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Cover Story] 마블社 CEO에게 듣는 ‘빅히트 영화 제작 5가지 비결’

‘S·T·O·R·Y(scramble·transform·override·reality·yourself)’가 만드는 스토리의 힘 

공부벌레(스파이더 맨), 알코올 중독자(아이언 맨)도 지구를 구한다… 
21세기版 수퍼 히어로에 관객 열광 

Scramble-섞어라 
1만5000개 만화책 속 히어로 영화를 통해 뒤섞여 등장 

Transform-변형하라 
과잉이다 싶은 정보는 버리고 필요한 스토리만 뽑아 써 

Override-배우보다 캐릭터 
흥행 공식에 캐릭터 우선시 배우는 그다지 중요치 않아 

Reality-현실적 영웅 이야기 
캐릭터는 결점투성이로 그려 ‘완벽한 영웅’은 이젠 없다 

Yourself-정체성 확신 
자신의 브랜드에 믿음을 갖고 새로운 위험에 두려워하지 않아 

캐릭터 5000개 보유한 만화책 회사… 마블社, 영화사에 캐릭터 판권 대여하다 
2007년 영화제작 사업 뛰어들어, 어벤저스 등 7편 만들어 50억 달러 수입 

현재에 집중하라 
1편 성공 못하면 2편은 없어… 좋은 아이디어 아끼지 말고 투입해야 

캐릭터에 인간적 결점을 더하라 
삶의 어두운 그림자와 싸우는 영웅, 그 인간적 면모에 관객들이 빠져들어 

모든 캐릭터는 위대한 창조물, B급 캐릭터로 혹평받던 아이언맨 
브랜드에 대한 믿음 갖고 영화화… 시리즈 3편으로 24억 달러 벌어

[Cover Story] 마블社 CEO에게 듣는 '빅히트 영화 제작 5가지 비결'

지난해 세계 흥행 1위를 기록한 영화가 무엇일까?

정답은 ‘어벤저스(Avengers)’다. 박스오피스 사이트 모조(Mojo)에 따르면 15억1859만달러(약 1조6000억원)를 벌어들였다. 역대 흥행 순위도 ‘아바타’와 ‘타이타닉’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이 영화를 만든 영화사가 마블 스튜디오(Marvel studio)다. 일반인한텐 다소 생소할지 모르지만 아이언맨 외에 우리에게 친숙한 스파이더맨·엑스맨·어벤저스 같은 캐릭터를 몽땅 소유한 회사다.

원래 마블은 영화 회사가 아니었다. 5000개의 캐릭터를 가진 만화책 회사였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도산 위기를 맞았다. 만화책 시장의 침체 때문이다.

이 회사가 회생한 발판은 만화 캐릭터를 영화사에 라이선싱(판권 대여)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스파이더맨은 소니픽처스에서, 엑스맨은 20세기폭스에서 영화로 제작해 대박을 쳤고, 마블은 거액의 수수료를 챙겼다. 경영학계에서는 이를 ‘플랫폼 다변화 전략’으로 해석한다. 만화책으로는 100% 활용되지 않았던 캐릭터라는 숨겨진 자산을 영화로 옮겨 가치를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마블은 2007년 새로운 도박을 감행한다. 다른 영화사에 콘텐츠를 빌려주는 안정적인 사업을 접고 스스로 영화 제작에 뛰어든 것이다.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2008년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출시한 7편의 영화 수입을 합하면 50억달러를 넘는다. 픽사가 최근 출시한 7개 영화의 수입(약 48억달러)을 뛰어넘는다. ‘어벤저스’는 한국에서만 700만명, 올해 출시된 ‘아이언맨3’는 80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지난 2009년 디즈니는 마블을 40억달러를 주고 인수했다. 마블의 회장인 아이작 펄뮤터는 당시 디즈니에 회사를 판 이유에 대해 “수많은 마블의 캐릭터들이 디즈니를 발판으로 다양한 콘텐츠로 창조되고 확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마블 스튜디오의 케빈 파이기(Feige·40) 사장 겸 제작자는 아이언맨을 필두로 엑스맨, 스파이더맨, 판타스틱 포를 제작한 마블 영화의 주역이다. 지난 30일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봉한 영화 ‘토르:다크월드’ 홍보차 방한한 그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을 때 그는 웃으며 말했다.

