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파커 나이키 CEO ‘마라톤 狂’이 신발에 꽂혀…조던 시리즈 등 인기 모델 디자인 총괄

글로벌 CEO

취임 9년…매출·주가 고공행진 이끌어

스포츠 유통업계의’잡스’, 잡스와 절친…디자인 공유·비판
집무실은 각종 장난감 가득…배트맨 신발도 만들어 유명세

과거의 영광은 버려라
신발에 IT기술 접목 시켜…몸 움직임 측정 ‘전자팔찌’ 출시
깃털처럼 가벼운 런닝화 제조

협력 통한 혁신 추구, 디자인 협력…한정판 신발 내놔
여성 고객 위한 패션쇼 진행…미래고객 학생에 운동용품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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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월간지 패스트컴퍼니는 해마다 전 세계 기업의 실적과 사업모델, 기업문화, 신기술 등을 평가해 ‘글로벌 혁신기업 50’을 발표한다. 2008년 이 평가를 만든 후 대부분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 정보기술(IT) 업체들이 1위를 장악했다.

지난해에는 이변이 있었다. 잘나가는 IT 기업들을 제치고 반세기 된 스포츠용품 명가 ‘나이키’가 선정됐기 때문이다. 운동화 및 스포츠 용품 회사가 ‘세계 최고의 혁신 기업’으로 탈바꿈하게 된 배경에는 9년째 나이키를 이끌고 있는 마크 파커 최고경영자(CEO·56)가 있다. 그가 취임한 이후 나이키의 연매출은 60% 이상, 수익은 약 57% 증가했다. 주가도 고공행진을 이어가 시가총액은 9년 새 2배로 커졌다.

에어맥스 등 만든 ‘전설의 디자이너’

파커에게는 CEO라는 직함에 앞서 ‘전설의 운동화 디자이너’라는 별명이 따라 붙는다. 에어맥스, 페가수스, 조던 시리즈 등 나이키의 역사적인 인기 모델이 대부분 그의 손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파커는 1979년 나이키에 운동화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뉴욕에서 태어나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그가 나이키에 들어가게 된 건 단지 그가 어린 시절부터 뛰는 걸 좋아하는 ‘마라톤 광’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편하고 빠르게 달릴 수 없을까’하는 고민은 그를 나이키로 이끌었다. 파커는 “어린 시절 스케치를 몇 번 해본 것밖에 없었고, 대학에서 전공을 하지도 않았지만 오히려 다른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 디자이너로서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입사 이후 그는 회사의 핵심 부서를 두루 거쳤다. 엔지니어링 및 디자인 부문 총괄, 운동화 부문 총괄, 러닝화 및 특수 운동화 마케팅 총괄, 스페셜 디자인 프로젝트 팀장 등이다. CEO에 오른 건 2006년이지만 이미 지난 27년간 디자인팀을 진두지휘하면서 리더십을 키워온 셈이다.

2006년 CEO에 오르기 전까지 그가 디자인한 운동화는 매번 완판 행진을 이어갔다. 영화 ‘배트맨’에서 주인공이 신는 신발도 그가 디자인해 유명세를 탔다. 그는 “디자이너에서 경영자가 된 이후 우려의 시선도 많았다”면서 “나쁜 건 덜어내고 좋은 것을 골라 조합하는 ‘편집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서 디자인과 경영은 매우 닮았다”고 말한다.

그는 스포츠 용품 업계의 ‘스티브 잡스’로 불린다. CEO이면서 여전히 나이키의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커와 잡스는 소문난 절친이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서로의 제품을 평가하고 때로 비판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집무실은 해마다 언론에 공개하는 날을 따로 마련할 만큼 이색적인 공간으로 유명하다. 셀 수 없이 많은 장난감과 포스터, 나이키의 초창기 운동화 모델, 각종 악기와 지미 헨드릭스의 기타, 그림들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과거 영광에 안주할 수 없다”

