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MBA] 채찍이 성공하는 기업가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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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적 경영자는 채찍질(Whiplash)로 빚어지는가. 영화 ‘위플래쉬’를 감상한 한국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애정과 사랑으로 직원들을 다루라고 강조하는 요즘 경영학자들의 뻔한 이야기에 느껴왔던 환멸과 염증이 일순 씻기는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내가 임직원들에게 심하게 대한 이유도 대머리 플렛처 교수처럼 시련을 주기 위해서였어”라고 셀프(self) 변론을 곱씹으면서 말이다. 사실 지독한 채찍질만 가해대는 윗사람이 등장하는 영화는 위플래쉬가 처음이 아니다.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1973)에서는 집요한 질문세례를 퍼붓는 킹스필드 교수가 있었다. 록키(1976)에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록키 발보아를 향해 고함을 치던 늙은 코치 ‘미키’가 나왔다. 사관과 신사(1982)에서 주인공 리처드 기어에게 얼차려를 퍼붓는 흑인 하사관 에밀 폴리를 기억하는가. 하지만 이 영화들은 너무 해피엔딩 일색이라 리얼리티가 없다.

현실에서 임직원을 괴롭히는 경영자의 마음은 영화 ‘위플래쉬’의 결말처럼 모호하기 짝이 없다. 그들이 가혹행위를 저지르는 이유가 과연 쓰러져 가는 이 시대의 기업가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그저 자신들의 변태적 이기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인가? 한국의 최고경영자 중에는 유독 임직원들에게 엄격하다고 소문난 사람이 많다. 대기업에는 ‘회장님 방에서 얻어맞고 돌아온’ 임원 이야기가 전설처럼 돌아다닌다. 하지만 그들이 왜 그렇게 충격과 공포 요법을 선호하는지에 대한 진짜 이유는 마치 ‘위플래쉬’의 결말처럼 아무도 모른다. (가해자들은 과연 알고 있을까?)

매경 MBA팀은 이 궁금증을 조금 더 발전시켜 보고자 했다. 경영학자들에게 영화를 보여 준 뒤 무대를 음악학교가 아니라 기업 경영 현장으로 치환시켜 본 것이다. 화두는 하나. ‘주인공 앤드류를 괴롭힌 플렛처 교수의 채찍질이 과연 이 시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기업가정신을 가진 천재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였다.

이를 위해 상반된 입장의 두 사람을 인터뷰했다. ‘채찍이 없는 경제 시스템은 허구다’라는 주장을 담은 책 ‘러시’의 저자인 토드 부크홀츠는 기꺼이 플렛처 교수의 편에 서겠다는 용기를 보여 줬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인 ‘상사를 내 편으로, 부하를 심복으로’의 저자인 에이드리언 고스틱은 부크홀츠의 채찍질 같은 입담에 현혹되지 말라며 이메일을 수차례 매경 MBA팀에 보냈다. 두 사람의 설전은 사회자의 질문 →대답 →상대방에 대한 추가 질문 →응답 등 모두 2라운드에 걸쳐 이뤄졌다.

부크홀츠는 “플렛처 교수는 주인공 앤드류를 천재 드러머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며 “그 근본 비결은 학생(앤드류) 스스로가 ‘나는 세계 최고 드러머가 되기 위해 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끔 만들었다는 데 있다”고 했다. 오늘날 기업인들에게는 조금 안락한 삶을 희생하는 대신 보다 더 큰 존재가 되어 보겠다는 ‘헝그리정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99.9%의 응답자들은 이 질문에 대해 ‘아니다. 나는 좀 더 편안하게 살고 싶다’라고 대답할 것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이런 후학들의 나태함을 뻔히 보고 있는 선배들 마음 한편에 플렛처 교수와 같은 광기가 깃드는 것도 당연한 게 아닐까?

고스틱은 이에 정면으로 반대했다. 그는 “플렛처는 전혀 성공하지 않았다. 대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성공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재능 있는 청년들의 삶을 망가뜨리고 직장을 잃게 만든 리더가 어떻게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기업경영자가 있다면 종업원을 파괴하고 결국 기업의 명성을 해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고스틱은 대신 “오늘날 기업인들에게는 협업이 더욱 중요하다”고 밝혔다. 혼자 잘났다는 정신이 필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작업하고 집단지성을 잘 활용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플렛처 교수가 보여 줬던 광기는 협업을 방해하는 암적인 존재라는 게 고스틱의 생각이다.

