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실행·시점 3가지가 맞아떨어졌을 때 혁신 일어난다

스타트업 창업 전문가 일레인 첸 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


기술에만 집착하면 오히려 실패… 시제품 만드는 것보다 먼저 할 일이 시장조사

2000년대 초 벤처기업(첨단 신기술·아이디어를 사업 기반으로 삼는 중소기업)이 정보통신(IT) 업계에서 돌풍을 일으켰다면, 최근 산업계를 뜨겁게 하는 것은 스타트업(소규모 신생 벤처기업)이다. 회사 가치가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 이상인 스타트업을 일컫는 ‘유니콘 기업’이란 단어도 생겼다. 영화표와 식당 예약권을 판매하는 중국의 스타트업 메이투안-디엔핑(美團占評)이 올해 초 투자금을 33억달러 유치하는 등,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도 뜨겁다.

뛰어난 기술과 독특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스타트업 창업에 성공할 수 있을까. 세계 최대 벤처기업 단지이자, 스타트업 생존율이 가장 높다고 알려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조차 신생 기업 10개 중 9개는 망한다는 게 정설이다.

 

스타트업 창업 전문가인 일레인 첸(Chen·47) 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를 서울 역삼동에서 열린 ‘MIT 글로벌 스타트업 부트캠프’ 행사장에서 만나, 성공한 스타트업들의 비결을 물었다. 160㎝가 될까 말까 한 체구에 사진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쑥스러워 표정이 어색해지는 그는 MIT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로봇 개발 회사인 리싱크로보틱스, 벤처기업인 제오(Zeo)와 지모트(Zeemote) 등에서 기술 개발과 제품 생산 관리를 담당한 공학 전문가이기도 하다. 여러 벤처기업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스타트업 전문 컨설팅회사인 콘셉트스프링(ConceptSpring)도 운영한다.

첸 교수는 “성공적인 스타트업들을 보면, 혁신은 발명, 실행, 시점, 이 세 가지가 맞아떨어졌을 때 일어났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창업에 성공하기 위한 필수 요건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전에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상품으로 만들기만 하면 성공한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시점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상품화에 필요한 기술적인 기반시설이 중요해졌기 때문이죠. 시대를 너무 앞서간 아이디어일 때가 있으니까요.

1995년에 디자인 컨설팅업체인 컨티뉴엄(Continuum·당시 사명은 디자인컨티뉴엄)은 독일의 한 고급 자동차업체에 지금으로 치면 ‘인포테인먼트(infortainment·정보를 뜻하는 information과 오락을 뜻하는 entertainment를 합성한 신조어로, 정보오락이란 뜻)’ 콘셉트 차량을 제안했어요. 소비자들이 차를 타고 이동할 때 뭘 하고 싶은지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실시간 교통정보 확인과 핸즈프리 전화통화 같은 기능을 탑재하고 뒷좌석에서는 차량에 장착된 화면으로 비디오를 볼 수 있는 자동차의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러나 이 뛰어난 아이디어는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스마트폰은커녕 문자메시지도 발명되기 전이었으니, 아이디어를 상용화할 기술이나 방법이 없었던 겁니다. 10년 뒤에야 독일의 아우디가 인포테인먼트를 콘셉트로 한 신차를 선보였고, 그로부터 5년이 더 지난 다음에는 모든 운전자가 스마트폰으로 이런 기능을 해결하더군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술이라고 이야기들 합니다만.

“기술에만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실패 요인이 됩니다. 예컨대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학생은 자신이 개발한 알고리즘을 활용해 사업을 하고 싶어 할 겁니다. 그런데 기술 개발이 사업적인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알고리즘이나 기술이 아무리 창의적이더라도 실생활엔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경제적인 결과를 못 낸다는 얘기죠. 기술에만 몰두하면 연구개발 회사일 뿐, 수익을 낼 수는 없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창업 지침인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은 아이디어를 토대로 최소기능제품(minimum viable product)을 만든 다음 소비자의 반응을 반영해 후속 제품을 개발하라고 권합니다.

“물론 린 스타트업은 좋은 전략입니다만, 시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먼저 할 일이 시장조사입니다. MIT 출신이 세운 허브스팟(HubSpot)이란 홍보업체가 있는데, 이 회사가 내건 목표가 스타트업이 성공할 요건을 한마디로 정의하고 있어요. ‘소비자를 위해 문제를 해결하라’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누구에게 판매할 것인지 소비자가 우리 제품에서 무엇을 얻고 싶어 할지 이해해야 합니다. 제품을 만들기 전에 상점이나 시장에 가서 손님들과 대화를 해보세요. 소비자들이 지금 쓰는 물건에 불만이 있는지, 어떻게 개선하길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이해한 다음에 대안을 내놓는 거죠. 이 단계까지 마쳐야 시제품을 토대로 제품을 개선해가는 린 스타트업 전략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 정보 분석 서비스 업체인 유저사이클(USERcycle)을 창업한 애시 모리아는 린 스타트업 전략을 잘 활용한 경우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완전한 서비스를 개발하지 않고, 판매 동향 등의 정보가 필요한 사업자를 3개월 동안 시범 서비스를 이용해볼 테스터로 고용했어요. 그리고 매주 매출 정보를 이미지로 만들어 보내주고 ‘귀사의 판매 동향은 이렇습니다.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무엇이고, 어떻게 개선할 수 있겠습니다’라고 설명해줬죠. 테스터들은 이 분석 서비스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벤처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한 구글, 테슬라 등은 성공적인 공동 창업 사례입니다. 공동으로 스타트업을 세울 때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요.

“인력의 다양성입니다. 만약 같은 대학, 같은 과를 졸업한 학생 3명이 회사를 차린다면 어떨까요? 문제에 대한 접근법이나 의견이 서로 비슷해 새로운 시각이나 해법을 내놓지 못할 겁니다. 상호 보완적인 능력과 지식을 갖춘 2~3명이 공동으로 창업하는 게 이상적입니다.”

―최근에는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으로 소셜펀딩(불특정 다수 개인 투자를 통한 공동 모금)이나 엔젤 투자자(스타트업 전문 개인 투자자) 등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는 것보다 효율적인가요.

“어떤 업종의 스타트업인지에 따라 다릅니다. 소프트웨어 관련 스타트업은 초기 창업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듭니다. 애플리케이션(앱) 개발 시장의 진입장벽이 낮은 이것은 이 때문입니다. 반면 하드웨어를 생산하는 스타트업이라면 초기 투자 자금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자체적으로 충당하지 못한다면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킥 스타터(KickStarter)나 인디고고(Indiegogo) 같은 소셜펀딩 사이트는 잠재적인 수요나 소비자의 관심을 확인할 좋은 수단입니다. 제품 개발 계획을 소셜펀딩 사이트에 올려 투자자들의 관심을 끈다면, 그만큼 그 제품에 관심을 가질 만한 소비자가 많다고 볼 수 있죠. 필요한 자금 규모에 따라 엔젤 투자자나 엔젤 투자 전문기관, 벤처캐피털을 찾는 겁니다.”

―세계적으로 스타트업 시장에 거품이 끼었다는 우려도 큽니다.

“2014~2015년엔 많은 스타트업의 가치가 지나치게 높게 평가됐다고 봅니다. 당장 많은 투자금을 유치한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기대한 만큼 (경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 투자자들의 실망감이 역풍으로 작용하기 마련입니다. 최근에는 스타트업의 가치를 더 엄격하게 평가하는 분위기인데, 장기적으로 스타트업 시장이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선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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