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균형한 발에 새 균형 창조…뉴발란스 성공키워드는 `치료`

[Best Practice] 美 스포츠 브랜드 뉴발란스

3발가락으로 균형 닭발서 영감…’아치 서포트’ 개발 신발 사업
보통 사람 광고모델 전략 적중…업계 12위서 2위로 수직상승
비싼 인건비, 高효율로 이겨…이유있는 英·美 생산기지 고수

 

중국 베이징(왼쪽)과 서울의 뉴발란스 컨셉트 매장.

이른 새벽, 한 남자가 아무도 없는 도로 한가운데서 몸을 푼다. 운동화 끈을 고쳐 맨 뒤 달리기를 시작한다. 주위는 고요하다. 오직 그의 숨소리만 들릴 뿐. 호흡은 점차 가빠진다. 그리고 내레이션이 흐른다. “나는 달린다. 많은 사람들이 달리지만, 오늘 내가 뛰는 길은 나만의 길이다. 길은 나의 인생과 같다. 나는 완주해야 한다. 나의 인생을 다 살아내야 하듯.”

미국 스포츠 브랜드 뉴발란스 광고 중 한 편이다. ‘러너의 신념-평화로 이르는 길’이라는 제목의 이 광고는 뉴발란스의 마케팅 전략을 잘 보여준다. 마라톤은 평범한 사람의 인생을, 완주는 그의 개인적인 성취와 내면의 성장을 상징한다. 나이키 아디다스가 막대한 모델료를 주고 스타 선수들을 광고에 등장시킬 때 뉴발란스는 평범한 사람들을 모델로 썼다.

비싼 모델료를 쓰지 않고도 뉴발란스는 급성장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1990년 미국 운동화업계 12위였던 뉴발란스는 2004년 2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치료’의 마케팅

나이키의 마케팅은 경쟁과 사회적 성공에 초점을 맞춘다. 미국 프로농구의 승자인 르브론 제임스에게 9000만달러의 광고료를 지불하기도 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에게는 1억달러를 썼다. 아디다스는 1억6000만달러를 들여 영국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을 모델로 기용했다.

그러나 뉴발란스는 평범한 개인, 그리고 그의 성취에 초점을 맞췄다. “스스로와 관계를 가져라. 뉴발란스(새로운 균형)를 성취하라”는 슬로건은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성공에 목마른 젊은 시절 사람들은 사랑, 일, 놀이에서 경쟁자를 앞지르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러나 중년기가 다가오면서 내면의 자아와 개인적인 성취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뉴발란스의 광고는 이 같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겨냥한 것이다. 때마침 미국 베이비붐 세대가 중년기에 접어들면서 뉴발란스의 마케팅 전략은 성공을 거뒀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뉴발란스의 마케팅 철학은 20세기 강매(强賣)주의 마케팅이 아닌 21세기 치료 마케팅 패러다임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분석한다. 강매주의 마케팅은 공격적인 판매 목표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치료 마케팅은 소비자의 욕구에 주목한다. 소비자의 마음을 읽어 소비자가 진심으로 원하는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발볼 넓어도 OK…맞춤형 운동화

1906년 33세였던 뉴발란스 창업자 윌리엄 라일리는 발에 장애가 있거나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경찰, 소방관, 우체부 등을 위해 발에 무리가 가지 않는 신발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마당에서 놀고 있는 닭이 발가락 3개만으로도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기서 영감을 얻은 라일리는 발을 안정적으로 지지해주는 ‘아치 서포트(Arch Support)’를 개발, 운동화 사업에 뛰어들었다.

치료를 중시하는 뉴발란스의 철학이 창업 과정에 녹아들어가 있는 셈이다. 뉴발란스 운동화 기술의 핵심인 아치 서포트는 일종의 신발 깔창이다. 사람의 발바닥 중앙에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인 아치를 받쳐줘 발을 땅에 디딜 때 편안하면서도 완벽하게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해준다.

1956년 라일리가 세상을 떠난 뒤 경영권을 물려받은 사위 폴 키드는 트랙스터 러닝화를 개발했다. 트랙스터 러닝화는 운동화업계 최초로 물결 무늬 밑창을 도입했다. 또 최초로 발 너비에 따라 사이즈를 구분했다. 트랙스터는 출시되자마자 입소문을 타고 전문가들의 추천 운동화 리스트에 올랐다.

뉴발란스 운동화는 지금도 발 너비에 따라 사이즈가 다르다. 남성용은 B~6E, 여성용은 4A~4E로 구분된다. 뉴발란스 관계자는 “회사 이름인 뉴발란스는 ‘불균형한 발에 새로운 균형을 창조한다’는 개념에서 나온 것”이라며 “건강한 삶을 위해 최고의 편안함을 제공하려는 뉴발란스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1972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가 열리던 날 짐 데이비스 현 회장은 폴 키드로부터 뉴발란스를 인수했다. 당시 뉴발란스는 직원 6명이 하루 30켤레의 신발을 만들고 있었다. 데이비스 회장은 1975년 뉴발란스 고유의 ‘N’ 로고를 만들어 대중적 브랜드로 도약을 시도했다. 이후 보스턴을 중심으로 미국 전역에 마라톤 붐이 일면서 뉴발란스는 급성장했다. 현재 뉴발란스는 전 세계 120여개국에 진출했다.

◆미·영 생산기지 고집하는 이유


뉴발란스는 생산방식도 경쟁사와 차별화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 베트남 등 개발도상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했다. 그러나 뉴발란스는 미국과 영국의 생산공장고수하고 있다. 미국 뉴발란스 공장은 현재 북미 지역 판매량의 25%에 해당되는 운동화를 생산한다. 앞으로도 이 비중을 꾸준히 늘린다는 계획이다.

경쟁사보다 많은 인건비를 지출하면서 어떻게 가격 경쟁력이 유지될까. 비결은 생산성과 효율이다. 아시아 공장에서 신발 한 켤레를 만드는 데 평균 4시간이 걸리는 데 비해 미국 공장에서는 25분이면 충분하다.

높은 생산성은 직원들의 높은 만족도와 낮은 이직률에서 나왔다. 뉴발란스는 교육을 통해 직원들이 전문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성과를 낸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준다. 운영과정을 개선한 직원들을 시상하는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이직률은 낮아졌다. 숙련된 직원들이 많아지고, 생산성이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 데이비스 회장은 “미국 공장의 인건비는 개도국에 비해 13배 이상 비싸지만 생산성 또한 13배 이상 높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영국에 공장을 둔 덕분에 뉴발란스는 경쟁사보다 훨씬 빨리 소매업체에 제품을 공급한다. 소비자들의 취향 변화에도 빨리 대응할 수 있다. 지난 4월에는 미국에서 소비자 주문 운동화 제작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온라인으로 색상과 디자인을 골라 자신만의 맞춤 운동화를 주문하면 4~8일 이내에 배달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북미 공장의 한 매니저는 “(공장이 해외에 있는) 경쟁사들은 도입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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