“‘토르:다크월드’에서 악역 로키(Loki)를 연기한 톰 히들스턴과 저를 보기 위해 한국 팬 6000명이 몰려들었어요. 정말 놀라웠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팬 미팅이었어요. 사실 4년 전만 해도 토르가 무슨 영화인지 미국에서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4년이 지나 한국에서 이렇게 팬들이 몰려들었다는 것은 정말 믿어지지 않아요.”

마블 영화의 흥행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스토리의 힘이다. 그는 “우리가 만드는 스토리는 최소 70~80년, 길게는 100년 이상 가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가 알려준 마블식 스토리텔링의 비결을 ‘스토리(STORY)’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었다. 콘텐츠를 섞고 연결하며(Scramble), 영화에 맞게 변형하고(Transform), 배우보다 캐릭터를 우선시하고(Override), 결점이 많은 캐릭터를 만들어 사실성을 만들되(Reality), 스토리텔러 자신의 경험에 충실하라(Yourself)는 다섯 가지 원칙이다.

스토리가 연결된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와 흥행 실적 *박스오피스 수입 기준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스냅샷으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스토리가 연결된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와 흥행 실적 *박스오피스 수입 기준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스냅샷으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①섞어라(Scramble)

마블 만화책의 종류는 1만5000여개에 달하지만 이를 관통하는 하나의 법칙이 있다. 서로 다른 만화에 여러 수퍼 히어로들이 뒤섞여 등장한다는 것이다. 마블 만화의 원작자인 스탠 리(Lee)는 마블 캐릭터들이 한 우주에 살며 9개의 세계를 오갈 수 있게 스토리라인을 구성했다.

수퍼 히어로들은 평소 자신이 거주하는 세계에서 활약한다. 하지만 우주를 위협하는 적에 맞서 싸울 때 그들은 ‘어벤저스’란 모임으로 모여 적을 물리치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는 순환 구조를 갖고 있다.

마블의 스토리 공식은 영화에도 똑같이 이식됐다. 영화 ‘어벤저스’에선 아이언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 헐크가 한데 뭉쳐 지구를 지킨다. 파이기 사장이 말했다.

“마블의 강점은 다른 세계의 점들을 연결하는 겁니다. 우린 영화와 영화 사이를 연결하는 유일한 제작사예요. 엄청난 연결성, 엄청난 연속성이야말로 우리의 힘입니다.”

마블 영화에서는 어느 영화의 캐릭터가 다른 영화에 출연하는 크로스오버(crossover) 현상이 빈번하다. 예컨대 ‘아이언맨’의 극 중 인물인 토니 스타크의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가 ‘캡틴 아메리카’에도 등장한다. 또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비밀 조직 실드(Shield)의 책임자 닉 퓨리는 ‘어벤저스’ ‘아이언맨’ ‘토르’ 등 5편의 영화에 등장한다. 이번에 개봉한 ‘토르:다크월드’에도 캡틴 아메리카가 등장한다. 반면 디즈니의 캐릭터인 인어공주, 알라딘, 미키마우스는 완전히 개별적인 스토리로 만들어졌으며 서로 융합하지 않는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와 소녀시대 멤버들이 그룹으로 뭉쳤다가 솔로로 활동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익숙한 대중적 코드지만 영화판에서 한꺼번에 모든 수퍼 히어로들이 등장한 것은 예전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마블의 영화는 ‘레슬링 선수 김일과 미국의 복서 알리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같은 소비자들의 상상처럼 기본적으로 영웅들의 순위를 가리고 싶은 욕망을 그려냈다”고 말했다.

