낄낄낄, 부부싸움이 놀이가 됐다. 진짜 광고는 놀고 즐기는 콘텐츠다

 

Article at a Glance

전통적인 매체에 중요한 지면이나 황금시간대에 광고를 내보낸 뒤 그 효과성을 따지고 성공여부를 판단하는 시대는 끝났다. 모든 광고는 하나의매력적인 콘텐츠로서 소비자들이 공유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제대로 된 광고효과를 얻을 수 있다.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유쾌하게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이 시대창의성의 핵심이다. 마케팅 이론과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공부한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장단점을 분석하는 것으로는 소비자와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없다. ATL, BTL의 구시대적 구분법을 버리고 미디어의 한계를 벗어나라. 소비자가 와서 노는 곳, 그곳이 바로 미디어고, 그들이 놀고 즐기는
콘텐츠가 바로진짜 광고.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정우성(연세대 경영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부부 간의 갈등이나 부부싸움은 결혼한 성인들 사이에서 끝없이 회자되는 유머 소재이자 빠지지 않는 술자리 안주다. 물론 그런 즐거운 술자리가 끝난 뒤에 보통 새로운 부부싸움이 시작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일상에서의 유머나 대화 소재로만 끝나지도 않는다. 부부 간의 갈등과 화해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나 드라마나 영화의 가장 인기 있는 소재다. 때로는 아예부부싸움그 자체를 소재로 영화가 만들어지고 큰 인기를 얻기도 한다. 예전 TV명화극장이나토요명화등에서 가끔 나오던장미의 전쟁’, 현재 할리우드 실제 부부 배우인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극 중에서 정보기관 특수요원이자 부부로 등장해 집안에서 총격전까지 벌이던 오락영화 ‘Mr. & Mrs. Smith’ 등이 바로 그런 영화들이다.

 

이러한부부싸움이 광고에  등장했다. 사과를 먹어야 하는가를 놓고 다퉜던 아담과 이브 이래로, 인류 역사상가장 오래된 갈등인 부부 간의 다툼이라는 소재가 21세기 최첨단 기술 ‘IoT 스마트홈광고에 활용됐다. 그리고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바로 SK IoT 스마트홈 ‘Mr. & Mrs. Smart’ 광고 얘기다.1)

 

20161월 초에 TV와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유통된 이 시리즈의 1편은 2016 6월 말 현재 약 184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같은 해 4월에 나온 2편의 조회 수는 87만 건을 넘긴 상황이다.

 

1편에서는 부부싸움을 한 신혼부부가 집안 가전기기의 IoT 스마트홈 기능을 이용해 서로를 골탕 먹이는 내용으로, 집 밖에서 온수를 꺼서 샤워 중인 남편을 당황시킨다든가 화장실 스위치를 계속 껐다 켰다 반복하며 화장실 안에  있는 부인을 화나게 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스마트홈] Mr. & Mrs. Smart 1 시청하러 가기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티격태격하는 부부싸움을 재미있게 구경하는 동시에 IoT 스마트홈 기능으로 실제 구현 가능한 기술, 그러한 기술로 인해 더욱 편리해지는 생활의 단면을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2편 역시 부인이 출장을 간 사이 남편이 자기 마음대로 집안을 어지럽히며 지내다가 스마트폰을 통해 이 모든 걸 알게 되는 부인에게 결국 크게 혼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마트홈] Mr & Mrs Smart 2 시청하러 가기 

이 두 편의 광고는 현재 그저 조회 수만 높은 것이 아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이 광고 동영상에는스킵 안 하고 본 최초의 광고다” “내가 이 긴 광고를 낄낄거리며 보다니어서 다음 편을 내 놓아라등의 댓글이 달리며 각종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공유됐다. 유튜브 댓글 중에는보통 광고는 짜증나는 대상이었는데 광고로 기쁨을 얻을 수 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제작자가 센스가 넘친다는 칭찬도 있었다.

