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잘팔리는 옷 파악해 실시간으로 제작… 빨리빨리 무기로 年 수십조원 쓸어담는 ‘패스트 패션’

디자이너·공장·창고·매장이 맞물려…소비자가 원하는 제품 2주 만에 내놔
매장엔 대중적인 사이즈만 진열…소비자 만족하고 재고 줄일 수 있어

펠리페 카로 UCLA 교수
펠리페 카로 UCLA 교수

지난 5일 스페인의 의류 기업 인디텍스의 시가총액은 사상 처음으로 1000억유로(약 136조원)를 돌파했다. 한국 기업 가운데 인디텍스보다 시가총액이 큰 기업은 삼성전자(27일 기준 157조1684억원)가 유일하다. 현대차(32조3806억원)와 비교하면 4배 이상 더 큰 셈이다.

사양 산업으로 분류되던 의류 산업에서 이 기업은 대체 어떻게 성장한 것일까? 인디텍스는 SPA(제조·유통 일괄형 의류) 브랜드로 잘 알려진 자라(ZARA)의 모기업이다. 전 세계 88개국에 2000개가 넘는 매장을 보유한 간판 브랜드 자라의 선전 덕분에 지난해 인디텍스의 매출은 약 181억유로(약 24조6000억원)를 기록했다.

비단 자라만이 아니다. H&M·유니클로 등 SPA 브랜드들은 각국마다 경제위기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H&M과 유니클로의 매출은 각각 24조원, 11조원에 달했다. 자라·H&M·유니클로 같은 SPA 브랜드는 생산부터 판매까지 직접 관리하면서 시장 흐름에 맞춰 빠르게 신제품을 내놓는 특성 때문에 ‘패스트 패션’으로 불린다.

펠리페 카로(Caro·35) UCLA 교수는 패스트 패션 기업의 성공 비결을 ‘스피드’로 꼽고 그 스피드는 디자이너, 공장, 창고, 매장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빠르게 돌아가는 시스템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물건을 적시에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력이 이 기업들의 핵심 경쟁력이라는 것.

카로 교수는 2005년부터 UCLA 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공급망 관리 및 재고 관리 분야 전문가다. 그는 패스트 패션 기업 자라를 연구한 논문으로 지난 2009년 미국 경영과학회(INFORMS)에서 수여하는 경영과학 분야의 최고 권위인 프란츠 에델만상(Franz Edelman Award)을 받았다. 학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그를 지난달 서울에서 만났다. 그는 패스트 패션 기업의 성공 요인을 4가지로 압축해 말했다.

패스트 패션

빠른 피드백

“자라의 신제품 제작 기간은 2주입니다. 거의 실시간으로 유행을 따라잡는 셈입니다. 예를 들어 5종류의 옷을 출시한 후 일주일 동안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핍니다. 소비자의 답변은 사내 시스템을 통해 스페인 본사의 자라 디자이너들에게 전달됩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5종류 중에서 많이 팔리는 옷 2~3종류만 더 생산합니다. 그리고 잘 팔리지 않는 옷을 대신할 새로운 디자인의 옷도 함께 선보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자라는 매주 두 차례 새로운 옷들을 매장에 내놓습니다.

이에 비해 한국의 패스트 패션 기업들은 대부분 계절별로 유행을 미리 예측해 옷을 대량으로 만들어 놓는 시스템을 택하고 있습니다. 만약 유행을 잘못 짚었다면, 옷은 팔리지 않고 재고는 기업의 몫이 됩니다. 재고 처리를 위해 옷을 할인된 가격에 팔고, 이익을 거두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물론 H&M처럼 트렌드 예측을 잘하는 능력이 있어 필요한 물량 대부분을 미리 생산하거나, 유니클로처럼 유행과 상관없는 기능 위주 제품을 미리 대량으로 내놓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패션 기업이 이들의 전략을 따라 할 수 있는 역량을 단시간 내 갖추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장의 흐름을 빠르게 쫓아가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매장 활용

“자라, H&M, 유니클로 같은 브랜드는 오프라인 매장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프라인 매장이 시장에 관한 정보를 획득하는 창구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매장을 통해 어떤 옷이 잘 팔리는지, 어떤 옷에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는지, 매장에서 소비자들이 무엇을 보고 옷을 사는지 등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야 합니다. 단순히 재고나 관리하는 역할만 해서는 곤란합니다.

