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엑스테라 사이판 참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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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깨끗한 바다를 헤엄친 것도 잠시, 정글에서 이어진 산악 자전거와 산악 마라톤 코스는 ‘최악’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난코스였다. 글·사진 김대익

지난 4월 1일 사이판에서 열린 ‘엑스테라 사이판 대회’에 참가했다. 그동안 많은 대회에 참가했지만 해외 대회는 처음이어서 기대를 많이 했다. 3월 30일(목) 밤 비행기로 인천공항을 출발, 4월 3일(월) 아침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금요일 하루만 휴가를 내면 갈 수 있었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었다.

환상적인 바다에 매료


3월 30일 새벽 2시 사이판 공항에 도착했다. 커플 룩을 입은 신혼부부들이 비행기 안에 가득했다. 커다란 자전거 가방을 신혼부부들의 예쁜 트렁크 사이에 싣고 숙소인 PIC 리조트로 이동했다. 이곳 날씨는 한국의 여름 장마 시작 전처럼 습하고 더웠다.


3월 31일, 선수 등록을 위해 대회 본부가 있는 마이크로 비치를 찾았다. 날씨가 후텁지근했지만 너무나 파란 하늘과 깨끗한 바다, 그리고 먼지가 거의 없는 대기 덕분에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것 같았다.


현지에서 만난 주민들은 대부분 친절했다. 대회 주최 측에서 나눠주는 임시 스티커를 팔에 붙이고 다녔는데, 그걸 본 주민들은 “엑스테라 대회 참가 선수냐? 즐겁게 지내고, 좋은 추억 많이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가라”며 응원을 해주었다.


대회는 4월 1일 토요일에 열렸다. 아직 대회가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지 참가 인원은 생각보다 적은 1백여명 정도였다. 아침 8시, 마이크로 비치에서 수영을 시작으로 대회가 개막됐다.


따뜻한 수온 때문에 슈트 착용이 금지됐다. 바다가 너무 깨끗해서 바닥이 훤히 다 보일 정도였다. 이렇게 깨끗한 바다에서 수영을 해보는 것이 소원이었으니 사이판까지 온 보람 하나는 건진 셈이었다. 그러나 소원풀이만 하기에는 파도가 높고 조류도 심했다. 더구나 바다 한가운데 부표만 달랑 띄워 놓았기 때문에 코스 설정이 매우 어려웠다. 평소 올림픽 코스 1.5km 수영에서 26분 정도의 기록이 나오는데, 깨끗한 바다에 너무나 심취했는지 30분이 넘어서야 수영을 끝내고 바꿈터로 이동할 수 있었다. 산악 자전거는 30km 코스인데, 철인3종 경기용 사이클과는 완전히 달랐다. 철저하게 대비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우선 바꿈터에서 급하게 움직이다 보니 보급 음식을 떨어뜨리고 출발했던 것이다.


1km 정도 이어진 오르막 도로를 올라가다가 코스 안내자의 지시로 산악 코스로 들어갔다. 한국의 산과는 많이 달랐다. 영화에서 보던 정글이었다. 돌과 나무, 움푹 패인 좁은 길로 인해 조금 속도를 냈다가 그만 자전거와 함께 공중제비를 한 후 나무 덤불로 떨어지고 말았다. 사고를 당하기 전의 그 짧은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기만 하다. 핸들은 돌아가 버렸고 물통은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팔 여기저기는 긁혀서 난리였다. 다시 출발하려고 몸을 추스르는 동안 많은 선수들이 지나갔다.

패잔병같은 모습으로 자전거 코스 돌아


특히 ‘싱글’이라고 부르는 코스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정글 길을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것이어서 경험이 거의 없던 나에게는 매우 위험했다. 낭떠러지 느낌의 길도 있었고, 때로는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가야 하는 코스도 있었다. 중간중간 나처럼 자전거에서 굴러 떨어진 선수들을 볼 수 있었다.


산악 자전거 앞에 달린 쇼크 업쇼버도 지면으로부터의 충격을 모두 흡수하기에는 부족했다. 겨우 10km 정도를 지났을 뿐인데 어깨와 팔의 모든 관절과 근육이 진동에 극도로 피로해져 있었다. 조향과 제동이 어려워 결국 두 번이나 더 굴렀다. 나중에는 오르막이 차라리 반가웠다. 몇 번 구르고 나니 이제는 겁이 나서 내리막만 나오면 어린이가 세발자전거를 발로 차며 가듯 엉금엉금 기어 내려왔다. 구입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새 자전거는 여기저기 긁힌 자국과 흙먼지로 인해 ‘폐차’ 직전의 상태가 되어 버렸다.