 

인터넷 유머 게시판의 경우광고성콘텐츠는 운영진에 의해 제재가 가해지기 마련이지만 이 광고는 실제로유머에 가까운 콘텐츠이기에 대부분 게재가 허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말 그대로콘텐츠의 힘을 보여줬다는 얘기다.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IoT 홈의 기술과 구현방식을부부싸움과 갈등이라는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소재를 활용해쉽고 재미있는광고를 만들어낸 주인공, 남상일 SK텔레콤의 마케팅커뮤니케이션 본부장(상무) DBR이 만났다.

 

광고마케팅을 총괄하는 입장에서 광고의 효과를 실감하고 있나?

 

유튜브 댓글에 달리는 뜨거운 반응들, SNS를 타고유머 콘텐츠로 퍼져나가는 현상이 존재했고, ‘어서 다음 편을 만들라는 글들이 이어졌다. 마케팅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사람으로서 즐거울 수밖에 없는 성과다. 사실 이 광고는 처음 기획할 때부터 기존성공지표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기에성공했다는 기준 역시 좀 다르게 잡고 있다. 예전에는 무조건 15초나 30초짜리 영상을 지상파 등에 내보낸 뒤 얼마만큼 자주 틀어서 어떤유효도달률2)을 달성했느냐, 1% 시청률 대비 단가 효율성이 어떠했느냐 등을 중요하게 따졌다. 이제 그런 게 의미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매체도 다변화되고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게 되면서 개인이 하루에 3000개 정도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중 상당수는 광고다.

 

그러니 더더욱 관심도가 떨어진다. 이번 광고를 기획할 때, 사장님부터 아예 “‘미디어적 지표보다 더 중요한 건매력적이고 호감 있는 콘텐츠. 한 번만 노출이 돼도 기억이 나는 콘텐츠를 만들면 그게 진정한 비용 대비 효율성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이상적인 얘기지만 이런 방식으로 성과를 측정하고 이를 위해 광고를 만들고 콘텐츠를 고민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마케팅커뮤니케이션에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수많은 매체에, 그 엄청난 콘텐츠 홍수 속에서 예전 기준으로도달률’ ‘유효빈도같은 소비자 인식도를 만들어내려면 예산과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 실험적으로디지털 베이스로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추진했다.

 

 

‘디지털 베이스라는 말에 대해 좀 더 설명해달라.

 

일단 이번 광고는 길이가 1편의 경우 130초가 넘어간다. 그런데 이걸 1분으로 겨우겨우 줄여서 여러 케이블 TV 채널에서 틀었다. 물론 예전의 정형화된 30, 15초 광고가 아니다보니광고시간 자체를 이어서많이 사야 했다. 광고 횟수를 줄이고 한 번에 길게 틀 수 있도록 예산을 배분했다. 기존 15초 광고 열 번 나갈 걸 두 번만 나가더라도 기억에 남게 하자는 취지였다.

 

물론 내부 반발도 있었다. “15초 광고가 있어야만 방송국 광고시간대, 그것도좋은시간대를 잡을 수 있다는 게 핵심 논리였다. 하지만 요새본방 사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구매력 있는 2040세대가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시간대에 TV 앞에 많이들 앉아 있나? ‘15초 룰틀에 갇혀 버리는 순간, 또 다른 노력과 비용이 발생한다. TV와 같은 전통매체 이상으로 중요해진 온라인 바이럴을 별도로 구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콘텐츠 질과 메시지 일관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진다
 

광고
방영 횟수가 많아야 소비자 인지도가 높아졌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60초짜리로 최대한 길게 만들고 초반에 몇 번 길게 틀고 웹이나 모바일을 통해공유하게 만들면 경쟁사보다 비용을 절반만 쓰고도 실제 인지지표는 올릴 수 있다. 이는 몇 차례 실험을 통해 확인한 결과다. ‘디지털 베이스라는 말은 이러한관점의 전환과 깊게 연결돼 있다.

