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40여년간 ‘온리 원’ 추구하다 보니 어느새 ‘넘버 원’

[Cover Story] 토니 로 자이언트 CEO
매출 기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대만의 세계 최대 자전거 제조社

대만 타오위안 공항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의 타이중(臺中)시 외곽. 조용한 바닷가에 위치한 세계 최대 자전거 제조사 자이언트(Giant)의 공장에 들어서자, 형형색색의 자전거 몸체(프레임)들이 눈에 띄었다. 큰 트라이앵글 모양의 프레임을 한 손으로 잡자, 거의 힘을 쓰지 않고도 쉽게 들렸다. 이곳에서 생산된 프레임 무게는 780g. 초경량 소재인 탄소섬유 프레임이다. 이번엔 직원이 바퀴·안장·손잡이까지 모두 조립이 끝난 철인 3종 경기용 자전거를 건네줬다. 역시 한 손으로 가뿐히 들 수 있을 만큼 가벼웠다. 8㎏이 조금 못 된다.

자이언트는 세계 최대 자전거 제조사다. 연간 생산 대수는 550만~600만 대로, 미국·이탈리아·스위스 등의 하이엔드(고급) 자전거를 실제로 제조하는 회사가 자이언트다. 생산량으로 보면 중국이나 인도 업체에 비해 적지만, 중·고가 고급 자전거를 만들기 때문에 매출액으로 보면 전 세계 자전거 매출 중 자이언트가 차지하는 점유율이 10%에 달한다. 2015년 이 회사의 매출은 604억대만달러(약 2조1584억원)를 기록했다.

40여년간 '온리 원' 추구하다 보니 어느새 '넘버 원'
자이언트 제공

자이언트는 원래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에 특화된 회사였다. 그러나 1980년대 자이언트의 첫 OEM 고객사였던 미국 최대 자전거 회사 슈윈(Schwinn)이 중국으로 옮겨가는 위기를 맞았고, 이를 오히려 기회로 삼았다. 자사 브랜드를 부착한 사이클 자전거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더욱 성장했다. 현재 자이언트의 전체 매출 중 70%는 자사 브랜드에서 오고, 나머지 30%만 OEM 사업에서 온다. 쉽지 않은 변신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달 초 자이언트 본사에서 토니 로(Lo·羅祥安·68)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로 CEO는 일흔을 앞뒀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체격이 건장했다. 구릿빛 피부색은 1년에 8000㎞씩 자전거를 탄다는 그의 말을 증명해주는 듯했다. 그의 첫마디는 “자전거 타세요? 어디서 주로 타나요?”였다. 자전거를 ‘전도’하고자 하는 종교인처럼 보였다.

“우리는 자전거를 만들기만 하는 공장이 아닙니다. 자전거를 타는 문화(사이클링 컬처)를 만들고 확산하는 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죠. 사이클링 컬처를 양산하는 것은 사람들을 정신적·신체적으로 건강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자이언트에도 이익이 됩니다.”

로 CEO는 자이언트가 설립된 이듬해인 1973년 부사장으로 입사해, 올해로 43년째 회사에 몸담고 있다. 자이언트는 창업자인 엔지니어 출신 킹 리우(劉金標) 회장이 기술·소재 개발과 공장 운영에 집중하고 영업과 마케팅은 로 CEO가 하는 체제다. 그가 2005년 CEO 자리에 오를 때 265억대만달러이던 매출액은 5년 만인 2010년 442억대만달러로 뛰었고, 업계 1위 자리에도 올랐다.

40여년간 '온리 원' 추구하다 보니 어느새 '넘버 원'
[Cover Story] 토니 로 자이언트 CEO
토니 로 자이언트 CEO

―OEM 업체로 시작해 지금은 전 세계 1위 자전거 업체가 됐습니다.

“‘넘버 원’이 목표였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자이언트는 44년간 단 하나뿐인 독창적인 회사가 되자는 ‘온리 원’을 추구했습니다. 신제품을 많이 개발하고 기술도 개발하고 다른 자전거 업체들이 제공하지 않는 여러 서비스와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예를 들면 고급 자전거 업체 중 여성용 자전거를 만든 것은 자이언트가 처음입니다. 여성은 남성과 체형이 다르고 근육도 다르고 자세도 크게 다른데, 자전거 업계는 수십 년 동안 남성용 자전거를 조금 작게 만들어 여성들에게 팔아왔습니다. 여성용 자전거를 따로 개발하는 건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자이언트는 사이클을 즐기는 여성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여성의 몸에 맞춘 자전거를 개발했습니다.”

―1990년대 초경량 소재인 탄소섬유로 자전거를 대량 생산하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다고 들었습니다.

