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모의 ‘드러커式 세상 읽기’] ‘경영의 神’ 눈으로 드라마 ‘미생’ 보기

기업에 유토피아는 없다 – 조직엔 열정·성장 외에도 불통·탐욕·부패 함께 존재… 조직이 제대로 성과내려면 강제·자유방임 극단은 금물
좋은 상사는 어떤 사람? – 인간성 좋은 상사가 늘 따를 만한 리더는 아냐… 공동의 목표 달성하기 위해 후배 능력 키워주는 게 진짜

미라위즈 대표·피터드러커 연구가
미라위즈 대표·피터드러커 연구가

요즘 신출내기 인턴사원의 애환을 그린 드라마 ‘미생(未生)’이 인기다. 조직 생활 경험이 있는 이들의 진한 공감을 자아낸다. “맞아, 우리도 그때 그랬어.” “직장이란 게 인간들이 원래 다 그래.”

시중의 경영 서적과 언론 지상에는 화려한 성공 사례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게 더 드라마 같다. 현실에서 언제나 상사는 밉고, 부하는 보기 싫다. 일은 언제나 스트레스이고, 혁신과 창의는 윗사람들의 구호에 불과하다. 세계적인 경영 구루들이 던지는 설교들은 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일 속에서 보람을 느끼며 개인의 발전과 조직의 성장을 함께 이룰 수 있는 꿈의 직장, 아니 한 수 접어서 인간 중심의 직장은 흔치 않다. 미생이 그리는 것처럼 조직에는 열정, 소통, 혁신, 성장 같은 밝은 면 못지않게 소외, 갈등, 불통, 아집, 탐욕, 부패 같은 어두운 면이 의외로 많다.

케이블 채널 드라마‘미생’의 한 장면. 조직생활의 애환을 세밀하게 잘 묘사하고 있다는 평을 받으면서 화제를 부르고 있다.
케이블 채널 드라마‘미생’의 한 장면. 조직생활의 애환을 세밀하게 잘 묘사하고 있다는 평을 받으면서 화제를 부르고 있다. / tvn 제공

흔히 인간 중심 경영이라고 하면 직원을 가족처럼 대하고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합의된 목표와 분명한 성과 책임을 부여하지 않으면 이런 자유는 대부분 조직을 무력화시킨다. 조직이 진정으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권력의 집중을 통한 과도한 강제나 극단의 자유방임 어느 쪽도 답이 아니다.

어찌 보면 이율배반일 수 있다. 적어도 논리상으로 자유주의와 전체주의는 양립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러커는 연방 분권화(Federalized Decentralization)와 목표 관리제(MBO·Management by Objectives) 그리고 적절한 탈(脫)인간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연방 분권화는 개별 부서들로 하여금 자신의 성과 목표 수립과 자원 조달 방식에 대해 독립된 의사 결정 권한을 부여하되 이를 총괄하는 별도의 중앙 조직을 두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사업부제가 그와 유사하다.

목표 관리제는 조직의 최고 목표를 설정하고 그를 위해 하위 조직이 달성해야 할 목표의 체계를 구축하고 점검하는 것이다. 드러커는 제너럴모터스(GM)가 1940년대에 차종별 사업부를 독립 기업처럼 운영하는 방식에서 이를 착안했다.

목표 관리제는 관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실무자에 이르기까지 조직의 전체 위계에 속한 구성원 모두가 스스로 경영자처럼 자신의 목표를 스스로 설정해야만 작동한다. 여기에서 ‘자유’는 개인이 자신의 목표를 스스로 결정하고 달성하도록 하는 부분에 있다. 물론 이 자유에는 목표 달성의 ‘책임’이 동시에 부과되어야 한다. ‘예속’은 모든 하위 목표가 반드시 조직의 최상위 목표에 기여하는 방식으로만 구성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자유와 다르다. 이것이 드러커가 도달한 자유와 복종 사이의 절충점이다.

둘째, 드러커는 비록 인간을 위한 경영을 강조했지만 그를 위하여 오히려 탈인간화, 즉 인간의 요소를 배제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보았다. 경영자의 의사 결정은 목표, 성과, 측정이라는 탈인간적 대상에 집중하여야 하며 개인의 인성, 배경 또는 사적인 호불호가 개입되면 안 된다. 조직의 여러 자리에 친한 사람을 앉히지 말고, 그 일에 강점이 있는 사람을 배치하라는 주문도 그런 맥락이다. 분권화와 목표 관리제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작동해야 한다. 인간 사이에 정치와 파벌, 아첨과 비방이 개입할수록 조직은 죽는다.

마찬가지로 탁월한 리더는 결코 특정한 인간 유형으로 규정할 수 없다. 리더십은 철저하게 목표를 달성하는 능력과 그에 봉사하는 습관에 달려 있을 뿐이며 그의 성격, 외모, 취향, 지식, 배경의 문제가 절대 아니다.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인간성 좋은 상사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직원을 능력 있는 지식 노동자로 개발시켜 주는 리더를 따른다.

물론 사람의 요소를 전혀 무시해서는 안 된다. 리더의 성실성이나 진정성은 단지 일에서뿐만 아니라 사람의 모습으로 항상 드러나기 때문이다. 인간의 요소, 즉 조직 내에서 사람 사이에 생성되는 감정이나 비공식 관계의 요소는 조직이 성과를 달성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을 수준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요조건일 뿐 결코 충분조건이 아니다.

인간 중심의 경영에서 인간의 요소가 일정하게 배제되어야 하는 이유는 인간성이 내포한 크나큰 결함 때문이다. 무지, 탐욕, 편견, 폭력성, 나태는 인간이 가는 모든 곳에 따라다닌다. 기업 경영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바로 사람과 함께 일하되 사람의 이런 결함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주의해야 한다는 데 있다.

드러커는 이 세계에서 유토피아는 결코 존재하지도 않고 또한 달성할 수도 없다고 보았다. 이성(理性)인 동시에 동물(動物)로서도 존재하는 불완전한 인간은 현실에서 기껏해야 견딜 만한(tolerable) 사회를 만들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땅의 수많은 미생은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 가는 주역들로 기꺼이 모두의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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