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게티 소스도 ‘민주화’가 성공 키워드, 하워드 모스코위츠

‘아웃라이어’,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의 저자로 국내에 잘 알려진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의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TED 강연(Choice, happiness and spaghetti sauce)에서 자기의 영웅으로 하워드 모스코위츠(Howard Moskowitz)를 소개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인의 입을 행복하게 해준 장본인이라며 오늘날 다이어트 펩시, 다양한 맛의 스파게티 소스를 탄생시킨 주인공이 모스코위츠라는 것이다. 정신물리학자, 실험심리학자로도 세계적 명성을 가진 모스코위츠가 기업 입장에서 소비자를 치밀하게 분석해 제안한 제품들은 업계의 판도를 뒤집는 대박을 터뜨렸다. 

오늘날처럼 빅데이터 시대에 있어 기업이 어마어마하게 밀려드는 소비자 관련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하고 어떻게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할지 혜안을 제시하는 스토리를 소개했다. 

최근 국내 가정 식탁까지 진출한 스파게티,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지금과 같이 세계인으로부터 사랑받는 요리가 아니었다. 

미국에서 이탈리아 이민자들만 즐기던 스파게티를 네덜란드-영국계 생활용품 업체인 유니레버(Unilever)가 라구(Ragu)라는 브랜드로 스파게티 소스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스파게티의 대중화가 시작됐다. 이탈리아식 소스를 최대한 재현한 라구 소스는 미국인 일반 가정에서도 스파게티를 먹게 하는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유니레버보다 뒤늦게 스파게티 소스 시장에 진입한 캠벨(Campbell)사는 ‘프레고(Prego)’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유니레버의 아성에 도전했다. 선발자보다 더 낳은 품질의 스파게티 소스를 만들어 따라잡겠다는 전략이었다. 토마토 반죽도 훨씬 좋고 양념의 혼합률도 뛰어나서 파스타와 더 잘 어울렸다. 

1970년대 라구와 프레고의 접시 테스트는 유명한 일화다. 스파게티 면이 담긴 접시에 라구와 프레고를 부었을 때, 라구는 접시 바닥으로 흘러내렸지만 프레고는 점성이 뛰어나 흘러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뛰어난 품질에도 불구하고 프레고는 이미 인지도가 높은 라구를 뛰어넘지 못하고 판매에 있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캠벨은 결국 자구책을 찾기 위해 하워드 모스코위츠에게 도움을 청했다. 

스파게티 소스 업계 1위 브랜드를 뛰어넘어라

모스코위츠는 프레고의 제품 목록을 쭉 보더니 ‘죽은 토마토의 사회’라고 말하고 새로운 제안을 했다. 우선 캠벨의 요리사들과 함께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맛을 고려해 45개의 다양한 스파게티 소스를 만들었다. 단맛, 마늘 맛, 신맛, 토마토 덩어리가 남아 있는 소스 등. 이 소스들을 가지고 미국 전역에서 강당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맛보게 했어다. 그리고 선호도에 따라 0~100점까지 점수를 매기게 했다.

여기까지는 여느 기업에서 하던 소비자 선호도 조사였다. 캠벨은 스파게티 소스에 대한 소비자의 선호도 데이터를 산더미처럼 축적할 수 있었다.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단순히 가장 인기 있는 소스를 제품화했을까. 

모스코위츠의 차별성은 여기서 드러났다. 보편적으로 인기 있는 소스란 것을 아예 믿지 않은 것이다. 그 대신 데이터를 꼼꼼히 분석한 결과 미국인의 입맛이 세 그룹으로 나뉜다는 것을 발견했다. 평범한 맛, 강한 양념 맛, 그리고 토마토 덩어리가 남아 있는 맛에 선호도가 높다는 사실이었다. 모스코위츠는 세 번째 토마토 덩어리가 남아 있는 소스에 주목했다. 

모스코위츠는 캠벨사에 “토마토 덩어리 소스를 원하는 인구가 미국인의 3분의 1이나 되는데, 왜 이런 제품을 만들지 않는 거죠”라고 제안했다. 이 말을 들은 캠벨사는 즉시 덩어리 소스를 제품화해 시장에 내놨고 그 결과는 모스코위츠의 예상대로 미국 스파게티 소스 시장을 뒤엎었다. 그 후 10년간 프레고의 덩어리 소스는 60억 달러를 벌어들이며 승승장구했다. 

