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인사이드] 적진에 불을 지르고 승리를 쟁취하는 네거티브 전략

신사적인 마케팅은 없다, 전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사실부터 인정하라
이슈를 만들고 우위를 선점하는 것, 이것이 네거티브의 본질

조경식·제일기획 마케팅전략본부장

손자병법 삼십육계의 제5계는 진화타겁(盡火打劫)이다. 불난 틈을 타 도적질을 한다는 뜻이다. 도적질이라니 어감이 좋진 않으나, 해석하자면 상대방이 약점을 드러내고 허둥지둥하고 있을 때 전력을 집중해 단숨에 승리를 얻으라는 뜻이다.

마케팅은 결코 점잖거나 신사적이지 않다. 아무리 선한 의도로 포장을 하고 있어도 그 근본은 오히려 적자생존, 승자독식에 가깝다.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시장이라는 전장(戰場)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시장의 이러한 전쟁 같은 치열함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광고들이 있다. 오리온 내츄럴치클 껌의 2010년 광고를 보자. 두 여자가 의자에 기대앉아 있다. A엄마와 B엄마다. ‘A는 내츄럴치클 껌을 주고, B는 초산비닐수지껌을 줬다’. 다음 장면엔 마치 사건의 결정적 증거라도 되는 듯 ‘초산비닐수지란 기존 껌 제품의 원료로 사용되는 식품첨가물 공정상의 화학적 합성품을 말합니다’라는 내용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누가, 진짜 엄마일까? 초산비닐수지 대신 100% 천연 치클, Only 내츄럴치클’. ‘초산비닐수지’라. 개인적으론 마치 식초 맛이 나는 비닐봉지를 씹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여하간 천연 치클 껌을 줘야 진짜 엄마라는 얘기다. 껌도 조심해서 줘야겠다.

CJ의 ‘행복한 콩’ 광고를 보자. ‘까다로운 (고)소영씨’가 ‘더 까다로워졌다’며 광고가 시작된다. 까다로운 소영씨는 세상을 다 준대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단다. 맛있어 보이는 두부를 한 숟갈 뜨더니, ‘기름? 한 방울도 안 돼’라고 못을 박는 소영씨. CJ의 ‘행복한 콩’은 기름을 넣지 않고 만들어 소영씨 같은 까다로운 엄마도 만족한다는 얘기다. 거꾸로 말하자면 기름이 문제라는 말이 된다.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두 광고의 공통점은 모두 적진에 불을 지르는 광고라는 점이다. ‘내츄럴치클 껌’은 초산비닐수지, ‘행복한 콩’은 두부에 들어가는 기름이라는 부싯돌로 네거티브 이슈에 불을 붙이면서, 거꾸로 그런 이슈들에서 우리의 제품은 안전하고 우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네거티브 광고 기법이란 이처럼 상대방 혹은 경쟁자의 약점을 드러내고 이를 나의 무기로 삼는, 진화타겁(盡火打劫) 하는 광고 기법이다.

불을 지른다는 건 홀랑 태워먹겠다는 게 아니라 경쟁사를 불판 위에 올려놓겠다는 뜻이다. 해당 이슈 자체는 치명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초산비닐수지가, 혹은 두부에 들어가는 기름이 실제로 얼마나 좋은지 안 좋은지는 사실 둘째 문제란 얘기다. 중요한 건 상대방이 ‘앗 뜨거’ 하며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상대방의 뒤늦은 해명, 방어, 역공, 경쟁사의 이 모든 부산한 움직임이 우리 제품, 우리 브랜드의 포지셔닝을 오히려 더 강력하게 만들어 준다. 두부에 들어가는 기름이 이슈가 될수록 사람들은 ‘행복한 콩’을 떠올리게 된다는 얘기다. 즉 이슈를 만들고 우위를 선점하는 것, 이것이 네거티브 광고의 본질이다.

네거티브 광고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때는 선거철이다. 상대방 후보의 약점이나 결점을 얘기하며 자신에게 투표해 줄 것을 호소한다.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네거티브 광고로 꼽히는 것도 선거용 광고였다. ‘데이지걸’이라 불리는 이 광고는 순진무구한 여자아이가 ‘원, 투, 쓰리…’하면서 데이지 꽃잎을 떼며 노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꽃잎을 세는 숫자는 이내 미사일 카운트다운과 겹쳐지고, 잠시 후 클로즈업된 소녀의 눈동자에 핵폭탄의 버섯구름이 비치는, 지금 다시 봐도 충격적인 광고다. 즉 ‘강경파인 상대방 후보를 뽑으면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으니 평화를 사랑하는 나에게 투표하시오’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 실제로 이 광고는 린든 존슨 대통령이 당시 선거에서 경쟁자였던 배리 골드워터를 이기는 데 크게 공헌했다.

이러한 네거티브 접근법은 비즈니스 상황에서 나의 주장을 돋보이게 하는 데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하지만 유념해야 할 것은 자칫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점. 네거티브 전략이 일방적인 비방으로 흐르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의 약점을 거론하는 건 내게 그와 상반되는 분명한 강점이 있을 때만 유효하다. 남을 깎아내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나의 강점과 관련된 이슈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네거티브 접근법임을 잊지 말자. 혹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본질이 아닌 부수적인 부분을 언급하는 건 자칫 시비나 걸려는 수작으로 폄하될 수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자.

정리하자면, 정문일침, 본질을 정확히 관통해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하는 강력한 한 방, 하지만 비열하지 않게. 이것이 효과적인 네거티브 화법의 조건이다. 늘 웃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비즈니스 전장. 공격이 필요하다면 네거티브 전략을 현명하게 활용해 승리를 거둘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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