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갤럭시·아이폰 ‘머리’속 ARM 공장 하나없이 이름값만 1조원

영국 IT기업 ARM 성공스토리

삼성·애플에 저전력 설계도 팔아

계약금·로열티로 연 9억 달러 매출

세계 스마트 기기 시장 95% 장악

영국 런던의 킹스크로스 역에서 기차를 타고 40여 분 정도 북쪽으로 이동하면 대학도시인 케임브리지다. 택시를 잡아타고 15분 정도 외곽으로 빠지자 누런 벽돌로 아담하게 지어진 빌딩 서너 채가 나타났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 ARM이다. 이 회사가 한국 언론에 케임브리지 본사를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곳에서는 연구원들이 전 세계에서 건너온 고객사 엔지니어와 최적의 칩을 만들기 위한 협업에 한창이었다. 현재 사용 중인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95%에 이 회사의 기술이 들어가 있다. 스마트 기기의 ‘두뇌’라고 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에서도 가장 핵심인 코어가 ARM에서 개발한 것이다. 삼성전자 갤럭시S4나 애플 아이폰5S 모두 ARM의 기술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삼성전자 갤럭시S4에 장착된 `엑시노스5 옥타`는 스마트폰의 `두뇌`에 해당한다. 이 칩은 ARM의 핵심설계에 기반해 만들어졌다. [사진 삼성전자]

 케임브리지 본사는 물론 전 세계 지사 30여 곳에도 제품을 만드는 생산라인이 없다. 그저 ARM의 인재들이 그린 코어 회로도(도면)를 삼성이나 애플에 라이선스 해주고, 고객사가 스마트 기기를 한 대 팔 때마다 로열티를 받는다. 라이선스 계약금과 로열티 수입만으로 지난해 9억1310만 달러(약 98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 매출은 1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1990년 12명이 헛간에 모여 창업한 지 23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박근혜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창조경제의 ‘롤 모델’로 부족함이 없다. 박희재 R&D전략기획단장(서울대 공대 교수)은 “생산라인 하나 없이 오로지 도면이라는 지식을 팔면서 1조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ARM과 같은 기업이 창조경제가 지향해야 할 모델”이라고 말했다.

1990년 ARM이 태동한 케임브리지 외곽의 헛간. 창업자 12명이 PC 몇 대로 창업한 현장이다. 현재는 아동복지시설로 사용 중이다. [심재우 기자] ARM은 1990년 마이크 뮬러 최고기술책임자(CTO)를 포함한 12명에 의해 설립됐다. 현재 본사가 위치한 지역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헛간에서 출발했다. 고성능 컴퓨터에 들어갈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직접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컴퓨터 기업 에이콘의 연구원들이 주축이 됐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그렇듯 설립 초기 고난의 시절을 보냈다. 소규모 창업이라 많은 자금과 대규모 생산시설이 필요한 프로세서 생산은 어려웠다. 프로세서의 중심이 되는 도면을 그려 특허를 내고, 이를 토대로 라이선스 대금과 로열티로 매출을 올리는 방식을 택했다. 당시로선 상당히 획기적인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그러나 칩을 필요로 하는 대기업이 케임브리지의 조그만 벤처기업을 찾아올 리 만무했다. 이리저리 뛰어다닌 끝에 미국의 반도체 기업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와 선이 닿았다. ARM의 기술력을 인정한 TI는 90년대 중반 당시 휴대전화 시장 1위 업체인 핀란드의 노키아와 연결시켜줬고, 이때부터 ARM의 설계는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98년 상장과 함께 헛간을 나왔다.

 ARM 성공의 핵심은 저전력 프로세서라는 원천기술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모바일 기기가 늘어나면서 빛을 발했다. 항상 켜져 있고,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모바일 기기의 성패는 배터리 사용시간에 달려 있다고 할 만큼 저전력 기술이 중요하다. 이 분야야말로 ARM의 핵심 DNA라고 할 수 있다. ARM이 알려지기 전 전 세계 프로세서 시장을 석권한 인텔의 칩이 100W의 전력을 사용한다면 ARM 기술이 들어간 프로세서는 5∼10%에 불과한 전력으로도 충분히 돌아간다. 훨씬 효율적으로 작업을 수행하기 때문에 가능한 성과였다. 

 ARM을 성공으로 이끈 또 다른 요인은 처음부터 상생을 추구하는 전략으로 나간 점이다. ARM은 제조업체들과 협력적이어서 어떤 조립공장도 소유하지 않고, 자사 상표로 된 칩을 팔지 않는다. ARM 도면을 가져간 반도체 또는 시스템 개발 회사는 이 기술에 자신이 원하는 부분을 보강해 제품으로 생산한다. 마케팅팀의 스튜어트 비튼은 “만약 우리가 원천기술을 이용해 모든 제품을 다 하려 했다면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며 “상생을 모토로 삼고 기술을 유료로 공개했더니 가전·자동차 등 우리도 상상하지 못한 다양한 영역에서 응용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ARM은 삼성·애플·퀄컴·엔비디아를 비롯한 300여 개의 회사와 954개의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삼성이 ARM 코어를 가져다 엑시노스 칩을 만든 것처럼 애플은 A7, 퀄컴은 스냅드래곤 같은 최신 AP를 각각 개발했다. 메모리반도체에서 시스템반도체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삼성전자가 단기간에 AP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만든 동력 중 하나가 ARM의 코어 기술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ARM의 상생전략은 라이선스 계약금과 로열티를 적절한 수준으로 묶고 있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오래된 기술의 경우 로열티를 칩 판매가의 1% 수준에서 정했다. 로열티를 비싸게 책정할 경우 고객사들이 직접 프로세서 개발에 뛰어들고 결국 시장이 줄어든다는 것이 박리다매를 선택한 ARM의 논리다. 실제로 미국의 퀄컴이 이동통신 칩으로 2010년에만 국내에서 17억5600만 달러(약 1조8829억원)의 로열티를 받아가자 삼성 등이 독자적인 LTE 칩 개발에 나서기도 했다.

 ARM은 원천특허를 추가하기 위해 연구개발(R&D)에 집중하고 있다. 전 직원 2700여 명 가운데 70%가 엔지니어다. ARM의 본사 카페테리아 입구에는 71개의 샴페인 병이 진열돼 있다. 10억 개의 칩이 팔렸을 때나 중요한 특허를 따냈을 때, ARM 20주년 행사 등에서 사용된 병이다. 응용시스템사업부의 앤드루 무어는 “생산라인은 없지만 전 세계에서 우리가 개발한 디지털 기기가 돌아다닌다는 것을 생각하면 바로 여기서 디지털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케임브리지(영국)=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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