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방미인 CEO 시대는 갔다 `베타기업` 이 돼라

 

짙은 콧수염을 기른 우울하고 굳은 표정의 사나이가 빳빳한 옷깃을 여미고 미국의 철강공장과 제지공장을 돌아다닌다. 회중시계와 연필을 든 그는 빠른 걸음으로 노동자들 사이를 누비며 각 작업단계를 빈틈없이 꼼꼼하게 측정한다. 짜증 섞인 표정으로 비웃는 노동자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사나이는 약 100년 전 ‘과학적 경영’을 창시한 프레더릭 윈즐로 테일러다. 그는 대량생산 체제를 완성한 헨리 포드, 기업 수뇌부가 모든 것을 제어하는 대기업 시스템을 처음으로 고안한 알프레드 슬론과 함께 현대 경영의 아버지로 불린다. 현대 경영의 근간이 됐던 테일러주의, 포드주의, 슬론주의가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있다. 상명하복식 경영을 포기한 기업들의 성공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새로운 기업을 독일의 리더십 전문가 닐스 플래깅은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알파 기업’과 구분해 ‘베타 기업’으로 분류했다.베타기업은 도대체 알파기업과 무엇이 다를까. 위계서열이 분명한 한국 기업이 베타기업이 될 수 있을까.

 

베타기업이 모든 기업의 답일수는 없다. 마치 ‘샹그릴라(이상향)’나 ‘무릉도원’ 같은 존재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한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는 않을까. 매일경제 MBA팀은 구글코리아, 현대카드 등 기업 관계자들과 한만현 모니터그룹 대표, 김기령 타워스왓슨 대표, 이정훈 베인&컴퍼니 파트너, 김광현 고려대 경영대 교수에게 스마트워크 시대의 리더십에 대해 들어봤다.

 

직원 스스로 자신이 할 일을 정한다

미국 델라웨어에 본사를 두고 있는 고어. 1958년 설립돼 2010년 기준 매출액 30억달러, 직원수 9000명인 비상장 기업이다. 우리에게는 고어 텍스라는 기능성 의류로 잘 알려져 있다.

고어에 입사한 신입사원은 무슨 일을 할지 스스로 정한다. 사업 아이디어를 가진 직원은 동료들에게 그 가치와 성공 가능성을 설명하면서 사업팀에 합류해달라고 요청한다. ‘엘릭시르’라는 기타줄 사업도 그렇게 탄생했다. 고어의 한 연구원은 전선 피복으로 사용되는 자사의 재료로 자전거 바퀴살에 코팅해본 결과 뛰어난 보호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다. 기타줄에 적용한다면 음색이 변하지 않고 오래가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동료들을 설득해 팀을 만들었고 3년 후 경쟁사 제품보다 음색이 3배나 오래가는 제품을 개발하는 성공스토리를 써냈다.

스위스의 서치펌 이곤젠더는 프로젝트 때마다 팀이 바뀐다. 처음 고객의 주문을 받은 직원이 프로젝트를 주도하게 된다. 일종의 팀장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그는 회사 내 정보 시스템을 동원해 직접 함께 일할 직원을 찾는다. 독일의 리더십 전문가 닐스 플래깅은 “이곤젠더의 독특한 방식 때문에 이 회사는 동종업계보다 효율성이 60% 이상 높다”고 설명했다.

 

더이상 CEO는 영웅일 필요가 없다

 

구글에서 ‘마케팅이 구글에 어떤 성과를 가져다줄 것인가’에 대해 한창 토론이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회의실 문이 열리면서 구글의 창업자 중 한 명인 래리 페이지가 들어왔다. 마케팅 팀원들이 그에게 물었다. “래리, 당신은 구글이 어떤 식으로 마케팅하면 좋겠습니까?”

래리 페이지가 말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당신들이 더 잘 알지 않나요? 그건 당신들 일이잖습니까. 나는 잘 모릅니다.”

김기령 타워스왓슨 대표는 “시장상황, 경제여건, 경쟁구도, 내부역량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능력이 출중한 CEO가 혼자서 의사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워졌다. 글로벌 기업들은 임원팀이 집단으로 의사결정하는 체제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또 “주주 입장에서도 한 명의 탁월한 리더에게 회사를 맡기는 것보다 집단경영체제를 선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직원이 사장을 뽑는다

고어에는 일을 시키는 보스가 없다. 옆에서 도와주는 스폰서만 있을 뿐이다. 공식 직함은 외부와의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장과 재무담당 임원 딱 두 사람만 있다.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명령을 내릴 수 없다. 자발적으로 따르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거나 적으면 자연히 자신의 권한도 줄어든다. 많은 직원이 따르는 사람이 곧 리더다.

고어의 현 사장인 테리 켈리도 직원들이 뽑았다. 베타기업에서는 경영이 특정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시적으로 회사를 대표하는 업무를 수행한 후 다시 원래의 업무로 복귀한다. 김기령 대표는 “기수 문화가 강한 한국에서는 새로운 CEO가 취임할 때 CEO의 동기들이 모두 사임하는 경우가 많은데 회사 입장에서 볼 때 이는 큰 손실이다. 베타기업은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조직 내 모든 정보가 공유된다

구글에는 매주 금요일 모든 직원이 참여하는 회의 ‘TGIF’가 있다. 전 세계 3만명의 구글 직원들은 CEO인 래리 페이지에게 물어볼 질문들을 준비해서 빈도수가 많은 질문 순서대로 래리 페이지가 답한다. 질문은 무엇이든 상관 없다. 회사의 이익 혹은 제품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래리, 당신 수염이 좀 자란 것 같다. 혹시 수염을 일부러 기르고 있는 중이냐”와 같은 질문일 수도 있다. 래리 페이지는 최대한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한다. 전 CEO인 에릭 슈밋 회장도 분기마다 직원들에게 이사회 협의 내용을 전하는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구글로 이직한 직원들이 초기에 가장 놀라는 점 중 하나다. 김지영 구글코리아 인사담당 상무는 “인수합병 같은 극히 일부 사실 외에는 모든 직원이 정보를 공유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전 세계 3만명이나 되는 구글 직원들은 무인 운전 시스템 등 비밀리에 진행 중인 구글의 신사업에 대해 한 번도 누설한 적이 없었다. 직원에 대한 회사의 신뢰가 회사에 대한 직원의 신뢰로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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