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합리적인 전략을 만들려면

인간은 합리적이지 못한 판단과 의사결정을 내릴 때가 많다. 전략 역시 결국은 최고경영자의 의사결정이다. 제한된 합리성을 인정하고 의사결정시 발생하는 오류를 막기 위한 틀을 수립한다면 좀 더 합리적인 전략을 만들 수 있다. 
  
만약 여러분이 이코노미스트(Economist)를 지금 구독 한다고 가정해보자. 세가지 옵션이 있다. 1)인터넷 전용 1년 회원 → 5만 9천원 2)잡지 전용 1년 회원 → 12만 9천원 3)인터넷 + 잡지 1년 회원 → 12만 9천원. 어떤 옵션을 선택하겠는가?(<그림 1> 참조) 
 
대부분 1번이나 3번을 선택할 것이다. 2번을 선택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쓸데없는 2번 옵션은 왜 주었는가? 만약 2번 옵션을 제거한다면 결과는 어떻게 달라질까? 
 
미국 듀크(Duke) 대학의 행동 경제학 교수인 댄 애리얼리(Dan Ariely)는 위와 같은 잡지 구독을 주제로 MIT MBA학생 100명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결과는 1번 16명, 2번 0명 그리고 3번이 84명이었다. 이번에는 2번 옵션을 제거하고 같은 질문을 다른 100명의 MBA학생들에게 물었다. 기존 경제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두 번의 실험 결과는 비슷하게 나와야 한다. 그러나 결과는 놀랍게도 1번 68명 그리고 3번 32명이었다. 3번을 선택한 사람이 2번 옵션의 유무에 따라 84명에서 32명까지 62%가 준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합리적일 것이라고 생각되는 MIT MBA학생들 혹은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위와 같은 오류를 범할까? 
  
의사 결정시 자주 발생하는 오류들 
 
앞의 사례에서 발생하는 오류가 바로 비교(Contrast) 효과이다. 비교효과란 어떤 하나의 사물이 다른 비교 대상에 의해 강화되거나 반대로 약화되는 오류이다. 즉, 사람들은 2번 옵션이 없는 상태에서는 1번 인터넷 전용과 3번 인터넷 + 잡지 만을 비교 대상으로 삼는다. 그런데 3번과 같은 가격으로 더 적은 가치를 제공하는 2번 옵션이 등장함으로써 3번이 훨씬 가치가 높은 것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예제를 살펴보자.  
 
글을 쓰다가 아이디어가 잘 나오지 않아 당분을 섭취하고 싶어진 사람이 평소 좋아하던 초콜렛을 사러 편의점을 찾는다. 가격을 봤더니 5천원이다. 사려고 하는데 우연히 친구를 만나 잠시 수다를 떤다. 대화 중에 그 사람이 고른 초콜렛이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에서는 2천 5백원에 팔리고 있다고 한다. 집었던 초콜렛을 살며시 내려 놓고 5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으로 걸어간다. 그런 후 몇 일이 지나 최근 급격히 살이 찐 그 사람은 새로운 드레스 셔츠가 필요해서 매장에 간다. 맘에 드는 셔츠를 골라 가격을 보았더니 5만원이다. 그 때 또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난다. 친구는 역시 친절하게 5분 거리에 있는 쇼핑몰에서 똑 같은 제품을 4만 7천 5백원에 팔고 있다는 정보를 준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냥 5만원에 셔츠를 사고 집으로 간다.  
 
당연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는 행동이지만 전통 경제학 관점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처음 언급했던 초콜렛을 사기 위해 다른 편의점을 향해 이동했을 때를 생각해 보자. 그 사람은 이동함으로써 발생할 비용(시간, 노력, 번거로움 등)이 2천 5백원 보다 낮았기 때문에 이동하는 것으로 최종 의사결정을 내린 것이다. 마찬가지로 드레스 셔츠를 사기 위해 다른 매장으로 이동하는 비용도 기존과 같다. 따라서 전통적인 경제학 관점에서는 효용을 극대화 하기 위해 반드시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왜 그 사람은 다른 의사결정을 내렸을까?  
 
크기(Scale) 혹은 비율(Ratio) 효과에 의한 오류를 범한 것이다. 2천 5백원이라는 금액은 5천원에 50%에 해당하지만 5만원에는 5%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만약 50만원 혹은 그 이상 되는 가격의 물건을 구매한다면 2천 5백원의 두 배 혹은 그 이상을 할인해 준다 해도 이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오류들이 의사결정시에 발생하곤 하는데 대표적인 것들을 정리하면 <표>와 같다. 
 
