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아이디어의 충돌·융합서 나와… IT특허 집착은 시간 낭비”

美 혁신 전도사 스티븐 존슨의 ‘협업적 혁신’
협업적 혁신 – 주변 아이디어 죽이지 않고 사슬처럼 연결하는 게 비결
톡톡 튀는 아이디어 무조건 기록해두면 유용
저작권 보호 관행 깨야 – 비밀 엄수위해 큰 비용 지불
아이디어 시장에 내놓고 엄청난 보상 받은 애플… 더 큰 혁신에 투자해야

“인류 역사에 등장한 대부분의 탁월한 혁신은 천재의 머릿속에서 툭 튀어나온 게 아니라 흩어져 있는 아이디어가 교류하고 충돌하고 융합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미국 최고의 ‘혁신 전도사’로 꼽히는 스티븐 존슨(Johnson·44)의 주장이다. IT전문지인 ‘와이어드(Wired)’ 편집장을 지낸 그는 래리 엘리슨(Ellison) 오러클 회장 등과 함께 1995년 뉴스위크지(誌)의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에 선정됐고 최초의 온라인 잡지인 ‘피드(FEED)’를 직접 창간한 사업가이자 사상가이다.

그는 “혁신과 창조적 아이디어는 골방이나 연구실이 아닌 광장이나 다른 사람·아이디어를 접촉하는 과정에서 활발하게 창출된다”고 말한다. 이는 기업들이 신기술·신제품을 개발한 다음 ‘특허’라는 갑옷으로 보호받으려는 흐름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의 최신작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Where the good ideas come from)’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 선정 ‘최고의 비즈니스 서적(2010년)’에 뽑혔다. Weekly BIZ는 지난달 중순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를 만났다.

스티븐 존슨은‘와이어드’지(誌)의 크리스 앤더슨 편집장부터 트위터의 공동 창업자인 비즈 스톤, 에반 윌리엄스 등을 동네 이웃이자 친구로 두고 있는 실리콘밸리의‘마당발’이다.‘ 이머전스’(2001년),‘ 감염지도’(2006년) 등 8권의 저서를 낸 그는“개방된 단일 플랫폼 위에서 기업들이 아이디어를 축적해 연결짓는‘협업적 혁신’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 샌프란시스코=이신영 기자

―혁신은 뛰어난 개인이나 역량 있는 기업이 창조적으로 만들어낸 성과물 아닌가.

“그 주장은 일부에만 해당한다. 최근 700년 동안 탄생한 200여개의 뛰어난 혁신을 추적한 결과, 여러 아이디어의 연관성을 찾아내 융합하는 ‘협업적 혁신(collaborative innovation)’만이 위대한 결과를 낳음을 확인했다. 주변이나 다른 분야의 아이디어를 죽이지 않고 끌어모아 사슬처럼 연결한 게 비결이었다. 자신의 특허와 기술, 아이디어를 무료로 개방하고 연결하는 협업적 혁신은, 기업이 대학이나 경쟁사의 아이디어와 지식을 이용하는 ‘오픈 이노베이션’보다 한 단계 높은 개념이다.”

―세상에 수많은 아이디어를 어떻게 혁신으로 연결하나?

“먼저 아이디어의 흐름과 유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1990년대 초 맥길대 심리학과 던바 교수는 분자생물학 실험실 4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한 달 이상 과학자들의 모습을 녹화하고 관찰했다. 그 결과 중요한 연구 아이디어는 혼자 현미경을 관찰하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회의 탁자 모임에서 나온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이디어는 흘러야 하고 연결돼야 한다. 둘째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담는 ‘스파크 파일(spark file)’을 축적해야 한다. 이는 로크와 베이컨, 벤저민 프랭클린 등의 공통점이다. 어떤 아이디어라도 무조건 기록하는 습관이 좋다. 2008년 10월에 기록한 아이디어는 당시에 무의미했으나 올 12월에 쓴 아이디어와 연결되면 혁신을 낳을 수 있다.”

