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categorized브랜드소식한국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의 ‘창업스토리’ - 이랜드

한국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의 ‘창업스토리’ – 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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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가 짧은 시간 안에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과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들 기업가들은 독특한 경영이론과 기법들을 창안했으며 한국의 기업풍토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이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은 인재제일주의를, 현대의 정주영은 생산의 혁신을, LG의 구인회는 인화모델을 각각 창안해 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들 1세대 창업자들의 도전과 혁신적인 창업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일요서울]은 한국 경제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기업들의 창업스토리를 출판물 또는 기존 자료를 통해 다시금 재구성해 본다. 그 스물다섯 번째 창업스토리의 주인공은 6.61㎡(2평)짜리 보세 옷 가게 ‘잉글런드’에서 시작해 연매출 8조원, 재계순위 26위로 성장한 이랜드다.

 

   
 

연매출 8조 원, 재계순위 26위(2007년 기준, 공기업 제외)의 이랜드 그룹을 일군 박성수 회장의 27년 전 모습은 지금과 전혀 달랐다. 이대 앞 보세 옷 가게 ‘잉글런드(England)’로 출발, 5년 동안 근육무력증이라는 희귀병과 싸운 끝에 간신히 기력을 되찾은 30대 젊은 사장에 불과했다.

처음 옷 가게를 시작했던 그는 날마다 동대문 시장에서 옷을 사다가 이대 앞에서 팔기 시작했다. 초창기 하루 매출은 달랑 몇 만 원이 전부였다. 게다가 가게를 차리는 데 빌린 500만 원이 가진 돈의 전부여서 차는 구입할 엄두도 못 냈다. 이에 그는 택시비마저 아까워 날마다 옷 짐을 지고 버스에 올라야만 했다.

 

옷가게서 출발…재계 26위

 

이처럼 박 회장이 이대 앞 옷가게로 출발해 기업화까지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은 시작부터 끝까지 ‘다르게 생각하기’에 있었다.

이대 앞에 잉글런드라는 옷 가게를 처음 열 때 ‘눈 있는 사람이 놀라는 가게’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당시 이 가게 앞을 지나쳤던 이대생들은 실제로 놀랐다는 후문이다. 이는 통학 때 입을만한 무채색 계열의 차분한 옷들만 진열해 놓은 근처의 다른 옷가게들과 달리 원색의 옷을 상품 구성(MD)으로 내놓았던 것.

잉글런드가 기존 옷가게와 다른 상품 구성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바로 타깃 고객층이 기존 옷가게의 고객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고객층을 염두에 두면서 이에 맞는 새로운 상품 구성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진열 상품의 차별화였다. 박 회장이 당시 잉글런드의 진열대에 원색의 옷을 배치한 것은 기숙사 거주 학생들을 타깃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기숙사에 사는 지방 출신 여대생들이 평상복으로 입을 만한 옷을 팔기로 했다. 이들은 그 누구보다 패션 욕구가 강하지만 스스로 동대문 시장이나 남대문 시장을 헤집고 다닐 만큼 서울 생활에 익숙지 않았다. 따라서 박 회장은 동대문 남대문에서 쓸 만한 옷을 찍어 오면 팔릴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당시 이대 주변의 기존 옷가게 주인들은 통학 중인 이대생들을 대상으로 상품구성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학교 주변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통학하는 서울 출신 학생들이 아니라 기숙사 거주 학생들이다. 통학하는 학생들은 아침저녁으로 그저 지나다니기만 하지만 기숙사생들은 학교에서 먹고 자면서 생활을 한다. 다시 말해 학교가 교육의 장이자, 생활의 터전인 셈. 그러다 보니 자연히 소비생활도 학교 주변에서 다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쇼핑할 옷도 당연히 학교 주변에서 살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 착안한 ‘잉글런드’는 이대 기숙사 학생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빨간색 같은 원색 계열의 옷을 싼 값에 팔아 손님을 끌었고, 친절한 서비스로 찾아오는 이들을 단골로 만들었다.

 

 남 중심적 사고 지향

 

박 회장에게 오랜 투병기간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해준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는 근육무력증을 앓는 동안 국내에서 발간되는 대부분의 시사·경제 매거진과 수많은 경제·경영 서적을 독파했다. 이때 읽었던 책들이 뒷날 이랜드가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펴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희귀병에 절망한 나머지 무기력하게 누워서 시간만 보냈다면 지금의 성공은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비즈니스맨으로서 소양을 갈고 닦은 박 회장이 혼자만의 힘으로 이랜드를 대기업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이랜드맨들이 자신들만의 고유한 정신과 기업문화로 똘똘 뭉쳐 27년을 달려왔기에 지금의 거대한 이랜드 그룹이 될 수 있었다.