“자이언트보다 먼저 탄소섬유 자전거를 만든 업체가 있었지만 다루는 기술이 매우 어렵고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대부분 소량 생산됐습니다. 본격적으로 탄소섬유 자전거를 대량 생산한 것은 우리가 처음입니다. 자이언트는 1980년대부터 자사 브랜드의 자전거를 유럽에서 팔기 시작했는데 브랜드를 알리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사이클링 역사가 훨씬 발달한 유럽에선 이미 유명한 고급 브랜드가 아주 많았으니까요. 그 누가 대만에서 온 자전거 업체를 알겠어요? 그래서 우린 탄소섬유 기술 개발에 매진했습니다. 남들이 못하는, 우리만 할 수 있는 최고의 자전거를 만들면 소비자들이 자이언트를 믿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엔 다른 회사들이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던 제품을 만들어 팔면, 브랜드 인지도는 당연히 따라올 것이라고 보셨던 것이군요.

“탄소섬유 프레임 개발을 처음 시작한 것은 1987년입니다. 탄소섬유 원재료는 머리카락처럼 실 모양을 띠고 있는데 그걸로 자전거 프레임을 만들 수 있게 가공할 수 있는 업체가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직접 해야 했습니다. 리우 회장과 저는 탄소섬유가 그렇게까지 어려운 것인지 몰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젊고 잘 몰라서 달려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소재를 사오고 독일에서 장비를 사오고 스위스에서 화학제품을 사와 3년 만에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탄소섬유 자전거를 자이언트 브랜드로 팔기 시작하자 그제야 우리 회사를 알아주기 시작했습니다. 연구를 시작한 지 10년 만인 1997년, 대표적인 사이클링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 사이클팀 온세(ONCE)가 탄소섬유 자전거를 만들어 달라고 하더군요.”

탄소섬유는 철보다 강하고 알루미늄보다 가벼운 비싼 소재다. 미국 최대 자전거 전문지(誌)인 바이시클링에 따르면 탄소섬유 원사(原絲) 가공 기술을 가진 업체는 자이언트와 프랑스 자전거업체 타임(Time) 등 2곳이다.

[Cover Story] 토니 로 자이언트 CEO

―미국과 유럽에선 3대 브랜드, 한국과 일본에선 최대 수입 브랜드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대만·네덜란드까지 공장 9곳을 운영하고 있고, 미국·독일·이탈리아·영국·호주 등 전 세계 14개 판매 법인을 운영 중입니다. 우리가 글로벌 시장에서 매출 1위를 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각국의 판매 법인에 모두 현지 사람들을 앉혔다는 점입니다. 현지 소비자들의 특징, 소비 성향, 현지 지형, 어떤 자전거를 선호하는지에 대해선 현지인들이 잘 압니다. 저는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대만 사람이 가서 이것저것 시켜봤자 뭘 하겠습니까.”

자전거 시장은 보급형(저가)과 중·고급형(고가)으로 나뉜다. 수량으로 따지면 저가 제품이 많지만, 매출액으로 보면 중·고가 자전거의 시장 규모가 훨씬 크다. 저가 자전거와 중·고가 자전거 간의 판매 가격이 적게는 10배, 많게는 100배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로 CEO는 보급형 자전거 시장은 서서히 줄어들고 고급 자전거 시장은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이언트의 매출은 매년 늘고 있습니다만 전 세계 자전거 산업 경기는 어떤 편입니까.

“자전거는 그 역사가 약 240년 정도 됐는데, 처음엔 단순한 이동수단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보급형 자전거가 많이 생산됐습니다. 인도·아프리카·남미 등 일부 신흥국에선 보급형 자전거 시장이 아직 큽니다. 하지만 이젠 중국에서도 더 이상 보급형 자전거 판매량이 늘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 일반인들도 누구나 사이클링을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중·고가 자전거 시장이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자이언트가 처음 설립됐을 때만 해도 사이클링 문화는 미미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소비자들의 트렌드가 바뀐 셈입니다. 요즘엔 자전거를 건강한 취미이자 사교 활동으로 보고 진지하게 즐기는 사람이 세계적으로 많아졌습니다. 덕분에 저희 같은 고급 자전거 업체들이 다 같이 성장세를 기록할 수 있었죠.

한국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15~20년 전엔 사이클링을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요즘엔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종주하고, 수백만~수천만원짜리 자전거에도 손을 댑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일단 한번 자전거에 입문하면 점점 더 욕심이 생깁니다. 더 가벼워야 하고, 더 멀리 가야 하고, 또 안 가본 곳을 가봐야 하죠. 그래서 몇 년 타다가 보면 더 좋은 자전거로 업그레이드를 하게 됩니다. 이런 트렌드 덕분에 지난 10~15년 정도 사이클링 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당분간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봅니다.”

자이언트 설립년도

―자이언트는 다른 중·고가 경쟁사 제품도 만들어주고 있는데, 어느 업체를 가장 큰 경쟁 상대로 보고 있습니까.

“파트너사에 대한 정보는 공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경쟁사라고 생각하지 않고 파트너사라고 부릅니다. 수십년간 같이 일해 왔으니까요. 우리는 정면충돌하며 경쟁하는 게 아니라 나란히 같은 방향을 향해 성장하면서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이언트 스스로 더 좋은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자전거 시장의 파이를 늘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전체 시장이 커지면 고객사도 성장하고 소비자도 많아져 모두에게 좋으니까요.”

