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의 상대는 없다’

2006, 스포츠 업계 상황을 새롭게 바라보는 책이 출판 되었다. 그 책은 나이키의 상대는 닌텐도다’.

 

부동의 세계 1, 스포츠용품 업체 나이키는 1994년부터 1998년까지 5년 연속 3배 이상의 성장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2000년부터 성장율 둔화의 기미가 보이자 즉각 경영 혁신에 돌입했다. 이 때 새롭게 규정한 나이키의 경쟁상대는 닌텐도, 소니, 애플이었다.

 

나이키는 아디다스와 리복이 아닌 IT 업체들을 신 라이벌로 규정한 것. 그 이유는 나이키의 주 타겟 고객인 청소년들이 게임과 컴퓨터에 몰두하게 되면서 운동을 즐기는 시간이 줄어들어 나이키의 매출 수익에 지장을 받았다고 평가한 것이다.

 

'나이키의 상대는 없다',,스포츠·레저,미디어잇, 뉴스, 신상품 뉴스, 신상품 소식, 상품 리뷰, 제품 리뷰, 상품 인기순위, 쇼핑뉴스, 뉴스 사이트, 뉴스 싸이트, 쇼핑, 온라인쇼핑, 쇼핑, 구매후기, 동영상, 리뷰 동영상, 신제품 정보, 쇼핑방송

 

<▲ 나이키 뉴욕 타운>

현재 나이키는 스포츠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실제로 나이키와 점유율에서 격차를 전혀 줄이지 못한 아디다스는 더 이상 나이키의 라이벌이 아니다. 마치 나이키를 신을 것인가, 그냥 운동화를 신을 것인가.란 말처럼 말이다.

 

나이키, 어떻게 이토록 성장할 수 있었을까? 

 

<▲ 나이키 매장 중 최고의 매출을 기록하는 뉴욕 컨셉샵>

 

다윗, 골리앗에 도전하다

나이키는 1963년 탄생했다. MBA출신 필 나이트와 육상코치 빌 바우워에 의해 창업된 나이키는 초창기에 신발을 트럭에 싣고 다니며 선수들에게 공급하는 수준이었다. 현 나이키를 생각한다면 너무나 초라한 시작이다.

 

<▲ 나이키의 창립자 필 나이트>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처럼 나이키는 당시 절대강자 아디다스에 당당히 도전했다. 나이키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다양한 마케팅과 혁신적인 광고를 무기 삼아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나이키는 스포츠 스타 발굴 및 육성이란 독특한 전략으로, 대중들에게 사랑 받는 스포츠 스타들이 직접 나이키 신발을 애용하여 걸어 다니는 광고판으로 활용한다는 전략. 지금은 보편화된 전략이지만 당시 시대에서는 획기적인 마케팅이었다.

 

어떤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최고의 스타에게 나이키를 입히는 나이키의 마케팅 전략은 지금의 나이키가 업계 정상에 있을 수 있는 이유다.

 

나이키 그리고 조던

 

마이클 조던은 나이키에 빼 놓을 수 없는 스타다.

 

조던이 은퇴를 선언했을 때, 백악관에서 국무부 관리들과 중동현안에 대해 안보회의를 하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즉시 회의를 중지하고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코트를 떠나는 국민 영웅에게 경의를 표했고, 중국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무엇이 가장 위대한가?’ 라는 설문에 처음으로 만리장성을 제치고 조던이라는 대답이 처음으로 나왔다.

 

이 이야기는 바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포츠 스타인 마이클 조던에 관한 일화이다.

 

<▲ 마이클 조던>

 

조던이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가 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조던의 농구 실력도 있겠지만 나이키의 이미지 메이킹과 광고의 영향도 있었다. 나이키는 그를 모범적인 선수로 만들었고, 언제나 그가 최고라고 말했다. 결국 조던은 NBA넘버원에 등극했고, 나이키도 함께 업계 넘버원으로 등극했다. 나이키와 조던의 만남은 서로에게 윈윈 이었던 것이다.

 

만약, 1984년 조던이 UNC(University of north carolina) 졸업 후 아디다스와 계약을 맺었다면 지금의 나이키는 없었을 것이다. 마이클 조던은 나이키와 계약하기 전까지는 아디다스를 신었기에 어떻게 보면 아디다스가 조던과 계약 할 확률이 더 높았다. 하지만 조던을 잡은 것은 아디다스가 아닌 나이키였다.