박 회장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여러 강연과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이랜드의 성공 비결은 “다른 제품보다 질 좋은 제품을 다른 이들보다 싸게 판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박 회장의 강연이나 기자회견을 들은 이들은 하나같이 “너무 당연하고 뻔한 얘기를 하는 게 아니냐”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바꾸어 말하면 ‘고품질의 상품을 저가에 판매하면 매출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는 아주 확실한 판매의 진리가 담겨 있는 박 회장만의 철학이 담긴 말이기도 하다.

이유야 어찌됐든 간에 대박집 사장의 입에서 ‘쪽박집’ 주인도 알만한 평범한 대답이 나오면 김이 팍 새는 법이다. “진리는 의외로 평범한 곳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조차 진부한 시대다. 그렇다면 과연 이랜드는 다른 기업들과 어떤 점에서 확실히 다른 경영을 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파는 사람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고품질의 제품을 저렴하게”라는 이랜드만의 ‘남 중심적’ 경영 철학이다.

사실 현재에서 이랜드를 일궈 온 성공의 비결이나 비즈니스의 철할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규모에서부터 압도당하고 들어간다.

이랜드는 캐쥬얼 의류업계를 석권했고, 도심형 백화점 아울렛(2001아울렛, 뉴코리아아울렛 등)이라는 새로운 유통채널을 개척했다.

태생부터 이랜드 계열 브랜드인 ‘티니위니’나 ‘후아유’ 매장을 둘러보고, 2001아울렛에서 천 원짜리 데코레이션 상품을 만지작거리다가, 찰스 왕세자가 사는 ‘성(城)’의 이름인 ‘켄싱턴’으로 간판을 바꿔 단 ‘뉴설악 호텔’의 환골탈태를 지켜보면서 “도대체 어디에 남 중심적 사고가 있지?”라고 묻는 것은 부질없다. 흔히 이랜드의 성공비결을 찾으려는 많은 이들이 빠지는 오류 중 하나가 현재의 거대해진 이랜드를 대상으로 그 어떤 성공비결을 찾아보겠다고 나서는 데 있다.

‘남 중심적 사고’는 지금까지 이랜드 성공요건의 8할에 해당한다. ‘남 중심적 사고’는 18가지 ‘이랜드 스프릿’ 중에 가장 상위에 놓이는 개념이다. 이랜드 그룹을 성공으로 이끈 남 중심적 경영철학을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이대입구에서 자본금 500만 원으로 시작한 구멍가게 잉글런드의 성공비결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좋다. 

 

쉽게 꺾이지 않는다

 

이랜드는 지금 재계의 전통적인 대기업들로부터 ‘질투’에 가까운 시선을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기간에 고도성장을 이룩한 기업답게 재계에서 이런 저런 질시에 가까운 경계대상이 되고 있다.

 이랜드를 향한 근거 없는 질시는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기린아로 떠오르면서부터 시작됐다. 이랜드에 대한 유언비어와 근거 없는 비난의 목소리가 바로 그것.

질투 어린 비난의 화살이 조금 잠잠해졌다 싶더니 이번에는 비정규직 사태를 둘러싸고 노조의 공격이 시작됐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비정규직 관련법’ 개정 싸움에서 수세에 몰린 민주노총이 상대하기 만만한 기업으로 이랜드를 지목하자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이랜드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특히 한국까르푸를 인수해 리뉴얼한 대형할인점 ‘홈에버’는 강성 노조의 매장 점거 등으로 인한 극심한 매출 타격을 입으면서도 결코 노조와 원칙에서 벗어난 타협을 하지 않았다.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고집 때문에 비정규직 사태의 한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한 홈에버는 결국 이랜드가 인수한 지 2년여 만에 다시 영국계 유통업체인 테스코로 넘어가는 운명을 맞게 됐다. 하지만 이랜드는 그런 가운데서도 결코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았다.

이랜드는 2006년 1조7000억 원을 들여 당시 ‘한국까르푸’를 인수해 홈에버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그러나 이 홈에버를 2008년 테스코에 넘긴 가격은 2조3000억 원. 인수 당시 빌렸던 돈의 이자와 나간 돈과 리뉴얼 비용 등을 모두 제하고도 4000억 원의 차익을 얻은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금전적으로 이득을 봤다고 해도 이랜드로서는 공들여 ‘프리미엄 할인점’으로 일구려던 홈에버를 노조 문제로 잘라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인수합병으로 일어서 온 이랜드그룹의 역사에 뼈아픈 사례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이랜드는 한두 번의 실패로 쉽게 꺾이지 않는 회사다. 외환위기 당시 굴지의 신용평가기관들로부터 일제히 ‘회생불가’ 판정을 받고서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선 경험도 있다.

이랜드에게 시련도 약이 된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역경을 뚫고 ‘패션’과 ‘유통’ 그리고 ‘레저’ 분야에서 강자로 성장한 이랜드의 힘은 한 명 한 명의 몸속에 흐르는 피처럼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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