이러한 실제 인간의 비합리성과 의사결정시 발생 될 수 있는 오류들을 발견 분석하고 더 나은 의사결정을 돕는 연구를 하는 학문이 행동경제학이다. 행동경제학은 전통적인 경제학에서 발생하는 여러 모순점들을 비판하면서 시작되었다. 전통경제학에서는 모든 가능한 대안들에 대한 정보를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 그 대안들을 선택했을 때 미래 발생할 결과에 대해 정확한 기대 값도 알고 있기 때문에 의사결정을 할 때 최적의 대안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인간의 행동을 관찰하면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행동 경제학은 인간의 실제적인 행동이나 판단에 관한 연구로서 인지 심리학과 함께 발전해 왔다.  
  
최근 경제 예측에 대한 정확성이 떨어지고 불확실성이 급격히 증대되는 상황에서 특히 이 학문이 각광을 받고 있다. 미국의 오바마 정권 역시 리처드 테일러(Richard Thaler), 카스 썬스타인(Cass Sunstein), 다니엘 카네만(Daniel Kahneman)과 같은 행동 경제학자들을 최고 자문위원(Top Adviser)으로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전략이란? 
 
이렇게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행동 경제학은 경영학 중에서 주로 재무나 마케팅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재무에서는 잘못된 투자를 방지하는 목적으로 적용되었고 마케팅에서는 주로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구매를 (혹은 그 반대?) 유도하기 위한 방법으로 적용되었다. 그렇다면 경영 전략 분야에서는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가?  
 
경영 전략(strategic management) 분야는 경영 정책(business policy)의 한 부분에서 1970년대 후반부터 새롭게 하나의 독립적인 분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971년 ‘스왓(SWOT)’ 분석을 시작으로 80년대 ‘five forces model’, 90년 ‘자원준거론(resource-based theory)’, ‘핵심역량(core competence), 2000년대에 ‘기업 혁신론(corporate innovation)’ 등 수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어 왔다. 학문적 발전과 더불어 비즈니스 컨설팅 분야에서도 전략과 관련된 많은 연구가 있었다. 보스톤 컨설팅 그룹의 ‘BCG 매트릭스’, 맥킨지 앤 컴퍼니의 ‘7S’ 등이 대표적인 예시들이다. 전략하면 떠오르는 이러한 대표적인 용어들이 과연 전략인가? 그렇지 않다. 이것들은 전략을 만들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렇다면 전략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단순한 정의를 내리자면 전략이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내리는 의사결정이다. 다시 말해서 전략은 목표를 세우고 외부 및 내부 환경분석 등을 통하여 도출되는 여러 옵션들 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옵션을 선택하는 것이다(<그림 2> 참조). 물론 넓은 의미로 대안을 발굴하고 선택하는 과정 전체를 전략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좁은 의미의 전략이란 결국 의사결정을 말한다.  
  
M&A 시의 오류들 
 
전략의 핵심은 의사결정이다. 그리고 의사결정의 주체는 인간이다. 특히 기업에서는 최고경영자가 의사결정을 내리는 가장 중요한 주체가 된다. 이들은 똑똑하고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다년간의 비즈니스 경험으로 인한 노하우(know-how)와 인사이트(insight)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이들의 전략이 때로는 비합리적이고 무모하며 기업에 큰 위험을 가져오게 하는가? 물론 잘못된 전략의 원인은 전략 수립 프로세스상에서 다양하게 발생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최고경영자의 의사결정에 집중하여 설명해 보자.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무리한 인수합병(M&A)를 강행하여 기업을 위험에 빠지게 하는 경우를 살펴보자. 전략 팀은 여러 분석을 토대로 인수합병에 대한 세가지 시나리오들을 제공한다. 첫째는 가장 긍정적인 시각에서 둘째는 가장 타당한 그리고 마지막 시나리오는 최악의 경우를 전제한다. 그러나 이미 인수합병에 대한 굳은 의지를 품고 있는 최고경영자에게 옵션들은 큰 의미가 없다. 최고경영자는 둘째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시너지 효과에 대해 과다한 자신감을 보인다. 게다가 정보를 더 얻을수록 확신이 커져만 간다. 최종적으로 최고경영자는 인수합병을 하는 것으로 의사결정 내린다. 이 전략은 악화된 외부 경제 요인과 맞물려 기업을 재무적인 압박에 시달리게 한다. 결국 그 기업은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이 사례에서 발생한 오류는 ‘과잉확신(overconfidence)’과 ‘확증(confirmation)’ 오류이다. 과잉확신이란 인간이 자신의 판단이나 지식에 대해 실제보다 과장되게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즉 최고 경영자는 자신의 인수합병에 대한 평가를 과장되게 계산한 것이다. 덧붙여 확증오류를 범하게 되는데 이것은 인간이 자신의 판단을 더욱 견고하게 해줄 정보를 찾고 반대되는 정보를 제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면 좀 더 합리적인 전략을 만들 수 있었을까?  
 