그가 갖고 있는 독자적인 아이디어 발굴 방법은 ‘데본씽크(DEVONthink)’라는 디지털정보저장 프로그램에 300만여개의 단어와 인용문 등을 입력해 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쓰고 활용하는 것이다. 한 단어를 입력하면 그와 연관된 문장이나 다른 단어가 뜨는데, 쓰레기(waste)를 입력하면 하수(sewage)라는 단어를 찾아주는 식이다. “아이디어를 연결하는 알고리즘을 이용하면 혁신이 가능합니다. 지금은 완성도가 10~20% 정도라도 계속 축적하고 교류·융합을 일으키면 100%짜리 혁신이 가능합니다.”

―현대 기업의 혁신 노력을 평가한다면.

“세계 기업의 10% 정도만이 제대로 된 혁신을 하고 있다. 나머지는 귀중한 아이디어들을 쓰레기통에 처박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저작권 보호 관행을 깨야 한다. 비밀을 엄수하기 위해 큰 비용을 치르는 것은 아이디어 연결과 혁신의 경로를 막는 것이다. 애플은 아이디어를 시장에 내놓고 엄청난 보상을 받았다. 그렇다면 훨씬 높은 수준의 혁신에 투자해야지, 특허에 매달려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

―특허를 잘 보호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지 않나.

“신약 개발에 10~15년이 걸려 10년 특허를 보호받는 제약기업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매 순간 혁신이 일어나는 IT기업은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IT 분야에서 복제(複製)만 하는 이류 기업은 절대 아이폰 같은 상품을 내놓을 수도, 성공할 수도 없다.”

―스스로 특허의 벽을 허문 기업도 있나.

“나이키가 그렇다. 2010년 초 ‘그린 익스체인지(green exchange)’라는 웹을 구축한 뒤, 그곳에서 고객 등과 소통해 만든 환경친화적 소재와 기술 특허 400개를 외부에 공개했다. 경쟁사도 그 기술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이런 접근은 다른 업체에 유익했다. 나이키 운동화에 사용할 친환경 고무를 산악자전거 기업이 타이어로 만드는 식이다. 대신, 나이키는 특허 면허에 드는 거래비용을 줄였다. 매출도 2010년 18억달러에서 지난해 20억달러로 늘었다. 요즘 시대에 기업들은 모든 것을 개방해 분권화된 의사소통 기반의 ‘무상 혁신(free innovation)’을 적극 벌여야 한다.”

―모든 기업이 조직 내에 왕성한 혁신 분위기를 만들려고 고민하고 있는데.

“17세기 영국에서 각계 인사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며 혁신적 아이디어를 쏟아냈던 ‘커피하우스(coffeehouse)’를 도입하라고 권한다. 아이디어를 회의실이나 연구개발실에 격리시키지 말고 조직 전체에 흐르게 해야 한다. 구글과 3M은 전체 시간의 20%를 여가나 취미에 투자하는 ‘20% 시간(혁신휴식시간)’ 제도를 실시한다. 20년간 350개의 디자인상을 휩쓴 디자인 컨설팅회사 아이디오(IDEO)는 틀을 벗어난 아이디어를 중시한다. 매주 월요일 아침을 ‘쇼앤텔(show and tell)’이란 회의로 시작하는데, 주말에 한 경험을 갖고 아이디어를 나누며 이를 연결한다. ‘아이에게 사준 장난감”기억에 남는 영화 대사’ 등을 벽에 낙서해가며 토론한다.”

―요즘 같은 시기엔 연구개발(R&D)에 투자를 늘려야 하지 않나.

“혁신의 체질부터 개선해야 한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혁신을 하면 비용이 10센트도 들지 않는다. 다국적기업 임직원들이 모두 참여하는 플랫폼에선 전 세계가 R&D 장(場)이 된다. 고객들도 혁신에서 중요한 참여자이다. 레고의 경우, 고객들이 레고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잘 관찰한 다음 의사결정을 내린다. 인터넷 고객관리 프로그램 제공업체인 세일즈포스도 고객이 제품에 대해 새 특징을 제안할 수 있는 온라인 시스템을 운영해 성공을 거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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