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Outside] 혁신하는 조직의 두 길… 가족형이냐 시장형이냐

사우스웨스트항공의 길-일체감 중시하는 가족형, 안정적인 고용 유지하며 40년 연속으로 흑자행진
애플·삼성전자의 길-성과 독촉하는 시장형, 환경변화에 빠르게 대응… 업무강도 높되 보상 확실

기업의 조직 문화는 진화한다. 1980년대 고도 성장기에는 농업적 근면성과 상명하달의 위계적 문화가 강조됐다면, 90년대 후반부터는 절대적 근로시간보다 업무의 효율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2000년대 들어 애플과 구글이 이뤄낸 벤처 신화를 목격한 뒤에는 ‘혁신’과 ‘창조’가 화두가 됐다. 그래서 ‘창조의 삼성'(삼성), ‘창의와 자율의 조직문화'(LG)가 각각 등장했다. 최근에는 ‘빨리빨리’로 상징되는 스피드 경영이 다시 각광받고 있다. 저성장과 경기 침체 조짐이 확연한 지금, 기업은 어떤 조직문화를 추구해야 할까.

한국 대기업은 ‘위계적이면서 성과중심’ 조직 문화

미국 미시간대 퀸 교수가 개발한 경쟁가치모형 이론을 사용하면, 조직문화는 ▲공동체형(Clan) ▲혁신형(Adhocracy) ▲위계형(Bureaucracy) ▲시장형(Market)의 4가지이다. 공동체·혁신형은 유연성·자율성을, 위계·시장형은 통제·안정을 각각 중시한다. 또 공동체·위계형은 내부 통합을 중시하고, 혁신·시장형은 외부 평가에 초점을 맞춘다. 이 4가지 특징 중 어느 쪽이 우세한지를 점수화하는 설문조사를 직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다음, 〈그림〉처럼 그래프로 그리면 해당 기업의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림〉은 필자가 지난해 조사한 연간 매출 5000억원이 넘는 23개 국내 대기업(삼성전자·현대차·LG전자 등)의 평균 점수를 그래프화한 것이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대체로 위계적이면서 성과 중심의 시장형 문화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혁신형 조직문화 지향해야, ‘시장형’ 또는 ‘가족형’ 선택

〈그림〉에서 ‘바람직한 문화’는 직원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문화를 보여준다. 대기업 직원들은 더 혁신적이고 더 가족적인 문화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경쟁과 성과만 중시하는 시장주의의 한계를 느낀 기업들이 최근 추구하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직원들이 생각하는 ‘현재의 문화’와 ‘바람직한 문화’의 차이를 ‘컬처 갭(문화 격차·culture gap)’이라 부르는데, 이 격차가 작을수록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 그런데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의 ‘컬처 갭’이 중소기업의 갭보다 훨씬 컸다. 대기업의 컬처 갭 점수는 평균 32점인 반면, 중소기업(매출 1000억원 이하 130여개 기업)의 컬처 갭 점수는 23점이었다. 이는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성과주의가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방증이다.

일러스트=김현지 기자 gee@chosun.com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경직된 위계형 문화는 기업과 직원 모두 원하지 않는다. 반면 혁신형 문화는 기업과 직원 모두 원한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혁신+가족’형(型) 문화로 갈 것이냐, ‘혁신+시장’형 문화로 갈 것이냐다.

위기 국면에서 ‘근면성’과 ‘빠른 실행력’ 급부상

사우스웨스트항공 같은 회사에서 답을 찾는다면, ‘혁신+가족’형 문화가 유력하다. 이들은 회사와 사원 간의 일체감과 상호 충성심을 중시한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임금협상을 12년마다 맺는 등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고용 관계를 유지하면서 40년 연속 흑자 행진을 기록 중이다.

애플과 삼성전자에서 길을 찾는다면, ‘혁신+시장’형 문화가 해답이다. 특히 유행이 급변하는 IT 사업에서는 관계 중심의 느슨한 가족적 문화보다 성과를 독촉하는 시장형 문화가 효과적이다. 스마트폰을 이끄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와 애플 아이폰 부문은 ‘혹사(酷使)’라고 표현될 만큼 업무 강도가 높지만, 보상도 확실하다.

애플도 창업 초기에는 ‘혁신+가족’형 문화를 보였지만, 대기업화된 후에는 ‘혁신+시장’형 문화로 바뀌었다. 기술력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일본의 도시바와 소니가 스마트폰 사업에서 완패(完敗)한 것은 속도와 실행력의 부재 때문이었다고 업계에서는 분석한다. 주 40시간의 근로시간이나 매뉴얼을 중시하는 일본 기업문화로는 전 세계에서 요구하는 각기 다른 통신 규정에 맞춘 기기(器機)를 빠른 속도로 공급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최근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덕목으로 과거 성장기에 요구됐던 ‘근면함’과 ‘빠른 실행력’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이는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기술과 경쟁의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창의와 혁신은 물론 이를 빠르게 실행하는 역량이 절실하다.

※이 칼럼은 올 7월 중순 서울대에서 한국·중국·일본 주요 대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원 아시아(One Asia) E-MBA’에서 진행한 필자의 강의를 확장·발전해 재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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