우선 이 경우 전략 팀은 시나리오를 세가지가 아닌 두 개로 만들어야 한다. 작년부터 시작된 경제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기업들은 저마다 ‘시나리오 플래닝(scenario planning)’을 내놓았다. 대부분이 긍정적, 가장 합리적, 부정적인 세 가지의 옵션을 보여준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자고 외치지만 실제로는 중간의 옵션을 쉽게 고르게 된다. 만약 세 개가 아닌 두 개의 시나리오만 만들어야 한다고 정해져 있다면 어떻게 달라질까? 전략 팀의 분석은 좀 더 정밀해 질 것이다. 최고경영자 역시 의사결정시 손 쉽게 중간을 고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번 더 고민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확증효과를 막아야 한다. 최고경영자는 때때로 스스로의 논리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귀납법으로 결론을 도출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연역법으로 이미 정해진 결정에 맞는 정보만을 찾으려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 결국 이런 점은 악순환되고 최고경영자의 과잉확신을 더욱 키우게 되어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방해 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최고경영자는 객관적일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편향되지 않은(unbiased) 외부 컨설팅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사업 포트폴리오 구성시 오류들 
 
의사결정시 발생하는 또 다른 오류 예시는 사업 포트폴리오 전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최고경영자는 전체 기업 차원에서 각각의 사업을 조정한다. 어떤 사업은 빠르게 성장하거나 느리게 성장한다. 또 어떤 사업은 이익을 많이 가져다 주는 반면 이익이 적거나 오히려 손실을 가져오는 사업도 존재한다. 최고경영자는 전략 도구들을 이용하여 각 사업의 건전성을 한눈에 보게 된다. 그 중 성장률도 낮고 점유율도 낮아서 오히려 기업 전체 포트폴리오에 손해를 미치는 사업을 발견한다. 또한 이 사업을 매각한다고 해도 다른 사업들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합리적인 전략은 사업을 팔 수 있을 때 다른 기업에(경쟁사가 아닌 경우) 매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고경영자는 계속 이 사업을 끌고 가게 된다. 이런 현상을 흔히 ‘매몰 비용 오류 (sunk cost fallacy)’로 설명한다. 즉 이미 투자된 비용 때문에 사업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매각할 기회가 있음에도 왜 선택하지 않을까? 이런 현상은 ‘증여 오류 (endowment bias)’로 설명할 수 있다. 최고경영자는 자신의 기업의 소유가 된 그 사업의 가치를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손실 회피 (loss aversion)’ 오류이다. 최고경영자는 얻는 이득보다 잃는 손해를 더 크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런 오류들을 막기 위해서는 경쟁 기업 최고경영자의 신발을 신고 자사의 포트폴리오를 분석해야 한다. 즉 자신이 들인 관여, 공로, 애정 등의 감정적인 요인을 제거하고 객관적으로 포트폴리오상의 문제가 되는 사업을 분석해야 한다. 경쟁사의 최고경영자라면 매몰 비용이 계속 들어가는 이 사업을 빠르게 매각할 수도 있다. 이와 더불어 내부적으로 혹은 내부적으로 불가능 하다면 외부 컨설팅을 이용하여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역할을 설정해야 한다. 악마의 대변인 역할은 무조건 최고경영자의 전략에 태클(tackle)을 거는 것이다. 논리의 허점에 과감하게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설정함으로써 최고경영자가 자신만의 사일로(silo)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라 
 
앞에서 설명한 예시 외에도 더 많은 행동경제학의 연구들이 경영 전략에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제한된 합리성을 가지고 있고 쉽게 오류를 범할 수 있다라는 부분을 인정하는 일이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의 책 ‘검은 백조(The black swan)’에서 재미있는 예시가 나온다. 사육 당하는 칠면조는 매일 먹이를 얻어 먹으면서 안도감이 조금씩 증가한다. 그러나 안도감이 최고에 달했을 때가 바로 그 칠면조의 마지막 순간이다. 최고경영자들 역시 과잉 자신감이 올라갈수록 잘못된 전략을 만들 확률이 올라간다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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