파이기 사장은 “영화 사이의 점을 연결하면서 두 가지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첫째 안정성입니다. 사람들이 후속편을 기대하고 상상하게 만들거든요. 둘째 그러면서 관객에게 끊임없는 신선함을 전달하는 거예요. 어벤저스로 수퍼 히어로들이 모였다가 떠나면서 관객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상황이 창조됩니다. 어벤저스는 일종의 ‘재부팅’ 버튼인 셈입니다.”

김상훈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들은 지금 제품 자체의 기능에만 초점을 맞춰 스토리텔링을 하지만 제품과 제품을 연결하는 스토리텔링의 힘을 마블에서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②변형하라(Transform)

파이기 사장은 “마블 만화를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문법을 가진 영화로 재해석하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복잡한 만화 텍스트를 단순함으로 치환하는 것이 핵심 원칙”이라며 “과잉이다 싶은 정보를 과감하게 버리고 필요한 스토리들만 뽑아 재조합한다”고 말했다.

“사실 마블 만화책은 너무 많은 정보량 때문에 곤혹스럽습니다. 토르 만화책만 600권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캐릭터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캐릭터를 소개할지에 집중합니다. 600권의 만화 중 캐릭터를 가장 잘 소개한 부분만 찾아 그것만 씁니다. 영화 ‘토르’에서는 신화적인 세계인 아스가드에 사는 토르가 왕인 아버지로부터 지구로 추방당하는데, 그 부분을 토르를 소개하는 영화 장면으로 사용했어요.”

그리고 만화를 현재의 관점에 맞게 변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이언맨 만화에서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시중을 드는 집사 역할로 자비스(Jarvis)란 캐릭터가 나온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자비스를 사람이 아니라 인공 지능 로봇으로 만들어 스타크의 시중을 들게 하면서 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파이기 사장은 “과거를 현실에 맞게 변형하면 사람들이 엄청난 유머를 느낀다”고 말했다.

③배우보다 캐릭터(Override) 

[Cover Story] 마블社 CEO에게 듣는 '빅히트 영화 제작 5가지 비결'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케빈 파이기 사장이 마블 캐릭터 모형 장난감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디즈니 제공

마블의 전략 중 특이한 것의 하나는 배우보다 캐릭터를 우선시하는 것이다. 파이기 사장은 “흥행 공식은 캐릭터에게 있지 배우에게 있지 않다”고 말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를 캐스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이언맨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토르의 크리스 헴스워스, 캡틴 아메리카의 크리스 에반스 같은 배우는 모두 캐스팅 당시 인기가 많지 않았다. 그가 말을 이어갔다.

“만약 브래드 피트를 수퍼 히어로로 캐스팅하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은 ‘피트가 영화에서 금색 가발을 쓰고 빨간 망토를 입은 수퍼 히어로로 나왔어’라고 할 겁니다. 하지만 무명의 배우가 같은 역할을 맡았을 때 ‘아, 저건 마블의 토르다’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얼굴이 덜 알려진 배우는 관객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마블은 또한 시리즈물을 만들지만 항상 앞으로 나올 영화보다 현재의 영화에 집중한다. 파이기 사장은 “지속적으로 시리즈물을 만드는 마블 영화의 스토리텔링은 프랜차이즈 경영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미래에 오픈할 점포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놓지만 우선은 지금 만든 점포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이다. 그는 “수퍼 히어로 영화를 제작하는 데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기 때문에 1편이 성공하지 못하면 2편은 더 이상 없다”며 “많은 영화 제작자가 좋은 아이디어를 다음 편을 위해 살려두지만, 난 지금 제작하는 영화에 가장 좋은 콘텐츠를 집어넣는다”고 말했다.

