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4, The New Classic] 뉴발란스 브랜드 탄생 스토리

[중앙일보] 지난 해 뉴발란스가 세운 경이적인 기록은 하루 아침에 달성된 것이 아니다. 운동화 하나에도 신는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는 철학으로 오랜 기간 끊임없이 이어온 노력이 인정을 받은 것이다.

뉴발란스는 105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스포츠 명가(名家)다. 1906년 미국 메사추세츠주 보스톤에서 탄생한 뉴발란스가 전 세계 120여 개국 진출한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기까지 그 내면에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편안함과 안정감을 더하고자 하는 뉴발란스만의 가치가 담겨 있다.

‘뉴발란스(New Balance)’ – 불균형한 발에 새로운 균형을 창조하다

1906년, 33세의 영국 이민자 출신 윌리엄 라일리(William J. Riley)는 발에 장애가 있거나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경찰, 소방관, 우체부 등을 위해 발에 무리가 가지 않는 신발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윌리엄은 마당에서 걸어다니는 닭이 3개의 발가락만으로도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닭의 발에서 영감을 얻은 윌리엄은 발을 안정적으로 지지해주는 ‘아치 서포트(Arch Support)’를 개발한다. 뉴발란스 운동화 기술의 핵심이 되는 아치 서포트는 일종의 신발 깔창으로, 사람의 발바닥 중앙에 볼록 들어간 부분인 아치(Arch)를 받쳐주기 때문에 땅에 발을 디딜 때 편안하면서도 완벽하게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역할을 한다.

< 좌: 뉴발란스의 설립자 윌리엄에게 영감을 준 닭발 / 우: 뉴발란스의 시초가 된 아치서포트 >

이렇게 개발된 아치 서포트를 기반으로 윌리엄은 직접 브로셔를 들고 다니며 신발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아서 홀(Arthur Hall)을 세일즈 파트너로 맞아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한 윌리엄은 1938년 보스톤 러닝클럽을 위해 러닝 스파이크화를 디자인한다. 가벼운 캥거루 가죽을 소재로 한 뉴발란스 러닝화는 육상선수들에게 최상의 착화감을 인정받으며 빠르게 성공을 거둔다. 특히 육상선수인 댄 맥브라이드(Dan Mcbride)가 이 러닝화를 신고 레디쉬 로드레이스(Reddish Road Race)에 출전하면서 뉴발란스 러닝화를 많은 이들에게 각인시키게 된다.

이후 뉴발란스는 러닝화뿐만 아니라 농구화, 야구화, 테니스화, 복싱화 등을 주문자 생산방식으로 제조하기 시작했고, 1941년 메이저리그의 보스톤 브레이브 선수들은 뉴발란스가 특별히 고안한 야구화를 신고 경기에 참가하기도 했다.

뉴발란스 창업자인 윌리엄 라일리가 1956년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후임자인 폴 키드(Paul Kidd)는 회사명을 ‘New Balance Orthopedic Laboratory’로 변경한다. ‘뉴발란스(New Balance)’는 ‘불균형한 발에 새로운 균형을 창조한다’는 개념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람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최고의 편안함을 제공하려는 뉴발란스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뉴발란스, 돌풍의 중심에 서다

1961년 뉴발란스는 업계 최초로 발 너비에 따라 사이즈를 구분하는 트랙스터(Tracster) 러닝화를 개발했다. 물결모양의 밑창과 충격흡수 기능이 뛰어난 트랙스터는 출시되자마자 대학 러닝코치들과 YMCA 코치들에게 가장 많이 추천 받는 제품이 됐다.

1972년 폴 키드로부터 회사를 인수받은 짐 데이비스(Jim Davis)는 회사의 본원적 가치를 신발의 착화감, 활동성, 제품개발에 두기 시작했다. 당시 회사 규모는 고작 여섯 명 남짓한 직원들이 하루에 서른 켤레의 신발을 만들 정도. 그러나 그로부터 3년 후인 1975년, 뉴발란스 고유의 ‘N’로고가 만들어지며 본격적인 브랜드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 좌: 미국 보스턴의 뉴발란스 매장(1956년) / 우: 1963년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위치한 매장 모습 >

‘N’로고가 처음 삽입된 제품은 뉴발란스의 대표적인 러닝화 320 모델이다. 1975년 뉴욕 마라톤 대회에서 마라토너 ‘톰 플래밍(Tom Flemong)’의 우승과 함께 한 뉴발란스 320은 이듬해 10월, 세계적인 러닝 잡지 ‘러너스 월드(Runner’s World)’로부터 최고의 신발로 선정되며 대중들에게 뉴발란스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주역이 됐다.

이후 짐 데이비스는 글로벌 시장에서 뉴발란스가 가진 가치와 고유의 문화를 널리 알리는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발을 신는 사람의 편안함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기술력과 철학을 인정받으며 현재까지 전 세계 120여 개국에 진출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뉴발란스, 대한민국 패션계를 접수하다

뉴발란스가 국내에 처음 들어온 것은 2001년 4월. 고기능성 러닝화 제품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뉴발란스는 2008년 시작한 감성 마케팅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데 성공한다. 특히 디자이너 송자인과의 콜라보레이션 패션쇼를 계기로 국내 패션업계에 당당히 신고식을 올린 뉴발란스는 TV 속 스타들이 즐겨 착용하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10대부터 30대까지 폭넓은 연령층의 사랑을 받은 뉴발란스는 불과 3년 만에 6배의 매출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지난 2월 1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 내에 뉴발란스의 새로운 매장이 문을 열었다. 기존의 매장과는 확연히 다른 인테리어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 이 곳은 뉴발란스 브랜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된 뉴발란스 컨셉스토어다. 매장의 입지 조건부터 인테리어 소품 하나까지 본사의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해야만 개설이 허락되는 뉴발란스 컨셉스토어가 아시아에서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에 매장을 열게 된 것이다.

뉴발란스 컨셉스토어에서는 뉴발란스의 브랜드 스토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신발을 제작할 때 사용하는 재봉틀이나 슈 라스트(shoe last, 구두골), 밑창 형틀 등 뉴발란스 탄생 초기를 재현한 소품들을 전시해 뉴발란스의 헤리티지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브라운 계열의 벽돌과 원목이 적절히 어우러진 실내 인테리어로 105년의 역사를 지닌 스포츠 명가(名家)로서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 좌: 중국 북경의 뉴발란스 컨셉스토어 / 우: 지난 달 개장한 서울의 컨셉스토어 >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번 뉴발란스 제품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또 다시 뉴발란스를 찾게 된다. 제품과 브랜드 대한 믿음을 져버리지 않도록 철저한 품질 관리와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동화에서 시작된 뉴발란스의 인기가 바람막이, 야구점퍼, 구스다운 점퍼 등의 의류와 가방, 모자 등의 액세서리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뉴발란스는 105년을 이어 온 장인정신을 기반으로 톱3 스포츠 브랜드에 진입한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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