파커는 ‘나이키는 운동화 잘 만드는 회사’라는 공식을 깨고 싶었다. 열심히 운동화만 만드는 방식을 고집하다가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거대하고 느리고, 정체돼 있는 관료적인 회사가 될까 두려웠다”며 취임 이후 혁신작들을 잇따라 내놓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그가 취임 후 만들어낸 혁신의 결과물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는 CEO에 오르자마자 ‘디지털 스포츠 부문’을 만들었다. 엔지니어들은 이때부터 나이키 트레이닝화를 신고 센서를 온몸에 두른 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또 굴러다녔다. 몸의 움직임과 강도를 데이터로 수집해 애플기기 등 IT 제품과 연동시켜 데이터를 분석했고, 이를 고전 비디오 게임 기기들과 연결하는 실험을 반복했다. 이렇게 하루종일 몸을 움직이고 놀기를 수년. 2012년 나이키는 몸의 모든 움직임을 측정하는 150달러짜리 전자팔찌 퓨얼밴드(FuelBand)를 내놓았다. 업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파커는 “사람들은 나이키를 그저 옷이나 신발 파는 회사라고 생각했지만, 퓨얼밴드를 내놓은 이후 확실히 디지털 집단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4년간 공들인 플라이니트 레이서(Flyknit Racer)도 그의 혁신작 중 하나다. 마치 양말을 신은 듯, 깃털처럼 가벼운 러닝화인 플라이니트 레이서는 여러 개의 천을 덧댄 게 아니라 실로 직조해 만든 운동화다. 나이키의 전통적인 제조과정을 완전히 뒤엎은 것이다. 그 결과 기존 운동화보다 약 30g 가벼운 160g의 신발을 만들었다. 파커는 “직조 방식의 운동화 제작은 친환경 기술이며 동시에 장기적으로 제품 단가를 낮출 수 있는 기술”이라며 “신발 제조업계를 완전히 뒤바꾼 발상이었다”고 자평했다.

혁신은 협력에서 나온다

파커는 CEO 자리에 올랐지만 숫자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요즘도 운동화를 디자인한다. 나이키 최고 라인인 ‘더 나이키 HTM’은 핵심 연구기술(R&D) 부문으로 기능하고 있다. HTM은 후지와라 히로시, 팅커 해트필드, 마크 파커의 이름 앞글자를 딴 것. 세 명은 디자인 협력을 통해 지금까지 17개 이상의 한정판 신발을 내놓았다. 그는 “HTM의 협업은 마치 재즈 밴드의 즉흥 연주와도 같다”며 “여기저기서 변형된 아이디어들이 합쳐져 아름답고 자유로운 화음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그는 수석 디자이너 시절인 1990년대 나이키 본사 안에 ‘창의력이 샘솟는 주방(creative kitchen)’을 만들었다. 디자인을 요리하는 것에 비유해 창의력과 운동, 과학 등의 재료를 잘 조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이 주방에는 다양한 재료, 기계, 악기, 장난감, 게임 소프트웨어, 영감을 주는 사진과 그림, 스케치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다. 마치 어린이들의 놀이방을 연상케 한다. 그는 “엔지니어들이나 디자이너들이 자유로운 공간에서 맨발로 어린아이처럼 뛰어놀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불쑥 떠오른다”고 설명했다.

파커는 최근 여성 고객의 고속 성장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나이키의 여성 제품 판매 비중은 전체의 16%에 불과하지만 몇 년 내 40%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최근 부문별 여성 스포츠 스타들을 한데 모아 모델로 세운 ‘나이키 패션쇼’를 진행해 주목받았다. 파커는 “나이키의 뛰어난 디자인과 기능을 알아본 여성 고객들은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나이키 역대 최고의 기회가 눈앞에 왔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파커는 미래 고객 확보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부터 5000만달러의 기부금으로 청소년 건강을 위한 캠페인인 ‘렛츠 무브 스쿨’을 펼치고 있다. 미국 내 학교에 운동 기구와 운동 프로그램 등을 공급하는 것이다. 파커는 “요즘 아이들은 역사상 가장 몸을 덜 움직이는 세대”라며 “스포츠가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운동하는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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