유튜브를 비롯한 웹과 모바일 플랫폼에서 공유될 수 있는 콘텐츠, 시간 제약이 없기에 다소 길어질 수는 있지만 충분히 재미있고, 사람들이굳이찾아서 볼 만한아주 짧은 영화 한 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그걸 줄여서 TV에 내보내는 방식이어야지, TV 광고를 위해 15, 30초 제약을 염두에 두고 만들면 스스로 한계에 갇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상파 방송 등에서의 광고 노출을 늘리는 것의 중요성은 떨어지고 있다는 점에 공감이 간다.

 

물론 그렇게 되면 객관적인 측정은 점차 어려워지긴 한다. 그런데 성과나 실적의 측정이 쉽고 편하다고 해서 계속 예전의 방식을 고수하는 건 난센스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지난해(2015) 우리 회사에서 내내 틀었던퓨전 사극형식의 광고가 있다. 단순히 TV 광고만 한 게 아니라 아주 대대적인 프로모션과 캠페인이 이뤄졌다. 근데 혹시 기억나는 거 있나? 아마 없을 거다. 15, 30초로 딱딱 끊어서 열심히 내보낸 광고인 데도 그렇다.

 

지금 SK텔레콤 하면 떠오르는 것, 엄청나게 성공을 거둔 것은 돈 거의 안 들인, 아이돌 그룹 멤버 설현의데칼(코마니)’이다. 실제 인물 크기의 사진 간판을 매장 앞에 세워뒀는데 정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이 밤에 몰래 집어가고 그랬으니까. ‘설현이라는 모델만 뜬 걸까? 아니다. SKT 매장에 대한 인지도가 올라갔고, 어디에 존재하는 건지 사람들이 더 잘 알게 됐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SKT트렌디하다는 느낌을 제대로 만들어줬다. 경쟁사들이 모델만 다른 연예인으로 섭외해서 지금은 다 따라한다.

 

그런데 이거 측정할 수 있나? 누가 봐도 명백한효과성과가 있지만 수치로 집어내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산집행을 주저한다. 이러한, 돈도 얼마 안 드는 새로운 실험들에 대해서조차 다들 꺼리게 된다. 이걸 깰 수 있어야 한다.

 

  

광고 내용 자체 얘기로 넘어가보자. 어떻게 아이디어가 나오게 됐나?

 

IoT는 예전에는 주로미래의 편리한 생활환경과 혁신적 신기술이 만들어내는 뭔가 환상적인 모습을 그려주면서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꽤 오랜 시간 사람들이 그런 메시지를 접해왔다. 문제는 IoT 기술이 진짜 현실화돼서, 특히 보일러, 전등 등 각 기기가 개별적으로 원격조종되던 것들이 이제는 하나로 통합돼서, 굳이 내가 뭔가를 조작하지 않아도 나의 생활패턴에 맞춰 알아서 바뀌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이제는 진짜로실생활의 변화’ ‘실생활에서의 효용을 말해줘야만 하는 때가 됐다. 물론 이 기술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생활 속에서 구현하고 경험할 세대는 신혼부부이거나 결혼한 지 10여 년 만에 가전제품을 완전히 교체하는 사람들일 거다. 기존 가전에서도 상당 부분 구현할 수 있지만 뭔가 전반적으로 다 바꾸는 김에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해볼까라고 생각하는 거다. IoT는 기본적으로 라이프스타일 변화이기 때문에 일종의 계기가 필요하다.

 

그렇기에실질적이고 구체적인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편리한 생활, 기술이 만드는 행복을 아무리 전달해봐야 먹힐 리 없다. 그런데 문제는 IoT 기술 구현 메커니즘,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고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사생활 감시나 침해의 문제는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등을 광고에서 다 설명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첨단 기술 용어가 마구 튀어나오기 쉽고, 30분 정도 앉아서 차분히 설명을 들어야 완벽하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광고인, 마케터는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의 삶은 환상적이지 않다. 생활 속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그려내야 공감이 갈 것이고 기술의 메커니즘과 구현방식에 대한 이해가 빨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봤던 정말 재미있는살벌하지만 유쾌한 부부싸움 영화 ‘Mr. & Mrs. Smith’를 떠올렸다. 부부가 티격태격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하는 것만큼 공감 가는 일상이 또 어디에 있을까. 타깃 소비자층하고도 맞고 여러모로딱이다싶었다.

