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사업 리스크 관리의 본질은 경영의
트렌드 변화를 경쟁기업보다 앞서 발견해 이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 내부에서 얻을 수 있는 자료는 대개 정확한 데 반해 고객,
시장, 그리고 경쟁사와 관련된 자료는 정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 따라서 외부의 자료에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신규사업의 리스크 관리는
정확성보다는 적시성이 앞서야 할 것이다.
먼저 신규사업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데 일반적으로 신규사업이 얼마만큼의 시장성(marketability)이
있느냐 여부를 면밀히 판단해야 한다. 앞에서 살펴본 신규사업 실패 요인도 기술적인 요인보다는 경제성이나 시장의 수용성에 대한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소니의 VCR 신기술인 베타맥스의 경우에도 VHS보다 기술적으로는 우위에 있었지만 가격이 비싸고 사용자가 품질의 우수성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미 다양한 콘텐츠가 개발돼 있는 VHS와의 호환 문제가 발생해 소비자에게 외면당했다. 따라서 뛰어난 기술과 충분한 자원을
가지고 시작하는 신규사업이라 하더라도 리스크 발생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사전에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신규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단계에서 리스크 관리는 더욱 중요하다. 사업화 단계에서는 본격적으로 투자가 진행되고 운영, 제조 등의 분야에서 진전이 있으면서 다양한 리스크가
발생하게 된다. 신규사업은 기존사업과 완전히 다른 방식의 운영, 제조, 유통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시행착오와 예상치 못한 문제가 돌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충분한 자원 확보와 함께 여유 있는 납기 시간을 설정해 두는 게 리스크를 예방하는 데 중요하다. 에어버스는 A-380의
개발 이후 조립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해 납기가 2년이나 지연됐고 결국 48억 유로의 지연보상금을 지급했다. 꿈의 항공기로 여겨졌던
에어버스 A-380은 2명의 CEO를 퇴진시켰으며 거액의 보상금 지급과 함께 제조업체로서의 신뢰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달콤했던 꿈은 악몽으로
변하고 말았다.
신규사업이 성공한 듯 보이는 시기에도
리스크 관리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신규사업은 초기에 안정되지 못한 부분이 많아 언제든 실패의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신규사업이
안정화됐는지를 판단할 때는 기존의 사업에 적용하는 기준보다 더 엄격하고 세부적인 기준을 가지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 대다수의 회사들이 신규사업을
수행할 때 매출이나 성장률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형화된 숫자들이 가지는 내부 역량에 국한된 근시안적 시각을 버리고
신규사업이 새로운 트렌드를 창출할 수 있는가에 대한 면밀한 판단이 요구된다. 애플의 아이팟이나 이마트가 각각 기존의 매킨토시나 슈퍼마켓과 유사한
시장을 만들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공을 기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애플은 모바일라이프라는 트렌드를 대중 속에 뿌리내리게 만들었으며, 이마트는
가족 단위의 쇼핑문화로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켰다는 점이 큰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시장 트렌드를 만듦으로써 초기의 불안한 성공을
틈새시장(niche market)을 뛰어넘는 대중화된 시장(mass market)으로까지 연결시킬 수 있었다.
신규사업, 폐기학습부터 시작하라
유서 깊은 절의 노스님이 지혜롭기로
소문이 나자 한 명문대 교수가 그 명성을 듣고 시험하기 위해 찾았다고 한다. 겨우 면담 기회가 주어져 자리에 앉자 노스님은 말없이 교수의 찻잔에
차를 따랐다. 그런데 잔이 가득 차서 차가 넘쳐나도 계속 차를 붓자 이에 놀란 교수가 “스님, 차가 넘칩니다”라며 노스님을 만류했다. 노스님은
차 따르는 것을 멈추고 교수에게 “그대의 마음이 넘쳐흐르는 찻잔과 같아서 다른 사람이 어떤 좋은 말을 들려줘도 그대의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어떤 새로운 것을 학습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알고 있던 것을 버려야 한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이렇게 버리는
과정을 폐기학습(unlearning)이라고 한다.
게리 하멜과 C.K. 프라할라드는
조직이 기존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역량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새것을 배우는 학습만이 아니라 낡은 것을 버리는 폐기학습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5)피터 드러커 역시 새로운 것에 대한
학습은 변화의 반쪽에 불과할 뿐이며 폐기학습은 항상 정기적으로 시기를 정해 실시해야 비로소 과거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서 ‘계획된
폐기(planned abandonment)’를 주장했다.6)
신규사업을 가로막는 실패 요인은
외부보다는 내부의 문제일 경우가 많다. 특히 과거의 타성과 경험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신규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사업의 본질을 파악함과 동시에 기존의 성공방식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심형석 영산대 부동산•금융학과 교수
hsshim@ysu.ac.kr
5) Gary Hamel·C.K. Prahalad, ‘Competing for the
Future’, Harvard Business Press, 1994.8
6) Peter F. Drucker·Peter M. Senge, ‘A
Conversation With Peter Drucker & Peter M. Senge : Leading in a time of
change, what it will take to lead tomorrow, Viewer’s Workbook’, WILEY,
2001.1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핀란드 알토대에서 경영학 석사, 부산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산대 부동산·금융학과 학과장 및 동 대학
부동산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2009년 11월부터 실패 경영과 관련한 온라인 포럼(www.seri.org/forum/bizfail)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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