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시대 뇌` 에서 탈출하라

 한 실험자가 대학생들에게 두 가지 제안을 했다. 하나는 당장 10달러를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튿날 11달러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는 대학생들에게 어떤 제안을 선택할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당장 10달러를 받겠다는 학생들이 월등하게 많았다.

학생들의 선택은 매우 비논리적이다. 인플레이션 위험이나 이자 소득의 손실을 감안하더라도 내일의 11달러가 오늘의 10달러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연 이자를 단리로 계산하더라도 3600%가 훌쩍 넘는다.

그러나 구석기 시대 관점에서 바라보면 학생들의 선택은 매우 합리적이다.

구석기 시대에는 다른 사람이나 동물들에게 먹이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혹은 먹지도 못한 채 죽지 않으려면 당장 먹이를 먹는 게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당장의 이익이나 목표에 집중하는 구석기 인류의 단기 지향적 특성은 수십만년 동안 인간의 뇌속 DNA에 깊숙이 새겨져 유전돼 왔다.

문제는 이 같은 DNA가 기업과 사회의 장기 생존을 위협한다는 것.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생각의 빅뱅’ 저자인 에릭 헤즐타인 박사는 “1955년 포천이 뽑은 500대 기업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기업이 13%에 불과하고 경제위기가 계속 찾아오는 것도 인간 뇌의 단기 지향적 특성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같은 특성 탓에 장기적인 위협ㆍ이익을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우리 뇌에 존재하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사각지대를 뛰어넘는 혁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일경제 MBA팀은 최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5회 기업가 정신 국제콘퍼런스에 참석한 헤즐타인 박사를 만나 두뇌의 사각지대를 극복하고 혁신하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기업이 지속 가능하지 못한 까닭이 뇌와 관련돼 있다는데 왜인가.

▶인류 탄생 이후 뇌가 별로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뇌 구조가 고대인들이 생각하던 우선순위에 맞춰 고착돼 있다.

현대인들이 고대인들처럼 미래보다 현재 문제에 집중하는 것도 그래서다. 20만년 전에는 평균 수명이 매우 짧았고 당장 생존하는 게 중요했다. 미래에 직면하게 될 중요한 문제들을 제쳐두고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시급한 문제들부터 해결하는 방식이 합리화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당장 시급한 문제 외에도 미래를 고려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착된 뇌 구조 때문에 대부분 기관ㆍ조직ㆍ기업들은 여전히 단기 이익만을 좇고 있다. 1955년 포천 500대 기업 중 일부만이 생존해 있는 것도 시급한 문제에만 관심을 두고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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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위기도 마찬가지 이유인가.

▶경제위기도 따지고 보면 뇌의 단기 지향성 때문이다. 미국 기업들은 다음 분기 실적에만 연연한다. 각국 집권층은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만 관심을 갖고 예산을 배분한다.

그러다 보니 부채만 쌓였다. 유권자들도 책임이 있다. 10년 뒤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면 표를 주지 않았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기업과 집권층, 유권자 때문에 위기가 왔다.

-그렇다면 뇌의 속성을 이해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인간의 뇌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만 하려고 한다.

그 밖의 일을 하게 하려면 뇌에 적절한 보상을 주어야 한다. 이 같은 뇌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많은 혁신 노력이 실패했다. 뇌는 고착된 상태이기 때문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면 도저히 이길 수 없다.

-뇌에 어떻게 보상해야 하나. 예를 들어 달라.

▶내가 국방부 산하 연구소에 있을 때였다. 실험장비를 구입하는 데 6개월이나 걸렸다.

첨단기술을 따라잡으려면 이 시간을 단축해야 했다. 그러려면 구매 담당자의 개선 노력에 보상해 줄 필요가 있었다.

거대 관료 조직에서는 극히 드물고 가치 있는 것, 즉 다른 부서가 보내는 공개적인 칭찬이야말로 최고의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매주 열리는 관리자 회의에서 ‘구매 부서 협조 덕분에 다른 조직보다 신속하게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몇 차례 반복되자 기분이 좋아진 구매 담당자는 또 어떤 협조가 필요하냐며 물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구매 담당자가 협조해주면 반드시 그 다음주에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2년 뒤 평균 구매 시간은 65% 수준으로 단축됐다.

-미국 정보부서에서 일한 경력이 눈에 띈다.

▶국가안보국(NSA), 중앙정보국(CIA) 등으로 구성된 미국국가정보국(US intelligence community)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아서 첩보기구 혁신을 이끌었다.

-9ㆍ11테러 역시 뇌의 사각지대와 관련돼 있다고 판단했는데.

▶미국 정보당국들은 생각이 같은 사람끼리 뭉치고 다른 사람들 말을 잘 안 들었다. 이처럼 비슷한 사람들끼리 뭉치는 ‘트라이벌리즘’이 뇌의 사각지대를 더욱 강화했다. 9ㆍ11테러를 못막은 원인이다. 그래서 여러 정보기구들이 대화하고 협력하게끔 했다.

-어떻게 협력하게 했나.