 

당시 농구 담당 스카우트 서니 비카로는 나이키를 설득해 조던에게 전폭적인 투자를 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나이키의 여유자금 50만 달러를 모두 조던에게 투자할 것을 권했다. 당시 NBA에서 1분도 뛰지 않은 신인에게 이러한 파격적인 금액을 제시한 것은 유래가 없던 일. 나이키는 비카로를 믿고 그에게 투자했다.

 

<▲ 나이키 조던샵>

 

나이키의 과감한 결정은 성공으로 이어졌다. 평균 28점을 넣고 림을 향해 날아가는 조던과 그의 농구화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엄청난 판매로 이어졌다. 조던이 은퇴하는 날 나이키의 주가가 폭락했고, 조던이 복귀하는 날 엄청나게 상승했으니 조던이 나이키에 어떤 의미인지는 누구나 알 수 있다. 현재는 나이키의 자회사인 나이키 조던의 최대 주주 조던에 관해 나이키 창립자 필 나이트시대를 통틀어서 최고의 선수이고 우리와는 단순한 계약을 넘어 나이키 브랜드를 창조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이키의 혁명적인 광고전략

 

대개 사람들은 TV광고에 대해 지루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이키 광고는 다르다. 특히 청소년 층은 열광적으로 받아들인다. 빠르고 리듬감이 넘치며, 광고의 주인공은 항상 열정적이다. 짧은 광고 속에서 스포츠의 감동을 주고, 가끔은 웃음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JUST DO IT’.

 

나이키의 광고는 몰입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기발한 아이디어들은 나이키 광고 대행사 CEO ‘댄 와이든의 머리 속에서 나왔다. 나이트는 항상 와이든에게 우리의 친구와도 같은 운동선수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광고라고 주지시켰다. 진짜 광고 같은 것은 싫다는 것. 광고가 아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자는 것이다.

 

 

<▲ 나이키의 축구 프리스타일 광고(출처:유투브)>

 

와이든은 기존광고와 달리 선수들만 알 수 있는 정보를 포함시켰다. 특이한 발상으로 시작 된 나이키 광고는 폭발적인 돌풍을 가져왔고 1987년 드디어 업계 1위인 리복을 끌어내렸다.

 

나이키는 광고의 영향을 실감했다. 나이트는 기발한 광고로 인기와 매출이 치솟자 대중이 나이키를 이해하는데 광고가 필수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 후 나이키의 광고는 혁신적으로 히트치기 시작했고, 마치 전염병처럼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다. ‘JUST DO IT’의 히트로 마이클 조던 역시 NBA의 얼굴이 되었고, 젊은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와 독특한 조화를 이룬 광고로 조던은 광고계에서도 최고의 스타가 됐다.

 

 

<▲ 르브론 제임스의 나이키 광고(출처:유투브)>

 

현 나이키의 스폰서를 받고 있는 NBA 선수 르브론 제임스는 나이키 조던의 광고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났다. 그는 당시 나이키 조던의 광고에 대해 에어 조던만 있으면 마이클 조던처럼 날수 있다고 믿었다. 조던처럼 그 운동화만 신는다면 챔피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그 영향을 받아 2003년도에 나이키와 계약했다.

 

나이키는 NBA 레전드 선수인 찰스 바클리의 의견을 토대로 상품보다는 사회적인 이미지가 강한 광고에도 도전했다. 그 광고는 다시 한번 돌풍을 이어갔다. 농구에 열광하는 청소년들에게 찰스 바클리는 난 여러분의 모범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모범은 부모님입니다라고 말하는 광고였다. 이 광고로 나이키는 단순한 스포츠 브랜드가 아닌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기업이 되었다.

 

 

<▲ 김연아의 나이키 광고 (출처:유투브)>

 

TV 시청자가 줄어드는 요즘 나이키는 온라인 광고에 주목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도 와이든은 욕구충족보다 운동에 대한 동기부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와이든은 변한 것은 없다. 아직도 사람들의 동기부여를 끌어내는 것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25년동안 많은 수 많은 히트작을 배출 했고, 수 백 건의 광고를 제작했지만 나이키가 전해 주는 대표 메시지는 늘 같다. 바로 ‘JUST DO IT’.