부크홀츠는 최고경영자의 가혹행위가 협업을 방해한다는 증거는 없다고 반박하면서 미국의 전직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를 사례로 든다. 키신저는 갓 들어온 백악관 인턴에게 아시아에 관한 외교정책 보고서 초안을 작성해 오라고 시켰다. 인턴이 보고서를 들고 오자, 키신저는 물었다. “이게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보고서냐?” 인턴은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다시 한 번 해 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며칠 뒤 인턴이 돌아오자 키신저는 또 한 번 물었다. “진짜로 이게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담은 보고서 맞느냐?” 인턴은 또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한 번 더 해 보겠습니다”라고 했다. 키신저는 일곱 번 더 인턴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고, 인턴은 그때마다 보고서를 다시 썼다. 아홉 번째가 되자 인턴은 급기야 “한 글자도 수정할 게 없습니다”라고 했다. 키신저는 고개를 들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번 보겠네.”

오늘날 청년 실업이 사회적 문제이다 보니 ‘희망고문’이나 ‘열정페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하지만 인턴이 아홉 번 원고를 다시 쓴 것이 과연 희망고문이나 열정페이인가? 오히려 더 큰 애정과 협업의 발로로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두 사람의 격정적 논쟁이 아래 관련기사에 펼쳐진다. ◆ 영화 ‘위플래쉬’ 논쟁…토드 부크홀츠 vs 에이드리언 고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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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플래쉬’에는 학생을 천재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채찍질을 가하는 교수(플렛처)가 등장한다. 끊임없이 채찍질을 가하는 ‘독한’ 경영자가 성과를 더 좋게 낼까? 아니면 인화와 단결을 중시하는 ‘화합형’ 경영자가 더 좋은 성과를 낼까? 상반된 주장을 하는 두 명의 전문가 의견을 들어봤다.

―사회〓사례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전개해 주길 바란다.

▷고스틱〓나는 신입직원들 중 한 사람을 콕 찍어서 스타로 만드는 것을 즐겨하는 상사를 모신 적이 있다. 공개적으로 그 스타에 대한 칭찬을 하고, 그렇지 않은 나머지 신입사원들은 깎아내리기 일쑤였다. 아마 이런 방법을 통해 애정을 못 받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도 열심히 해봐’라는 메시지를 주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결과가 어땠을 것 같나? 재앙이었다. 신입사원 모두 그 스타를 미워했다. 이 전략을 쓴 상사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두 사람이 회사를 나가자 생산성은 치솟았다. 회사 내에서 플렛처 교수와 같은 채찍질은 아무 실익이 없다. 플렛처의 전략은 약자를 먼저 솎아내는 방식이다. 나갈 사람은 빨리 나가라는 식이다. 그러나 오늘날 기업 경영 환경에서 CEO들은 한 명의 천재가 아니라 다수의 인재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고 한 사람의 스타를 만드는 기업문화는 독배와 같다.

▷부크홀츠〓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하고 싶지는 않다. ‘채찍과 당근’ 중 당근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고스틱 씨 같은 사람들의 주장은 너무 흔해 빠졌다. 오히려 더 중요하고 심각한 질문이 이 영화에는 숨겨져 있다. ‘리더들은 대체 언제 채찍질을 써야 하는가?’이다. 예를 들어 적절한 채찍질이 없었다면 미국의 흑인들은 아마 지금도 버스 뒤쪽 ‘흑인 지정석’에만 앉아야 있을지도 모른다. 1960년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버스 안에서 흑인들의 격리조치를 없애는 시민인권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데 실패한 채 세상을 떴다. 정작 이 법안을 통과시킨 사람은 성질 고약하다고 소문난 린든 존슨 대통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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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백악관 보좌관들이 마음에 안 들면 옷을 몽땅 벗겨 수영장에 세워놓고 그들 성기의 기능성에 대한 농담을 즐겨했다고 한다. 진짜 악명 높은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그는 흑인들에게 버스에 자유롭게 앉을 수 있는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공화당 민주당 가리지 않고 상원의원들의 팔을 무자비하게 비틀었다. 1964년에 관련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자유의 승리였지만 동시에 채찍질의 승리이기도 했다.