▶비공식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서로 다른 기구들끼리 회의를 열 때는 중간 휴식시간을 길게 잡았다. 그렇게 하면 커피를 마시면서 서로 얘기하게 된다. 최고 과학자들도 정식 회의보다는 휴식시간에 나눈 대화에서 더욱 중요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비공식적인 만남이 혁신의 원천이라는 얘기인가.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비공식적으로 만날 때 혁신 기회가 찾아온다. 기업 관계자들이 콘퍼런스에 참석하면 최소한 점심은 타기업 사람들과 먹어야 하는 것도 그래서다. 다른 분야 사람들과 함께 앉아 점심을 먹으면 내가 몰랐던 것을 알게 된다. 평소 알고 있는 루트를 통해서만 신제품 아이디어 등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꿀벌들이 여러 꽃을 교차해 교배하는 식으로 기존에 몰랐던 여러 사람과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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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식적인 만남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구성원들을 모아 놓기는 하되 멍석은 깔지 말아야 한다. 멍석을 깔면 그전까지 활발하게 정보를 교환하던 사람들도 갑자기 입을 다물게 된다. 클럽에 처녀ㆍ총각들을 풀어놓으면 자연스럽게 눈이 맞아서 서로 사귀게 된다. 반면 “여기 결혼 안 한 남자와 여자가 있으니 서로 짝을 찾아서 결혼하고 아기를 낳으라”고 말하면 질려서 클럽을 나가 버릴 것이다.

-고객과도 비공식적인 만남이 더 중요한가.

▶기업이 신제품을 개발할 때는 (고객과 공식적으로 만나는 격인)수요조사를 종종 한다. 그러나 이를 통해 품질을 조금 더 개선할 수는 있어도 중요한 돌파구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는 수요조사를 절대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많은 혁신 제품들은 직원들 비공식적인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또라이’ 같은 직원이 제시하는,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거대한 운석이 지구에 떨어진 이후에 멸종한 공룡을 예로 들어보자. 사전에 기이한 방향으로 진화해 (또라이 같다고 여겨질 만한)종은 계속 살아남았고, 공룡은 멸망했다. 이처럼 예기치 못한 상황은 예측하기 힘든 방법으로 미리 대응해야 한다. CEO들이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아이디어 중에 적어도 10%는 ‘예스’라고 승인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혁신적인 제품이 나올 수 있다.

-현실에서 비공식적인 만남을 촉진하기가 쉽지 않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뭉치는 습성 때문이다. 부서별로 업무가 특화하고 있기에 부서끼리 사이도 좋지 않다. 이웃 부서 직원과 친하게 지내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임원으로 승진하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다. 자기 부서 출신을 봐주면서 영역을 지키려고 한다.

-그것이 우리 뇌의 본능이라면 피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비슷한 사람끼리 뭉치는 것은 인간 본성 중 어두운 면이다. 그러나 협력하고 좋은 것을 나누고 싶어하는 본성도 있다. 힘은 없지만 부서를 뛰어넘어 비밀리에 협력하는 친한 직원들이 어느 기업에든 있지 않은가. 상사가 알면 큰일 나니까 비밀리에 협조하는 식이다. 소셜네트워크에 노출된 사람일수록 공유와 협력을 좋아한다.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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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식적인 만남을 만드는 게 리더가 해야 할 일이겠다.

▶공식적인 권위를 부여받은 리더는 비공식적인 만남을 만들어야 한다. 그 같은 만남을 통해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리더는 협력하고 싶은 사람들이 협력하게끔 장을 만들어야 한다. 예산 지원도 있겠지만 예산은 오히려 아이디어를 죽인다. 직접 도움을 주면 관료화한다. 대신 리더는 직원들에게 보호막이 돼야 한다. 누군가 프로젝트를 죽이려고 한다면 이를 막을 수 있는 지원사격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먼 미래를 준비하려는 기업을 위해 조언해 달라.

▶먼 미래를 생각하라고 해서 먼 미래를 개선하라는 뜻은 아니다. 생각은 먼 미래에, 행동은 가까운 미래에 둬야 한다.

먼 미래를 생각한 뒤에 현시점을 돌아보면 오늘 내가 놓치고 있는 기회가 무엇인지 더욱 잘 보인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칩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 양이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은 앞으로 10년 동안 유효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감안하면 미래에 어떤 제품이 인기를 끌 것인지 예측할 수 있다.

디즈니도 1990년대 중반에 비슷한 접근 방식으로 테마공원 서비스를 개선했다. 컴퓨터 기능을 갖춘 휴대폰이 먼 미래에 유행할 것이라는 미래 예측을 현실에 적용해 성과를 거뒀다.

당시 디즈니랜드에 온 어린이들은 미키마우스 캐릭터 인형을 쓴 직원과 사진을 찍고 싶어 안달이었지만 길이 엇갈려서 만나기가 어려웠다.

이 같은 점을 해결하기 위해 디즈니는 일본 PDA 제조사에 10년 뒤 쓰일 휴대폰을 프로토타입(시험용 제품)으로 개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제품을 이용해 디즈니는 미키마우스 캐릭터 위치를 추적하고 게임도 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했다. 덕분에 어린이 고객들은 주변에 캐릭터 인형을 쓴 사람을 쉽게 찾아내 사인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당신 생각을 짧게 요약한다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있어야 혁신이 가능해진다. 여러 사람들 간의 관계라는 ‘사회적 자본’ 또는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돼야 한다.

■ 에릭 헤즐타인 박사는…

에릭 헤즐타인 박사는 현재 자신의 이름을 딴 컨설팅 회사 ‘헤즐타인 파트너스’ 대표로 일하고 이다. 미국 방위산업체인 휴스 에어크래프트를 비롯해 월트디즈니 이매지니어링 등의 고위직 임원, 미국 국가정보국 최고기술경영자(CTO) 등을 거쳤다.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경제학과 심리학을 공부했으며 인디애나대학에서 생리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생각의 빅뱅’ 저자로 유명하다.

■ <용어설명>

뇌의 사각지대 : 뇌는 인간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보여주기 때문에 인간이 미처 보지 못하는 영역이 존재한다. 이를 뇌의 사각지대라고 한다. 주로 장기적인 이익ㆍ위협 요인이 사각지대에 존재하게 된다. 이는 단기 이익에 집중하는 뇌의 특성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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