후발주자에게 시장을 내준 유니레버에는 당연히 비상이 걸렸다. 그래서 캠벨이 그랬던 것처럼 모스코위츠에게 소비자 분석을 의뢰했고 그의 조언에 따라 여러 가지 맛의 소스를 출시했다. 유니레버의 라구는 36개 맛으로 분화했고 다시 캠벨에 대한 열세를 회복할 수 있었다. 강연자 말콤 글래드웰은 모스코위츠 덕분에 양사에서 수많은 종류의 소스가 등장했고 미국인이 행복해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기업은 소비자에게 “어떤 스파게티 소스를 원하나요. 여러분이 바라는 바를 알려주세요”라고 수도 없이 물었지만 수십 년간 토마토 덩어리가 있는 소스를 원한다는 답변은 한 번도 없었다. 소비자 3분의 1이 가슴 깊이 이것을 원했음에도 말이다.

소비자 분석에서 ‘보편성의 족쇄’를 끊어라

모스코위츠는 식품업계가 소비자를 연구하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그 전까지만 해도 기업은 소비자에게 “어떤 스파게티 소스를 원하나요. 여러분이 바라는 바를 알려주세요”라고 수도 없이 물었지만 수십 년간 토마토 덩어리가 있는 소스를 원한다는 답변은 한 번도 없었다. 소비자 3분의 1이 가슴 깊이 이것을 원했음에도 말이다. 

모스코위츠의 소비자 분석은 ‘수평적 구분(horizontal segmentation)’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소비자 선호도에 있어 1순위, 2순위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수평선상에 배열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소비자 선호도를 근본적으로 민주화한 것이다. 

“스파게티 소스 세계에서 위계질서는 없고 모두 수평선상에 있다. 좋고 나쁘거나 완전하거나 불완전한 소스는 없고 단지 서로 다른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여러 종류의 소스가 있을 뿐이다.”

오랫동안 식품업계는 어떤 요리에든 완벽한 요리법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가장 정통에 가까운 스파게티 소스를 제공하면 사람들이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이것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글래드웰은 보편성을 찾아 헤매는 현상이 19~20세기 동안 모든 과학 분야를 휩쓸었고 심리학자, 의학자, 경제학자들도 인류의 행동을 일반화할 수 있는 규칙을 찾는 데 혈안이 돼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과학계에 일어난 대변혁이 바로 보편성 논쟁을 마치고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려는 운동이다. 모스코위츠는 이러한 대변혁이 스파게티 소스의 세계에도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모스코위츠의 성공적인 스파게티 소스 소비자 분석의 배후에는 펩시 다이어트 콜라 소비자 분석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1970년께 그가 컨설팅 회사를 설립한 초창기, 펩시의 의뢰가 있었다. 아스파탐이란 새로운 감미료를 통해 기존에 들어가던 설탕량을 줄인 다이어트 콜라를 개발하는 과정이었다. 

펩시는 아스파탐의 함유량을 8~12% 사이에서 고민했고 모스코위츠는 아스파탐의 함유량을 세분화해 수천 명에게 맛보게 한 후 선호도를 조사했다. 펩시도 모스코위츠도 가장 선호도가 높은 비율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고 그 비율을 적용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는 들쑥날쑥이어서 당황스러웠다. 적정한 콜라 맛을 알아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펩시의 소비자 분석 건을 두고 계속 고민하던 모스코위츠는 번뜩 해답이 떠올랐다. 

“펩시 실험의 문제는 바로 잘못된 질문에 있다. 펩시는 하나의 완벽한 펩시를 찾아 헤맸지만 완벽한 펩시를 여러 개 찾았어야 하는 거였어.” 

그리고 그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이때가 바로 소비자 분석 기법이 한 단계 도약하는 순간이었다. 

하워드 모스코위츠는 어떤 인물?

하워드 모스코위츠는 미국의 시장연구가이자 정신물리학자(psychophysicist)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정신물리학은 사람들의 경험을 연속으로 측정해서 마음과 물체의 관계를 규명하는 학문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모스코위츠는 이런 학문을 기반으로 기업들의 시장분석에 적용해 소비자의 경험과 일관성 있는 행동을 분석해 기업이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도록 컨설팅하는 역할을 하는 데 있어 세계적 권위자라 할 수 있다. 

모스코위츠는 하버드대에서 정신물리학 박사과정에 있을 때 뉴욕 화이트 플레인즈(White Plains) 지역에 작은 컨설팅 회사를 세운다. 아이노베이션(i-Novation)이라는 회사는 훗날 펩시, 캠벨 스파게티 소스, 맥스웰 하우스 커피 등이 오늘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는 현재 아이노베이션 최고경영자(CEO)이자 1981년 설립한 모스코위츠 제이콥(Moskowitz Jacob)의 대표다. 그는 소비자 분석과 관련한 책 등 16권의 저서가 있다. 최근 모스코위츠의 저서 ‘파란 코끼리 팔기(와튼스쿨)’는 대통령 선거에서의 메시지, 신용카드사, 주식시장 커뮤니케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어떻게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고 새로운 제품과 메시지를 창조해나가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일러스트 김중화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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