그렇게 콘셉트를 잡고부부싸움골탕 먹이기 IoT 기술 구현에 끼워넣었는데, 정말 소재가 무궁무진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정말 IoT 홈이라는 게 일상의 모든 부분에 관여하는 것이구나를 깨닫게 됐다.

2편을 만들 때에는지난 번에 싸웠으니 이번엔 시댁이나 시누이한테 공동 대응하면서 화해하는 모습을 만들어볼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근데 솔직히 그런 일이 얼마나 있나? 그래서 나를 포함한 모든 유부남들이 공감할 와이프가 집에 없을 때의 자유를 중심으로 짜봤다. 광고에서 남자 모델이 하는 모든 행동들, 즉 속옷만 입고 널브러지기, 음식 대충 시켜 먹으면서 TV 보기, 간만에 친구들 만나 술 마시기 등은 내가 와이프가 잠시 여행이나 출장을 간다면 하고 싶은 것들이다. 남자들이라면 다들 공감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래봤자 결국 IoT 시대에는 마눌님 손바닥 안이라는 걸 일깨워주기도 하면서 남자가 뛰어봤자 결국 와이프한테 안 된다는 이 시대의 정서와 딱 맞기도 했다. 아마 나중에는 여성 입장에서도 다룰 수 있을 것 같다.

 

첨단 기술기업, ICT 기업에서소소한 일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기술 관련 사업부서에서 광고안을 보고 걱정을 많이 하긴 했다. 그분들도공감은 가는데, 2편 같은 경우 남편이 꼼짝도 못하고 부인한테 감시당한다는 게 핵심 메시지인데, 과연 그러면 이 플랫폼을 사려 할까?’라는 문제의식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어마어마하게 무서운빅 브라더 세상을 그려낸 게 아니지 않나. 다들 그렇게 사는 평범한 모습, 지지고 볶는 일상이 그려졌고, 그것에 대한 공감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우리 플랫폼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럼 광고는 성공한 것 아닌가. 다른 IT 광고들, IoT 관련 광고들을 보면 말 그대로 산으로 가는내용이 많다. ‘우리 미래가 이렇게 휘황찬란하다며 온갖 긍정적인 요소만 보여주고 부정적인 것은 싹 뺀다. 그러면 사람들은 다 안다. 사람들은 전체적인 경험의 유쾌함을 중시하는 것이지 부정적인 요소가 있다/없다를 세세하게 따지면서 제품이나 서비스 구매를 판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가 생각해도 있을 법한 부정적인 요소를 억지로 제거하면 그게 더 티 난다. 그냥, 재밌다. 다른 부부도 다 똑같이 사는 거지 뭐…’ 하고 보다가, 그런데 정말 생활이 편해지긴 하겠구나. 가사노동 부담이 엄청 줄겠구나라는 걸 암암리에 깨닫게 하는 것, 구구절절 기술용어를 나열하는 것보다 그게 훨씬 중요한 일이다.

내가 늘 벽에 붙여놓고 생각이 막힐 때마다 보는 글귀가 있다. ‘어려운 걸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유쾌하게라는 문구다. 이노우에 히사시라는 일본의 유명 크리에이터이자 디렉터가 했던 말인데 아무리 어려운 기술용어가 튀어나오는 제품이나 서비스라도 이 문구를 붙들고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야만 메시지가 전달될 것이라 생각한다.

 ‘공감에 기반한 메시지가 정답인 건 알지만 그걸 제대로 표현해내는 광고는 흔치 않다.

