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배운다 선도기업의 딜레마… 끊임없는 혁신이 오히려 자기 시장 파괴

[연세대 MBA 지상강의 ①] 선도기업의 딜레마… 끊임없는 혁신이 오히려 자기 시장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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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혁신은 기능과잉
소비자는 최신 기술보다 편리함·가격에 더 반응
후발주자는 이때가 역전할 수 있는 기회
적당한 품질에 가격파괴로 폭발적 수요 얻게 돼

올해 현대·기아차의 기세가 무섭다. 중국, 인도는 물론 유럽과 남미에서 일본 자동차 업체를 제쳤다. 북미에서도 품질 경영의 대명사이자 전 세계에 우수 경영 사례로 소개된 세계 1위 도요타의 시장을 무너뜨리며 맹추격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불가능해 보였던 이 일을 해낸 현대·기아차의 과감한 도전과 성공은 단연 칭송받을 만하다. 그러나 적기 공급(JIT) 방식을 통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던 도요타의 시련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도요타는 세계 시장을 호령하면서도 신제품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고, 안정된 노사 관계 그리고 협력업체와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던 기업이다. 그런데도 도요타가 무너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제시한 ‘파괴적 혁신’ 이론에 따르면, 이는 도요타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선도 기업이 겪는 딜레마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선도 기업은 지속적 혁신을 통해 발전한다. 지속적 혁신이란 기존 시장에서 가장 크고 확실한 고객 집단을 위해 성능을 개선시켜 보다 높은 가격에 제공하는 전략을 말한다. 이는 시장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선도 기업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전략이다. 경쟁 기업에 비해 제품의 기능을 강화하면 프리미엄 가격을 책정할 수 있고, 규모의 경제를 통해 생산 단가를 낮춰 더 높은 이윤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고객은 더 이상 개선된 성능에 대하여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적 혁신은 오히려 기능의 과잉으로 느껴진다. 적당한 기능이 안정적으로 제공된다면 소비자는 ‘최신 기술’보다 사용의 편리함이나 맞춤형 제품, 적절한 가격에 더 반응하게 된다.

여기서 선도 기업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선도 기업은 이러한 시장의 변화를 알아채기 어렵기 때문이다. 선도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혁신을 통한 성능 개선은 줄곧 시장의 확대와 원가 절감에 이바지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주주들은 박리다매형 전략보다 고가 제품 판매에 집중하여 자산 단위당 이익(ROA)을 높이는 기업을 선호한다. 따라서 기업이 천신만고 끝에 달성한 혁신에 대한 프리미엄을 시장에 요구하면서 또 다른 혁신에 어렵게 착수하는 동안, 소비자들은 말 없이 불만을 품은 채 누군가 저렴한 가격에 적당한 성능을 갖춘 제품을 제공하기를 기다리게 된다.

이때 후발주자는 파괴적 혁신 전략을 통해 역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소비자들이 별다른 대안이 없어 기능 과잉의 비싼 제품을 소비하는 초과만족 현상이 만연할 때 적당한 품질에 파격적인 가격의 제품이 출시될 경우, 수요는 폭발적으로 나타난다. 저비용 모델로 시작한 기업은 초기에 제품의 성능도 낮고 이윤 역시 적지만, 선도 기업이 지속적 혁신을 거듭하면서 시장에 초과만족 현상이 점점 더 증가할수록 높은 이윤이 가능한 상위 시장으로 옮겨갈 기회를 잡게 된다.

현대·기아차 역시 처음에는 값싸고 비교적 기능이 단순한 소형차로 시장에 접근했으며, 자신의 틈새시장에서 꾸준히 성능과 디자인을 개선하면서 보다 큰 시장에 단계적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렉서스와 캠리를 거느린 도요타가 원가 절감과 이윤 극대화를 위한 아웃소싱 전략에서 비롯된 품질 문제로 휘청거리는 동안, 현대·기아차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일정 수준의 성능을 안정적으로 제공할 능력을 갖춤으로써 선도 기업의 전체 시장을 파괴하면서 시장을 장악하는 과정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기업은 흔히 자신의 핵심 역량을 구축하고 이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혁신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약간의 프리미엄 가격으로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노력이 자신의 시장을 파괴하는 씨앗을 뿌리는 행위일 수 있다. 시장을 파괴하는 새로운 혁신은 기업 내부에 있지 않으며, 심지어 눈에 보이는 경쟁 기업에 있지도 않다. 오히려 경쟁자 취급도 받지 못하는 저가형 모델이나 말 없이 초과만족 상황을 참고 있는 소비자, 아예 제품에 관심을 두지 않는 비소비자가 파괴적 혁신의 출발점이다.

아무리 성공적으로 보일지라도, 혁신의 성공과 실패는 기업 내부의 기준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 시장 상황에 적합한 전략만이 기업의 지속적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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