몸과 장비는 엉망이 됐고, 물통과 보급 식품도 모두 잃어버려 패잔병 같은 꾀죄죄한 모습으로 남은 산악 자전거 코스를 돌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긁힌 상처와 잘못 떨어져서 다친 손바닥, 체인에 긁힌 발목 등으로 괴로움의 연속이었지만, 이국적인 산과 정글을 헤쳐나가는 순간만큼은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작은 자전거로 집 뒤에 있던 산을 헤집고 다니던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30km 산악 자전거 구간을 2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에 마무리했다. 이미 많은 선수들이 산악 달리기를 하러 나간 상태였다. 바꿈터에 자전거를 놓자마자 먹을 것부터 찾았다. 허겁지겁 스포츠 음료와 파워바 그리고 아미노 바이탈 제품을 털어넣으며 몸을 추스렸다. 많은 사람들의 응원에도 달릴 힘이 나지 않았다. 지나가는 외국 선수들을 보니 그 더운 날에 장갑을 끼고 산악 달리기 코스로 나가는 것이었다. 장갑 벗는 것을 잊어버려서 그런가 했으나 정글 코스로 들어가자마자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사이판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점령했다가 일본으로 통치권이 넘어갔고, 일본이 패전하면서 현재는 미국령이 되어 있다. 군데군데 전쟁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일본 슈퍼바이저를 통해 들은 얘기 중 하나는 전쟁 중 정글로 숨은 한 일본인 병사가 있었는데, 전쟁이 끝난지도 모르고 로빈슨 크루소처럼 20년 가까이 정글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그 정글이 바로 산악 달리기 코스였다.

생존을 위한 정글 달리기


산악 달리기라고 해서 대관령 마라톤쯤으로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글 생존 달리기’였다. 기본적으로 산길을 달려 올라가는 것은 맞으나 코스에 따라 나무를 타고 넘어야 되는 곳도 있고, 밧줄을 타고 올라가야 되는 곳도 있었다. 압권은 코스 중간에 일본인이 전쟁 중에 파놓은 동굴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동굴 안쪽에 켜진 양초가 코스를 안내하는데 ‘인디애나 존스’가 따로 없었다. ‘Amazing’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환상적인 코스였다.


조금만 힘이 더 있었더라면 정말 환상적이었을 텐데 사실은 너무 덥고 힘들어서 구토 증세까지 있었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3시간 이상 정글을 헤매고 다녔더니 피부는 다 익었고, 여기저기 긁힌 상처는 땀으로 인해 따갑기만 했다. 중간에 선수들을 만나는 일도 거의 없어서 무섭기까지 했다. 그나마 중간 중간에 위치한 보급소와 안내 요원들이 반가울 뿐이었다. 이등병 시절 이후 초코파이가 그렇게 그리운 적도 없었다. 울트라마라톤 코스처럼 중간에 편의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 산처럼 시냇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바위와 돌이 많아 페이스 조절도 되지 않았다. 마라톤 풀코스와 아이언맨 코스도 몇 번이나 완주했고, 산악 마라톤도 자신있었지만 이 코스는 생애 최고로 힘든 달리기 코스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정글을 10여km 헤매니 드디어 아스팔트 도로가 나왔다.

시계는 이미 4시간을 넘은 상태였다. 1km 정도를 더 달리면 해변에 닿고, 여기서 다시 해변을 따라 1km를 더 달리면 피니시 라인이 나온다. 아스팔트 위에서부터는 다시 달릴 수 있었다. 역시 오프로드 체질은 아닌가 보다. 해변 1km는 모래사장이어서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긋지긋한 코스가 끝난다 생각하고 꾹 참고 뛰었다. 다행히 더위로 인한 구토 증세도 사라졌다.


4시간34분28초라는 기록으로 첫 엑스테라 출전을 마무리 지었다. 많은 친구들이 첫 완주를 축하해 주어서 비록 나쁜 기록이지만 으쓱했다. 엑스테라 레이스는 정말 자연 속에서 호흡하는 경기라는 것을 수많은 상처와 아픔을 통해 배우게 됐다. 뛰는 중간에는 코스가 너무 험해 지긋지긋했지만 막상 완주하고 나니 그 코스가 그리워졌다. 그래서 내년에도 꼭 다시 참가하리라는 계획을 세웠다. 이건 진짜 고질적인 병이고 고칠 수 없나보다.


올해 대회는 엑스테라 글로벌 투어에서 처음으로 한국 선수들이 참가한 대회였다. 필자를 포함, 총 6명의 한국 선수가 출전했고, 그 중 산악 자전거 선수로 활동했던 이상영(서울)씨는 3시간26분57초로 40∼44세 에이지부 1위를 차지하여 하와이에서 열리는 ‘닛산 엑스테라 월드챔피언십’ 티켓을 획득하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 주었다.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시간들이 사이판의 강렬한 햇살만큼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엑스테라 사이판 대회는?


14개국서 열리는 오프로드 철인3종 대회


미국을 포함, 전 세계 14개국에서 개최되는 오프로드 트라이애슬론 브랜드인 ‘엑스테라(XTERRA)’ 글로벌 투어 중 하나로 1996년부터 개최되기 시작했다. 환상적인 코스로 유명하며, 코스 상황에 따라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수영 1.5km, 산악자전거 30km, 산악달리기 12km 등 43.5km로 구성된다.


‘엑스테라’ 대회는 미국에서 연간 50회 정도 개최되는 ‘닛산 엑스테라 USA 챔피언 시리즈’와 사이판, 뉴질랜드,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브라질, 일본, 스페인, 독일 등 14개국에서 열리는 ‘엑스테라 글로벌 투어’로 나뉘어 개최된다. 아이언맨 대회와 동일하게 ‘닛산 엑스테라 USA 챔피언 시리즈’와 ‘엑스테라 글로벌 투어’를 통해 선발된 각국의 선수들은 매년 하와이 마우이에서 개최되는 ‘닛산 엑스테라 월드챔피언십’에 참가하여 최고의 선수를 선발하게 된다. 엑스테라 글로벌 투어 공식 웹사이트는 www.xterraplanet.com.

2006.05.02   02:05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