  

20년 전에유비쿼터스, 원격조종이니, 자동화니 얘기 나올 때에는 뭔가 딱히 실체를 그려주기가 쉽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지금 와서도 자꾸 그런 식의 광고, 억지 감동과 막연한 미래상 그리기가 자꾸 나오는 이유는 뭘까. 사실 일상 기반 공감코드라는 게 요즘 들어서 갑자기 각광받는 건 아니다.

 

항상 통하던 방식이었다. 그런데 영리하게, 적절하게 공감코드를 찾아내지 못했던 게 문제였고, 때론 광고인들이나 마케터들이 용기가 없는 게 문제였다. 다소 웃기고 장난스러운, 일상의 소소함을 다루는 것이 비록 가벼워 보이는 측면은 있지만 메시지 전달에 효과적이고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보고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더 중요한 건 윗선에서 아래로 권한 위임을 하고, 믿고 아이디어를 받아줘야 한다는 거다.

 마케터나 크리에이터의 용기나 조직문화 외에 마케터 자체가 빠지는마케터 함정도 문제다. 본인이 너무 잘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더 풀어 설명하면내가 이 회사에서 타깃 고객에 대한 연구도 가장 많이 했고,
이론도 가장 많이 알고, 실제 전략도 많이 짜봤다.

그리고 마케팅을 위해 공부했기 때문에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나는 정말 잘 안다고 착각을 하는 것이다. 자기가 잘 알면 뭐하나. 대중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마케터가 만드는 메시지는 방금 처음 들어본 분야라도 1∼2분 안에 이해가 되는 수준이어야 한다. 문제의 정의, 용어의 개념부터 확실히 잡고 그걸 아까 말했던어려운 걸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유쾌하게라는 글귀를 항상 떠올리면서 만들어야 그 마케터 함정을 피해갈 수 있다.

 

‘마케터 함정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달라.

마케터들이 실패하거나 크리에이터가 실수를 할 때를 가만히 보면 보통 이론을 잘 몰라서거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론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인 경우는 거의 없다. 잘 안다. 너무너무 잘 안다. 그게 오히려 문제가 된다. 가만히 따져보자. 우리나라 기업의 마케터들은 흔히 말하는 학벌 좋고 머리 좋은 사람들이다. 똑똑하고 분석적이며, 치열하게
논리적으로이 딱 서있다

문제는 대한민국 유수 기업의 마케팅 부서는 죄다 이런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는 거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보면, 즉 자신이 팔아야 하는 그 대상을 놓고 분석을 하고 논리적으로 장단점을 따지고 있다. 물론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에만 매몰된다. 경쟁제품이랑 비교하고 꼭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장단점을 분석하면우리 제품은 이게 장점이다라는 메시지는 뽑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소비자의 가치, 구매욕구  무슨 상관인가? 마케팅에서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은 철저히 소비자 입장에서나는 이게 이런 저런 문제가 있다는 얘길 들었지만, 그래도 사고 싶다고 만드는 게 핵심이다.

 그리고 크리에이터들, 광고 대행사들의 그 창의적인 사람들도 자주 빠지는 함정이라는 게 존재한다. ATL(Above the Line), BTL(Below the Line)3)이라고 들어보셨을 거다. 이게 원래는 광고회사가 광고나 프로모션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수수료 체계 때문에 생긴 개념일 뿐 대단한 마케팅 용어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계속 굳어지니까 이게 마치 대단한 마케팅 용어, 광고 용어인 것처럼 쓰이게 됐다.

한 업계에서편의상사용되던 용어가 갑자기학술용어내지 업계의 상징과 같은 용어가 되면서용어가
현상을 잡아먹는상황이 됐다. ATL BTL 구분 자체가 의미 없어진 시대에도 여전히 그 프레임에서 사고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나 역시 꽤 오랜 시간 광고대행사에서 크리에이터로 살아왔는데, 그때도 문제가 있다고 느끼긴 했지만 나오고 나니 확실히 이 문제가 보였다. 이런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인위적인 구분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통합적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관점이 도출될 수 있다.