 

나이키 로고 탄생 스토리

 

강력한 상징을 갖고 있는 것은 파워 브랜드의 특징, 나이키의 상징은 승리라는 뜻의 니케(Nike)’. 로마신화에서 니케는 그리스 전사가 페르시아에 승리했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42.195km를 달리며 기도를 올렸다는, 바로 그 승리의 여신. 니케를 영어식으로 발음하면 나이키가 된다.

 

 

승리를 상징하는 나이키라는 이름에 걸 맞는 로고를 제작하려 고심한 1971. 나이키는 포틀랜드 주립대학에서 그래픽을 공부하던 여대생 캐롤린 데이비슨에게 로고 디자인을 의뢰한 것이 오늘 날 나이키의 로고가 되었다. 캐롤린은 여신 니케의 날개와 옷자락에 흐르는 선에서 영감을 받아 승리를 상징하는 ‘v’를 부드럽게 뉘어 놓은 현재의 나이키 로고를 디자인했다.

 

 

이것이 지금 세계적으로 나이키를 상징하는 스우싀(swoosh)’로고가 된 것. 당시 캐롤린은 로고를 디자인한 대가로 받은 돈은 고작 35만 달러. 이 로고가 현재는 11.999억 달러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 로고만 따져봐도 지난 40년간 나이키가 얼마나 고공 성장을 했는지 알 수 있다.

 

나이키의 공격적인 스타마케팅

 

나이키의 마케팅은 혁명적이었다. 나이키는 경쟁상대인 아디다스의 마케팅 방법. 즉 경기 자체를 후원하는 거시적 방법이 아닌, 유명 선수들과 해변에서 파티를 열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스타 그 자체를 후원하는 미시적 접근을 추구했다.

 

<▲ 나이키스타 르브론 제임스, 타이거우즈, 마리아 샤라포바>

 

이를 통해 탄생한 최초의 스타가 바로 마이클 조던이다. 많은 스포츠 문화연구자들은 나이키가 조던을 무절제하고 부도덕한 흑인이 아닌 가족적이고 매우 도덕적인 미국인의 이미지로 만들어 이를 자신의 상품이미지와 결합시켰다고 말했다.

 

나이키는 마이클 조던의 이미지를 흑인의 성공담으로 포장해 많은 흑인 들에게 열심히 노력하면 너희들도 마이클 조던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로 ‘JUST DO IT’과 연계 시켰다. 이는 미국 내 농구 붐을 가져왔고 조던은 흑인들의 영웅이 되었다.

 

<▲ 나이키스타 마이클 조던, 김연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나이키가 낳은 또 하나의 스타 타이거 우즈’. 당시 프로에 갓 데뷔한 천재 골퍼 우즈에게 나이키는 천문학적인 금액 440억원을 제시했다. 나이키는 타이거 우즈가 마이클 조던처럼 황금알을 나아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의 신들린 샷으로 미국 PGA사상 세 번째로 단일대회 4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2003년 나이키 골프는 골프업계 점유율 1위로 새로이 등극했다. “최고의 흑인 골퍼가 아닌 최고의 골퍼가 되고 싶을 뿐이라던 타이거 우즈는 백인 우월주의가 남아있는 마지막 스포츠인 골프에서 인종 차별을 딛고 최고가 되었다. 나이키 역시 인종 차별에 관한 광고로 흑,백 관계없이 누구나 하면 된다는 인종차별 없는 세상을 부각시키며 또 다른 마케팅의 성공을 맛보았다.

 

나이키는 위의 두 선수 외에도 각 종목의 최고 선수들을 후원하며 스타 마케팅에 엄청난 금액을 투자하고 있다. 나이키의 마케팅 비용 역시 업계 1 25000억원을 마케팅에 투자하는 아디다스보다 1 3000억원이 더 많은 3 8000억원을 마케팅으로 투자한다.

 

기능성 슈즈는 나이키의 원동력

 

나이키의 스타마케팅이 돋보이는 이유는 단순한 스타 만들기가 아닌 실제로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고도의 기술력이 들어간 최고의 제품을 생산한다는 스포츠 테크놀로지가 뒷받침 되기 때문이다.

<▲ 나이키 루나 스위프트와 에어맥스90′>

 

나이키의 테크놀로지는 맥스 시리즈로 시작해 지금의 루나 시리즈까지 다양하게 발전했다. 각 종목별로 필요로 하는 기능이 다른 것처럼 많은 종목에 적합한 기능을 적용한 신발을 개발했다. 하지만 전문 기능성 슈즈를 착용하는 선수들보다 나이키에 실질적으로 더 큰 도움을 준 이들은 따로 있다.