영화 ‘어벤저스’에서 수퍼 히어로들과 외계인 군대가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한 예이다. 일부 제작진은 “많은 수퍼 히어로가 나오는 것만으로 관객을 압도할 수 있으니 외계인 군대를 넣지 말자”고 반대했지만, 파이기 사장의 고집으로 외계인 군대가 등장했다. 영화 ‘토르’ 1편에서 토르의 동생 로키가 토르를 배신하고 왕좌를 가로채는 스토리도 토르 2편을 위해 아낄 수도 있었지만 1편에 써버렸다.

④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Reality)

수퍼맨이나 배트맨은 어떤 어려움에도 쓰러지지 않는 ‘완벽한 영웅’이다. 하지만 마블의 캐릭터들은 정반대다. 평범한 데다 결점투성이다.

160㎝의 키에 군 입대를 지원하지만 거절당한 남자(캡틴 아메리카), 공부 벌레에다 여성 울렁증을 가진 남자(스파이더맨), 알코올 중독에 플레이보이인 백만장자(아이언맨),….

파이기 사장은 “인간이라면 모두가 어떤 형태의 결점이 있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길 원하는데, 마블은 그러한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캐릭터에 이입했다”고 했다. 캐릭터를 만드는 마블의 핵심 공식은 ‘질릴 때까지 캐릭터에 결점을 만들라’이다. “관객이 열광하는 것은 캐릭터의 결점입니다. 그 결점을 가진 캐릭터가 내면에서 싸우는 것을 원하는 겁니다. 삶의 어두운 그림자를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캐릭터가 속죄하고 구원받는 과정을 거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 결점을 극복할 때 비로소 수퍼 히어로가 됩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마블은 기존 영웅 영화의 계보를 깨면서 새로운 블록버스터 영화의 문법을 썼다”며 “기존의 영웅 영화가 무거운 클래식이었다면 마블의 영화는 가벼운 팝음악 같다”고 말했다. 진중한 서사 구조와 전지전능한 캐릭터를 없애고 관객이 쉽게 교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파이기 사장은 “10년 전만 해도 ‘결점 많은 수퍼 히어로’는 영화판에서 다뤄지지 않은 이슈였다”고 말했다.

박석원 성균관대 영상학과 교수는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고 세계 금융 위기가 오자 미국은 ‘세계를 구하는 영웅’에서 ‘세계를 타락하게 한 장본인’으로 전락했으며 그 이후에 아이언맨 같은 마블 영화가 쏟아져 나왔다”며 “비전형적이면서 인간적인 마블의 캐릭터에 현대인들이 친숙함을 느끼고 깊이 공감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가 선호하는 ‘페르소나(persona·남에게 비추어지는 인격이나 성격)’가 변화했다고 분석한다. 홍성태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은 영웅의 페르소나에서 친구의 페르소나로 전환하는 시점”이라며 “케이블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가 인기가 많은 이유도 영웅 같은 원로 배우들이 망가지고 실수하며 친구 같은 페르소나를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⑤나만의 정체성을 지켜라(Yourself)

훌륭한 스토리텔러가 되려면 남과 다른 자신만의 정체성을 지키고, 남이 뭐라 하든 소신껏 살아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파이기 사장은 “다른 기업이 마블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브랜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고, 새로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브랜드의 정의를 확장하는 데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과거의 어려운 경험이 마블의 DNA에 녹아 있다”고 말했다.

“마블 스튜디오는 무명에 가까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캐스팅하고, 무명이던 존 파브르 감독을 아이언맨에 기용한 위험한 결정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그 누구도 아이언맨을 잘 몰랐고, 사람들은 B급 캐릭터라고 믿었지만요. 그것이 가능한 것은 우리의 믿음이었습니다.”

마블이 ‘아이언맨 1’을 제작할 때 몇몇 영화 전문가는 아이언맨이 수퍼맨이나 배트맨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B급 캐릭터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파이기 사장은 “우린 언제나 모든 캐릭터가 위대한 창조물이라는 우리만의 믿음을 끝까지 고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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