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빨리 성장하려는 회사, 직원은 바보가 된다

“천천히 가라” 조직 심리 전문가 로버트 서튼이 말하는 기업 성장 원칙

조직 심리학 전문가인 로버트 서튼 스탠퍼드대 교수

지난 2010년 미국 사무용품 업체 오피스 디포(Office Depot)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미스터리 쇼퍼(손님으로 가장한 조사원)가 매기는 점수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높은데, 매장의 매출은 계속 떨어지는 것이었다. 당시 오피스 디포의 대표였던 케빈 피터스는 직접 15개 주에 있는 70개 매장을 방문한 후 문제점을 깨달았다. 직원들이 미스터리 쇼퍼의 방문에 대비해 바닥을 쓸고 진열장을 채우는 일을 하느라 정작 고객의 질문과 요청에 덜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조직 심리학 전문가인 로버트 서튼(Sutton·사진) 스탠퍼드대 교수는 “오피스 디포처럼 규모가 큰 조직의 직원들은 인지 과부하의 덫에 쉽게 걸린다”고 설명했다. 인지 과부하란 각 개인의 능력을 넘어서는 과제를 줄 경우 잘못된 결정을 내리거나 과제를 수행할 의지를 아예 잃어버리는 상태를 가리킨다. 조직이 성장하고 커지면 조직원이 지켜야 할 절차와 해야 할 과제가 많아지는데, 이 과정을 겪으면서 조직원들이 정작 중요한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서튼 교수는 최근 출간한 책 ‘성공을 퍼트려라(Scailing up excellence)’에서도 조직이 성장을 위해 내달리다 보면 여러 가지 결정적인 실수를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성장의 속도와 크기에 집착하다 성장의 질이 떨어지고, 그 결과 조직 분위기가 흐려지는 것은 물론 성장에 필요한 핵심 역량도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튼 교수는 성공적인 성장을 위해 ‘더 빨리, 더 크게’를 고집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오히려 속도를 늦추고 지름길을 피하라고 말했다. 그는 “1명을 300m 전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1000명을 30㎝씩 전진시키는 것이 바로 진정한 성장”이라고 강조했다.

―대다수 기업인들의 관심은 성장의 속도와 규모가 아닌가요?

“그래서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조직에 혼란을 일으킵니다. 저는 이것을 ‘난장판’이라고 부릅니다.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을 A라고 한다면, 우선 의사결정자들이 A가 너무 좋은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조직에 이를 퍼트리기 쉽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도 A를 하라고 조급히 지시하죠. 이러다보면 직원들이 A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출 수가 없습니다. 어제까지 유능했던 직원이 순식간에 무능해지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나 시스템이라도 직원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기대만큼의 성장은 이룰 수 없습니다.”

―성장의 속도를 조절하라는 말씀인가요.

“성장에도 원칙이 있습니다. 기업의 핵심 역량, 핵심 경쟁력을 지키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가 돼야 합니다. 이를 위해 때로는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습니다. 페이스북의 경우 급성장하다보니 창업주인 마크 저커버그가 모든 직원에게 페이스북의 전략과 신념을 직접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페이스북은 ‘부트캠프’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신입사원에게 페이스북의 마음가짐을 심습니다. 20~30명의 신입사원에게 70~80명의 엔지니어를 멘토로 지정합니다. 엔지니어들이 직무를 벗어나 멘토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주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속도가 느려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페이스북의 경영진은 그만한 대가를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신념을 따르고 함께 호흡하는 사람들로 회사를 채워야 지속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시는 ‘난장판’을 피하기 위한 전략은 속도를 늦추는 것 외에는 없는 것인가요?

“더하기 대신 빼기와 나누기를 하세요. 조직이 커지고 사람이 많아질수록 규칙은 많아지고, 절차도 복잡해집니다. 과거에 좋았던 것들이 한순간에 한심한 것들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조직이 작아서 모든 직원이 관계를 맺거나 적어도 얼굴과 이름을 알 때는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정기적인 모임이 유용합니다. 그러나 조직이 커질수록 전원이 모여 생산적인 토론을 벌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조직을 작게 쪼개고, 각각의 조직이 필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세요. 쓸데없는 절차와 규칙을 없애, 사람들이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세요.”

―원론적으로는 쉽습니다만 실제로 그런 방법을 실행하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소프트웨어업체 어도비의 사례가 있습니다. 어도비는 지난 2012년 1만1000명에 달하는 전 직원에게 연간 실적 평가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대신 간부들이 팀별로 목표를 세우고 이를 수시로 점검하는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미리 정해진 형식이나 얼마만에 점검한다는 빈도도 정해놓지 않았습니다. 팀별로 직원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필요할 때 즉시 일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 결과 간부와 직원들은 팀의 성과를 위해 수시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간부들에게는 직원들의 급여 인상에 대해 이전보다 강력한 권한을 줬습니다. 중요한 것은 보상 자체보다 보상 시점입니다. 가능한 한 빨리, 개인적인 보상을 받아야 직원들에게 동기부여가 됩니다. 새로운 체계가 적용된 후 어도비에서 권고사직이나 구조조정을 통해 회사를 관두는 직원의 숫자는 50% 늘었고, 스스로 회사를 떠나는 직원의 숫자는 30% 줄었습니다. 무임승차하던 직원들은 버티지 못하고 나갔고, 더 좋은 직장을 찾아 나서는 직원들은 줄었던 것이죠.”

―조직 내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조직에 새로운 피를 영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유능한 인재가 오면 성장에 도움이 될까요? 성장을 촉진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다. 외부인이 계속 유입되면서 커지는 조직에서는 의견 조율 부진, 결속력 약화, 갈등 심화 등이 흔히 나타납니다. 만약 능력 있는 인재를 외부에서 데려온다면 적어도 이전에 효과적으로 같이 일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 고르세요.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폴 앨런, 애플을 만든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고등학교 시절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인 워런 버핏과 부회장 찰리 멍거는 거의 50년을 함께 일했습니다. 새로운 조직원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강점을 활용하고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유능하더라도 같이 일한 경험이 없거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되도록 채용하지 말라는 이야기인가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유능한 직원들을 데려오면, 성장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라고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기업의 핵심 원칙과 역량을 지키면서 성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행동을 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넷플릭스는 IT 업계에서 최고 수준의 연봉을 주는 회사입니다. 그 정도로 능력 있는 사람들을 데려오는 데 열심입니다. 그러나 이런 넷플릭스조차도 회사의 대의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해고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조직보다 자신을 우선시하는 독불장군을 절대 인정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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