는 “불확실성이 점점 가중되는 오늘날 리더의 의사결정은 기껏해야 추측(guessing)에 불과하기 때문인데 추측에 회사 운명을 맡겨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리더는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 것일까. 다이어 교수는 “최고실험가(chief experimentor) 역할을 해야 한다. 부크하이트가 했듯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소비자를 대상으로 테스트하고 실험하는 문화를 창조하고 이끌어내는 최고실험가의 역할이야말로 리더가 해야 할 일이다. 그래야만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결국 구글처럼 실험과 테스트를 통한 의사결정이 리더의 의사결정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다음은 다이어 교수와 일문일답한 내용.

―리더가 아무 결정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닐 것 같은데.

▶대부분의 리더들은 ‘한다/안 한다(go/no―go)’식의 의사결정에 익숙해져 있다. ‘한다’는 결정은 어떤 프로젝트에 자원을 투입해 계속 추진한다는 뜻이다. 반면 ‘안 한다’는 결정은 해당 프로젝트를 죽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혁신을 추구하는 리더들은 이런 ‘한다/안 한다’는 결정은 하지 않는다. 여러 아이디어 중에서 어떤 아이디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도 결정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는 의사결정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혁신 리더들은 이렇게 말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알기 위해 실험을 해보자”고 말이다. 이는 혁신 리더들을 최고실험가인 이유다.

―지금껏 리더는 어떤 일을 할지 안 할지를 결정하는 대신 책임을 지는 자리로 인식돼왔다. 이 같은 인식 자체가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리더는 지금껏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을 주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질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팀에서 누군가가 “우리는 X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 리더는 “우리가 X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알기 위해 실험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팀 안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역할 변화를 리더들이 수용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 의사결정 권한을 포기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판단이나 아이디어가 기껏 추측에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리더에게 정신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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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가 의사결정자가 아닌 실험가가 되면 자신의 기존 권한을 포기해야 한다는 게 왜인가. 예를 들어달라.

▶리더의 아이디어와 일반 직원의 아이디어를 동급으로 취급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혁신 기업인 인튜이트(Intuit) 창업자인 스콧 쿡은 이런 말을 했다. “브래드 스미스 CEO와 나는 다른 직원들과 똑같은 규칙을 지켜야 한다. CEO나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되면, 이 믿음이 근거하고 있는 가정은 무엇인가를 묻게 된다. 그러고는 이 가정을 테스트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찾게 된다. CEO나 창업자라고 해서 내 아이디어를 테스트 없이 실행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 다른 직원들의 아이디어와 똑같이 대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험은 장식물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결국 CEO가 자신의 의견·아이디어를 조직에 강요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CEO 입장에서는 자신의 권한을 포기하는 것이다.)

―최고 실험가로서 역할을 한 리더의 예를 들어달라.

▶최고 실험가형 리더들은 의사결정형 리더와는 세 가지 점에서 다르다. 첫째, 팀원들과 함께 맞는지 틀렸는지, 성공할지 실패할지가 불분명한 아이디어를 찾아낸다. 둘째, 이 같은 아이디어를 빠르게 테스트하는 실험을 한다. 셋째, 실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로 의사결정을 한다. 이 같은 세 가지 특성에 부합되는 대표적인 리더라면 스콧 쿡 인튜이트 창업자, 제프 베저스 아마존 CEO, 앨런 머스크 테슬라 CEO 등을 꼽을 수 있다.

―기업은 리더를 의사결정자가 아닌 실험가로 키워야 할 것 같다. 모범 사례가 있다면.

▶쿠키 회사 크래프트(Kraft)가 있다. 이 회사는 1984년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10억달러 매출이 목표였으나 2006년에도 1억달러 매출에 그쳤다. 크래프트는 3명의 고위급 리더를 중국에 보내서 백지 상태에서 중국 사업을 재검토하게 했다. 그러고는 1년 동안은 마음대로 어떤 변화도 추진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3명의 팀원은 잠재 고객들을 직접 만나 대화했다. 이를 통해 고객의 문제를 이해했다. 그러고는 고객의 문제를 푸는 해결책과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3명은 기존 사업의 틀을 깨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오레오 쿠키(크래프트를 대표하는 쿠키)를 저비용으로 대량 생산하는 기존 접근법을 포기하면 어떻게 될까” “오레오 쿠키를 둥글게 만들지 않아도 여전히 오레오일까” 등이었다. 이 같은 아이디어가 옳은지를 테스트하기 위해 크래프트는 중국에서 20개 이상의 오레오 신제품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이 중에서도 전통적인 오레오보다 단맛이 덜하고 빨대 모양의 오레오가 히트했다. 그 결과, 크래프트는 중국 매출이 6배로 급증했고, 오레오는 중국 최고의 쿠키 브랜드가 됐다. 이 같은 성공은 3명의 리더가 실험가로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존의 한계와 틀을 뛰어넘는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생각해냈다. 그런 다음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이 같은 아이디어를 테스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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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메일·애드센스 등 메가 히트 제품과 구글글라스 등 시장의 판을 바꿀 제품의 프로토타입을 하루 새 만들었다는 게 신기하다.