3)
ATL
TV, 신문, 라디오,
잡지와 같은 전통적인 매체를 활용하는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이고 BTL은 다양한 이벤트와 프로모션, 온라인 마케팅, 텔레마케팅 등
ATL
을 제외한 것들이다.

급변하는시대, 광고인과 마케터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소비자들의 변화부터 생각해보자. 내가 늘 하는 얘기인데 소비자는 각보다 크게 변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똑같은 습성을 지니고 있다. 가장 중요한 습성은광고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너무나 많은 광고와 홍보성 정보가 곳곳에서 튀어나오니까, ‘상업적 메시지를 거부하는 정도가 예전보다 훨씬 심해졌다. 거부, 무시를 넘어 거의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그럴수록 기업에서 마케팅 하는 사람들은 더욱 힘들어진다. 이걸 돌파하는 건 결국 콘텐츠의 힘, 스토리의 힘이다

 

나도 항상 해외 사이트를 돌아보고, 앞서가거나 참고할 만한 부분을 찾아본다. 그러면서 나 역시 한 명의 콘텐츠 수용자로서 스킵하지 않는 광고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 그 영상이나 스토리의 특별한 점을 생각해보게 된다. 끊임없이 이런 일을 반복하면서콘텐츠의 매력도를 높일 방법을 계속 찾아야 한다. 그런 고민과 노력을 하는 동시에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방식과 매체, 미디어가 무엇인가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일단미디어라는 단어를 들으면 돈을 지불하고 지면이나 시간을 사야 하는 올드미디어를 떠올리고, 그 다음에 광고비가 저렴한 인터넷을 떠올린다. 그리고 최근 SNS라는, 큰 비용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미디어를 중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사고방식이 ATL, BTL의 프레임을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미디어는 수없이 많다. SNS의 수가 많다는 뜻이 아니다. 각 업체는 자신만이 가진 훌륭한 미디어가 있다. 광고를 하고 마케팅 프로모션을 하는 내 입장에서는 티월드매장, SKT 4300개 매장이 미디어다.

거기에 체험공간을 넣어진실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우리의 메시지를 잘만 만들어 퍼뜨릴 수 있게 하면 매장이 곧 미디어가 된다. 이런 식으로미디어라는 단어에서 몇 개의 매체를 떠올리는 게 아니라 그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 그리고 공간을 떠올려야 한다. 유튜브가 대세라고, SNS가 대세라고 여기고 거기에만올인하면, 그저 예전의 지상파 방송국과 메이저 신문/잡지사가 갖고 있던권력이 이동하는 것이 되고, 그렇게 새롭게 탄생한 권력에 맞춰주는 형태의 광고를 만들 수밖에 없다.

 이상적이지만, 그래도 궁극적으로 기업이 추구해야 할 것은 스스로 브랜드 채널을 만들고, 자신이 가진 모든 미디어를 활용해 그 안에서 사람들이 매력적인 콘텐츠를 보고 즐기고 놀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Unconventional Insight

 

1. 유효도달률, 시청률 1% 대비 단가 효율성 등의 지표는 때론 잊어버리는 게
낫다.

창의성 있는 콘텐츠 개발에 방해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2. 마케터들이마케팅에 대해 잘 알고, 잘 안다고 생각할수록마케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높은 학력, 뛰어난 이론적 지식, 분석틀로 무장한 채마케터 함정에 빠지기 때문이다.

 

3. 광고업계의 일상화된 용어, ATL BTL은 사실 장부상 회계처리의 편의를 위해 사용하던
용어에 불과했다. 절대 학술적이고 이론적인 용어가 아니다.
실무적으로도 지금 시대에 전혀 의미가 없다.

 

4. 소비자
공감코드에 반응하는 게 최근의 현상은 아니다.
항상 반응해왔다. 그동안 크리에이터들의 용기와 창의성이 부족했을 뿐이다.

 

Related Posts

Comments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

3 × 2 =

Stay Connected

spot_img

Recent St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