 

1990년대부터 운동화가 기능성은 물론 자신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자리잡아 가면서 나이키에는 마니아 층이 생기기 시작했다. 최고를 상징하는 신발로 나이키가 시장을 선점 한 이유다. 나이키 신발을 너무나 사고 싶어하는 흑인 아이의 이야기가 담긴 <, 나이키>라는 책이 나왔을 정도니 나이키가 미국 내에서 얼마나 큰 문화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나이키는 본격적으로 기능과 디자인이 접목된 마니아를 위한 신발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모델은 나이키라고 하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신발 에어 포스 원나이키 에어 맥스.

 

나이키는 마니아들을 위해 기존 모델과 한정판 모델을 구분하여 시장에 내 놓았다. 한정판은 소비자로 하여금 기대심리를 불러 일으키고 희소성 심리를 자극해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에어 포스 원의 한정판 모델은 기존가를 넘어서 500~700달러에 거래 되었고, ‘레이저 포스는 한 켤레에 1500달러에 판매되었다. 또한 마니아들은 한정판 모델의 출시 일에 맞춰 몇 일 전부터 매장 앞에서 줄을 서며 기다렸다.

 

나이키 넬슨 패리스나이키는 단순한 브랜드가 아닌 우리가 숭배하는 대상이라고 말했다. 나이키를 구매하는 소비자 역시 마찬가지 나이키신발을 모으고 수집하는 마니아들은 이미 나이키를 숭배하고 있다.

 

미국의 스케이트보드시장을 정복하다.

 

시장조사 전문 기업인 ‘The NPD Group’사의 산업분석에 따르면 나이키는 러닝, 농구 다음으로 스케이트보드화의 판매가 많은 것으로 나왔다.

 

<▲ 나이키SB 스토어>

 

스케이트보드는 미국에서 반항적인 청소년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스케이트보드는 주류 문화로 편입 됐다. 나이키가 이들을 본격적으로 끌어안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스케이트보드 전문 브랜드인 컨솔리데이티드스케이트보드 대표 가이 싱어나이키는 진정한 보더가 아니다. 스케이트보드의 성장 동력은 순수한 열정이었다.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은 독점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것이라며 나이키의 시장 진출을 반대했다. 이렇듯 대부분의 스케이트보드 회사들은 나이키의 진출을 반대했다. 나이키의 슬로건을 비꼰 ‘DON’T DO IT’이라는 문구를 곳곳에 배치했을 정도였다.

 

이런 시장에서 나이키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나이키는 스케이트보드 시장의 효과적인 진출을 위해 샌디 보데커를 영입해 시장의 침투를 맡겼다. 그는 대부분의 보더들이 영세매장에서 자기에게 맞는 신발을 구매한다는 것을 파악하고 과감히 매장을 포기하고 영세매장에 신발을 납품하여 보더들에게 직접 선택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선택은 보더들이 하고 나이키는 타 보드 브랜드와공정한 경쟁을 통해 자신의 브랜드를 알리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때, 나이키에서 제작한 첫 보드화가 덩크 시리즈.

 

 

<▲ 나이키SB의 폴 로드리게스 광고(출처:유투브)>

 

보데커는 폴 로드리게스라는 19세의 길거리 스케이트 보더에게 희망을 걸었다. 그의 화려한 스케이트보드 동작들을 광고로 만들었고 광고를 본 보더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가 신는 덩크, 그가 착용한 나이키SB’의 의류들을 본 사람들은 그를 따라 구매하기 시작했고 나이키는 타 브랜드와의 경쟁에 우위를 점하며 시장을 석권했다.

 

성장에 성장을 거듭한 나이키에 더 이상 적수는 없다. 하지만 나이키의 목표는 지금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스포츠 부문에 진출해 모두에게 운동화, , 공을 판매한다는 것. 이 꿈 이루어질 때까지 나이키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이키는 그들의 슬로건인 ‘JUST DO IT’처럼 또한 번의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나이키는 그들의 슬로건인 ‘JUST DO IT’처럼 또 한번의 혁신을 준비 중이다.

미디어잇 선우윤 기자 mensnike@it.co.kr
상품전문 뉴스채널<미디어잇(www.it.co.kr)>

Related Posts

Comments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

1 × 1 =

Stay Connected

spot_img

Recent St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