사실 기업 입장에서는 온라인으로 옷을 판매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입니다. 재고를 한곳에 모아 관리할 수 있고, 판매 채널도 하나만 관리하면 됩니다. 오프라인 매장은 어떤가요? 매장마다 재고를 따로 관리해야 합니다. 게다가 매장 임대료도 내야 하고 재고 관리 비용과 운송 비용 부담도 온라인과 비교하면 더 큽니다. 한마디로 오프라인 매장을 유지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듭니다. 당연히 옷값도 비싸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걸 잘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판매 전략에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의사 결정에 반영해야 합니다.

아울러 패션 산업에서 오프라인 매장은 브랜드를 경험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자라나 H&M, 유니클로의 오프라인 매장이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알아보니 한국에서는 패션 브랜드가 오프라인 매장을 낼 때 따르는 제약이 많습니다. 가령 백화점에 매장을 낼 경우 매장 면적, 디스플레이를 마음대로 정할 수 없더군요. 최대한 브랜드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매장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패스트 패션

재고 최소화

“소비자들이 자라 매장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보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매장 한가운데에 있는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입니다. 매장에 디스플레이 된 옷이 마음에 들어, 옷 구매를 결정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마음에 드는 옷이 있는데 맞는 사이즈가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가게에서 원하는 사이즈를 찾지 못해 지친 소비자는 해당 브랜드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자라는 대중적인 사이즈(스몰, 미디엄, 라지)가 있는 옷만 진열장에 전시합니다. 만약에 해당 옷의 재고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사이즈만 남아 있다면, 그 옷은 진열장에서 치웁니다. 그리고 충분한 재고가 확보될 때까지 전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자라가 얻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자라에 가면 원하는 옷을 쉽게 찾을 수 있어’라는 소비자의 긍정적인 생각이 첫째입니다. 재방문이 많아지게 유도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재고가 많은 옷의 판매가 촉진됩니다. 아울러 자라는 어떤 매장에 어떤 옷이 얼마나 필요한지 결정하는 권한을 본사에 있는 디자이너와 관리자들이 가집니다. 만약에 어떤 옷이 인기가 있다고 칩시다. 각 매장 매니저들은 해당 옷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수량을 주문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 경우 예상 판매량보다 옷을 더 주문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이는 각 매장에 재고가 쌓이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를 막기 위해 자라는 본사에서 수요를 미리 예측하고, 이에 따라 각 매장에 옷을 공급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결국 본사에 있는 디자이너가 각종 정보를 통합해서 경영진에게 전달하고, 생산업자에게도 제공하는 역할까지 하는 셈입니다. 패스트 패션 기업에서는 빠르게 정보를 한곳에 수집하고, 전달하고 공유할 수 있는 중심축이 꼭 있어야 합니다.”

파트너십

“어떤 옷을 얼마나 생산할지 결정하더라도, 필요한 옷을 원하는 물량만큼 정해진 시간 안에 생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생산자와의 끈끈한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합니다. 단순히 많은 숫자의 생산자를 여럿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를 특히 잘하는 기업으로는 유니클로를 꼽고 싶습니다. 유니클로는 옷 100만벌을 주문하면, 아웃소싱 파트너에게 100만벌에 대한 돈을 미리 다 지급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유니클로와 공급업자 간에 신뢰가 쌓이는 것이죠. 1000만벌, 5000만벌을 주문해도 아웃소싱 생산업자는 자금 회수에 대한 걱정 없이 주문받은 물량을 다 생산합니다. 유니클로가 전체 금액을 지불한다는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회사가 주문하면 절반 정도만 생산한다고 합니다. 가령 글로벌 브랜드 A사의 경우는 절반 정도만 생산한다고 합니다. A사가 1000만벌을 주문하면 공급업자는 400만벌이 반품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600만벌만 생산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정작 필요할 때 공급이 안 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인데, 유니클로는 이 문제를 신뢰로 극복했습니다. 결국 유니클로는 아웃소싱 파트너와의 신뢰 구축을 통해서 수량의 유연성을 확보했습니다. 시장의 흐름을 쫓아갈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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