―사회〓현재 기업의 업무 환경은 어떤 상황이라고 보는가? 플렛처와 그의 채찍질이 필요한 환경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부크홀츠〓플렛처의 채찍질은 오늘날 현장에서 구경하기 어려운 극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미국에서는 현장학대보호법이 있어서 변호사들이 플렛처 같은 경영자나 작업반장을 물었다 하면 엄청난 배상금을 받아낼 수 있다. 그리고 회사에 고용된 임직원들은 자신들에게 선택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하고 언제든지 회사가 마음에 안 들면 때려치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플렛처 같은 악역이 탄생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 기업 내부경쟁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970년대 미국의 GM이 쇠락해간 이유도 캐딜락, 뷰익, 쉐보레 등 각종 브랜드들끼리 해외에서 경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멘토 중 한 사람인 줄리언 로버트슨(타이거펀드를 만든 전설적 투자자)은 1980~1990년대에 헤지펀드 포트폴리오를 짜기 위해 임원들을 불러놓고 토론하길 즐겨했다. 그 토론장은 일종의 전쟁과도 같았는데 이긴 사람이 150억달러의 투자 포트폴리오 중 일부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모두 죽기살기로 했다. 나는 타이거펀드의 전무로 일했었는데, 몇몇 동료들은 이런 토론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로버트슨의 방식 덕분에 펀드는 20년 동안 30% 이상의 연평균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지금은 이런 방식의 경영 현장을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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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틱〓부크홀츠의 설명과는 반대로 지금도 수많은 작업현장에서 가혹행위와도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혹독한 경영자나 중간관리자들은 보통 주주들이 원하는 수치들을 맞춰서 내기 때문에 자리를 유지하는 경향이 많다. 임직원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전혀 신경도 안 쓰는 사람들이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라. 그들이 한둘 정도 있으면 임직원들의 사기는 떨어지게 마련이고, 이직률도 높아진다. 게다가 회사 전체의 명성에 악영향도 끼친다. 영화를 보면서 플렛처 교수가 대학에서 해고된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미친 것도 중요한 문제인 데다, 만일 그가 기업경영자였다면 소송도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학교(또는 회사)의 명성에 먹칠을 한 것이다. 그의 행동이 조직의 이름과 간판에 끼친 해악은 갚지 못할 정도로 크다 할 수 있다.

―사회〓이제 상대방에게 질문을 해 보길 바란다. 먼저 고스틱 씨.

▷고스틱〓부크홀츠 씨에게는 딸 셋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플렛처 같은 선생에게 교육을 맡기겠는가?

▷부크홀츠〓태권도 사범님이나 심리치료사를 고용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돈이 많지 않은 한 플렛처에게 아이들을 맡기진 않을 것이다.(웃음)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던진 질문들은 유효하다. 이번엔 내가 질문을 던져 보겠다. 채찍질이 존재하지 않는 경제가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고스틱〓워싱턴대의 존 가트맨이 연구해 보니 결혼생활에서 긍정적 상호작용이 5건 있으면 1건은 부정적 상호작용이 있어야 이상적이었다. 당근과 채찍도 비슷한 숫자가 황금비율 아닌가 한다. 채찍이 없는 경제는 나태해진다. 그러나 당근이 없는 경제가 있다면 그게 바로 지옥이다.

▷부크홀츠〓그렇다면 당신은 잡스 같은 이기적 천재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그들이 받고 가했던 채찍질과 스트레스는 5대1 정도로 작은 것이 아니었다.

▷고스틱〓잡스 같은 천재 몇 사람이 모든 혁신적 제품들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혼자 다한 게 아니라 그의 팀이 한 것이다. 잡스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기쁘게 하고 일을 시킬지 알았던 영리한 사람이었다. 잡스는 사망 몇 개월 전 TV 인터뷰에서 각종 사내 토론이 벌어지면 자신이 종종 지곤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부크홀츠〓디즈니의 마이클 아이스너는 직원들에게 가혹하기로 유명했지만 기업가치를 18억달러에서 700억달러로 성장시켰다. 주주들은 이런 CEO를 선호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닐까?

▷고스틱〓뉴욕타임스 기사를 찾아보니 아이스너는 더 이상 이사회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모양이다. 부끄러운 일 아닌가. 사람들의 환영을 받기는커녕 밤중에 도망가듯 CEO 직을 사임해야 했다. 그가 디즈니를 위해 기여했던 수많은 업적들은 다 묻혀 버렸다. 그 이유는 아이스너가 다른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군림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내가 역으로 질문을 해 보자. 부크홀츠 당신이 주주라면 플렛처나 아이스너 같은 유형의 리더들에게 핵심 고객 응대를 하게끔 맡겨두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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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크홀츠〓진짜 친한 고객이 아니라면 그렇게 하진 못할 것이다. 나는 그냥 그를 내 곁에 두는 것만으로 족하다. 천재를 가까이 두는 진짜 이유는 내 경쟁자들이 데려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위플래쉬 영화가 나오던 해 오스카상 후보였던 영화가 2개 더 있었다. 나치 시대 암호를 해독한 수학자의 이야기를 다룬 ‘이미테이션게임’과 스티븐 호킹 박사 스토리가 나오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다. 두 영화는 모두 실화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리고 두 영화 모두 특별한 대우가 필요했던 특별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영국 정부가 ‘이미테이션게임’의 주인공인 알란 터닝을 변덕스럽다는 이유 때문에 학교로 돌려보냈다면 아마 나치의 암호를 해독하지 못했을 것이다. 케임브리지대학교가 스티븐 호킹 박사의 장애를 문제 삼아 집으로 돌려보냈다면 우주의 비밀은 지금껏 풀리지 않았을지 모른다. 플렛처나 아이스너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의 특별한 방식으로 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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