―앞으론 어떤 기술을 가진 자전거 업체들이 우위를 선점할 수 있을까요.

“더 편하고, 가볍고, 효율성 높은 자전거를 만들려는 연구개발(R&D)은 계속될 것으로 봅니다. 자전거는 아쉽게도 100% 자동화 생산할 수 없는 제품입니다.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하죠.”

자이언트에선 십여 년의 훈련을 거친 숙련공만 고난도 기술을 수반하는 하이엔드 자전거를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전거는 수백만원대에 팔려나간다. 자이언트는 산악자전거(MTB)로 유명한 미국 1위 고급 자전거인 트렉(Trek), 스키 장비로 시작해 고급 자전거 브랜드로 자리 잡은 스위스 업체 스캇(Scott), 그리고 이탈리아 명품 자전거인 콜냐고(Colnago) 등을 제조한다.

―주요 자전거 대회를 후원하는 걸 제외하곤 광고나 홍보를 거의 하지 않는 것이 특이합니다.

“1990년대 초반 미국에서 스타벅스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주변에는 스타벅스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저는 스타벅스의 광고나 전단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광고를 하지 않고도 충성 고객이 많은 이유가 무엇인지 보니, 스타벅스의 매장에 그 답이 있었습니다. 매장을 이용하는 ‘경험’이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었던 겁니다. 자이언트도 경험 중심적 매장을 만드는 데 주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엔 동네 자전거 매장에 우리 제품을 많이 납품했는데, 그러다 보니 자이언트가 원하는 콘셉트로 소비자를 만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대만부터 시작해 자이언트 매장을 많이 세우고 우리만의 콘셉트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현재는 전 세계 80개국에서 인증된 딜러숍과 매장 1만2000곳을 통해서만 유통하고 있습니다.”

―자이언트가 강조하는 경험 중심적 매장이란 무엇입니까.

“소비자들에게 자전거 한 대만 팔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소비자들과 관계를 맺고 싶고, 자전거 타는 문화를 퍼뜨리고 싶습니다. 매장에도 이런 정신을 반영했습니다. 자이언트 영업 사원들이 소비자에게 ‘최고의 사이클링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가르칩니다. 첫째로 영업 사원들은 소비자들에게 적합한 자전거를 찾아줍니다. 자전거를 처음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매장에 와서 수많은 자전거를 보고 어리둥절해합니다. 사람마다 용도와 개인 취향, 체형별로 타야 하는 자전거 종류가 다르지만, 무엇을 타야 할지 잘 모릅니다. 일반 포장도로, 공원이나 산악지대, 비포장도로 등 ‘어디’에서 자전거를 탈 것인지 먼저 정합니다. 다음엔 ‘목적’을 정합니다. 가벼운 레크리에이션용인지, 체력 단련을 위한 스포츠용인지, 아니면 정말 빠른 속도나 고도의 성능을 내는 퍼포먼스용인지 결정하지요. 소비자의 조건과 환경에 가장 부합하는 자전거를 추천해줄 수 있게 됩니다. 둘째로 사람마다 팔다리 길이가 다르고 자세가 다르기 때문에 ‘피팅(fitting)’이 중요합니다. 자전거를 구매하면 몸에 맞게 조절해주고, 올바른 자세로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자세를 잡아줍니다. 셋째로 소비자들과 함께 자전거를 탑니다. 처음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 길도 잘 모르고 어디까지 가야 할지 몰라서 헤맬 수 있는데, 자이언트는 제품 선택부터 구매, 그리고 사이클링 경험까지 모두 제공합니다.”

실제로 자이언트에선 로 CEO뿐만 아니라 전 직원이 매년 다 함께 자전거를 타고 소비자들을 위한 ‘사이클링 여행’을 기획하는 데 공을 들인다. 직원들이 몸소 실천하고 소비자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홍보 전략을 짠 것이다. 본사 직원들은 매년 자전거를 타고 대만을 한 바퀴씩 도는데 그 거리가 1000㎞에 달한다.

―다른 자전거 업체들에 비해서 소비자에게 사이클링 문화를 전파하는 걸 유독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자이언트만의 차별화 정책인가요.

“어느 날 갑자기 아침에 일어나서 ‘100만원짜리 자전거를 사야겠다’ 하고 마음먹는 사람은 없습니다. 보급형 자전거부터 시작해서 점점 더 비싼 자전거를 찾는 것이 자연스러운 소비 성향입니다. 자전거 산업은 진입 장벽이 아주 높지 않기 때문에 기술이 쉽게 따라잡힐 수 있고 가격 면에서도 더 저렴한 업체와 경쟁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제조사들과 크게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는 소비자와 만나는 매장입니다. 매장을 통해서 충성 고객을 만들 수 있고 소비자로부터 바로 얻은 피드백들이 제품 혁신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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