▶특별한 일이 아니다. 구글·인튜이트·밸브 등의 기업에서는 프로토타입을 24~48시간 이내에 만드는 게 일반적이다. 눈에 보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으로서 아이디어를 탐색하고, 경험하고 평가할 수만 있다면 어떤 것이든 프로토타입이라고 할 수 있다.(구글글라스는 종이, 옷걸이, 헤어밴드, 펜, 젓가락, 바인더클립 등 흔한 재료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그러고도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주인공 톰 크루즈가 손짓만으로 화면을 컨트롤하는 것과 같은 경험을 창조했다. 이는 아무리 최첨단 기기라도 젓가락과 같은 간단한 도구로 손쉽게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실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실험한 다음에는 제품을 만들게 된다. 혁신 기업은‘경탄할 만한(awesome)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경탄할 만한 제품은 고객을 기쁘게 하는 제품이다. 고객이 미처 몰랐던, 또는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하는 제품이 고객을 기쁘게 만든다. (기존과 다른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혁신 고객과 얼리어답터는 재빠르게 수용한다. 그러나 대중 고객(majority)은 그렇지 못하다. 대중은 결점이 없는 확실한 제품을 원한다. 다이어 교수는 제품에 경탄할 만한 특성이 있어야 대중 고객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피봇(pivot) 개념은 매우 인상적이다. 실리콘밸리 창업가에서 피봇은 유행이라고 들었다.

▶피봇은 원래 농구 용어다. 한 발을 고정한 채 (다른 발을 움직여) 방향을 바꾼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창업가들이 기존 아이디어를 완전히 버리지 않고, 아이디어에 변화를 줘서 방향을 바꾸는 것을 피봇이라고 한다.(결제시스템 업체인 페이팔은 피봇을 통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막스 레브친 페이팔 창업자는 애초에 보안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그러나 6차례에 걸친 피봇을 통해 결제시스템으로 모습을 바꾸어 대박을 터뜨렸다.)

―피봇은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 피봇을 멈추고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구해야 할 때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 12~18개월 사이에 6~7차례 피봇을 크게 하고도 소비자 반응이 급격히 좋아지는 단계(피봇 테이크오프·Pivot Takeoff)가 오지 않으면 피봇을 멈추는 게 좋겠다. 이를 규칙으로 정해 따라도 된다.

―브래드 스미스 인튜이트 CEO는 “실험가형 리더들은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처럼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혁신가인 잡스처럼 되지 말라는 게 의외다.

▶혁신을 이끈 리더라고 하면 잡스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MP3플레이어인 아이팟을 예로 들어보자. 잡스는 엔지니어들에게 1000곡을 저장할 수 있고, 주머니 속에 쑥 들어가는 아이팟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잡스는 조직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리더가 결정하는 방식을 따랐다. 그러나 실험가형 리더는 그렇지 않다. 팀원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도록 지원한다.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어 생각하도록 격려한다. 구글의 무인 자동차 개발 등이 이런 예다.

―혁신의 방법 5단계(그림 참조)를 제시했다. 단계마다 아이디어를 내고 실험하는 게 가능한 것인가.

▶그렇다. 단계마다 우리가 직면하는 불확실성 문제를 풀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테스트해야 한다.

■ He is…

제프 다이어(Jeff Dyer)는 미국 브리검영대 매리어트 경영대학원 교수로 세계적인 혁신 전문가다. 맥킨지상을 받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혁신가의 DNA(The Innovator’s DNA)’ 저자다. 이 책 이름을 딴 컨설팅 회사를 설립했다. 최근에는 ‘혁신가의 방법(The Innovator’s Method)’이라는 책을 냈다. 부산에서 선교사로 2년간 일해 한국과 인연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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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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