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알고 국방부는 모르는 천안함 위기 대응 전략

경영전문가들은 늘 위기에 대처하는 기업 경영에 대해 이야기한다. 삼성경제연구소도 2001년 ‘돌발사태와 기업의 위기대응’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런 경영 이론에 비추어 보면, 천안함 사태에 대한 군과 정부당국의 대응은 어땠을까?

 

천안함 사태에 대한 군과 정부 당국의 대처 방법을 놓고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이 사태가 일어난 뒤, 제대로 된 대응을 하고 있느냐는 데로 논의가 집중되는 모양새다. 그런데 이번 사태가 내 눈길을 끈 것은, 이 사태를 표현하는 ‘위기’라는 단어 때문이다.

 

‘위기’는 사실 경영학의 단골메뉴다. 기업은 늘 경쟁환경 속에 놓여 있다. 그래서 기업가는 늘 불안하다.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정서가 모든 의사결정의 이면에 깔려 있다. 그 불안을 파고 들어가는 것이 바로 위기 이론이다. 이른바 ‘경영의 구루’라고 불리는 경영전문가나 유명한 CEO가 입을 열면 늘 ‘위기’를 이야기하는 것도, 그만큼 이 주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효과적인 위기 대응 전략과 개인이나 공공조직의 위기 대응 전략은 유사할 수 있다. 그러니 기업의 효과적 위기 대응 전략에 비추어 보면, 천안함 사태에 대한 해군의 위기 대응의 문제도 더 잘 보이지 않을까?

 

발달심리학에서는 사람이 겪는 위기를 두 가지로 나눈다. 한 가지는 인격발달 과정에서 경험하는 성숙위기다. 청소년기 진입, 결혼, 자녀 출생, 노화 등 발달과정에서 자연스레 일어나는 위기다. 다른 한 가지는 돌발적으로 생기는 상황적 위기다. 위기상태를 촉발하는 질병, 외상, 사별, 자연재해, 폭력 등으로 갑자기 일어나는 위기다.

 

사실 기업에게 닥치는 위기의 종류도 비슷하다. 기업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성숙위기와, 9.11 테러처럼 돌발적으로 겪는 상황적 위기가 있다.

 

이 가운데 상황적 위기는 예측할 수 없으므로 발생 뒤 대응이 더욱 중요하다. 기업들은 상황적 위기에 대해 더욱 노심초사하기 마련이다. 경영전문가들도 돌발사태에 대비하는 전략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돌발사태와 기업의 위기대응’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낸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당시는 2001년 9.11 테러사건 직후였다. 대부분의 기업이 전무후무한 세계적 테러 앞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을 때였다. 눈길을 끈 것은 당연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 보고서에서 “위기관리 및 사후대응의 적절성 여부에 따라 기업의 성쇠가 결정”된다고 밝혔다. 또 “위기에 올바르게 대처하지 못한 기업은 재정 및 이미지 상의 손실을 입게 되고 심할 경우 업계에서 퇴출”된다고 경고했다.

 

특히 위기 대응 때 기업이 염두에 두어야 하는 전략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 전략적·실천적인 기업의 위기대응 방안

삼성경제연구소의 이 보고서에서 이번 천안함 사태와 연결시켜 생각해 볼 만한 점은 두 가지다. 1. 위기 상황에 대한 투명한 공개 2. 견제와 균형 원리를 도입해 내부시스템 오류 가능성 차단이 그것이다.

 

첫 번째 시사점, ‘공개’와 관련해서 삼성경제연구소는 “사건사고의 은폐, 변명, 미숙한 언론대응 등 위기처리 과정에서의 미숙이 위기의 충격을 가중”시킨다고 지적했다. 이번 천안함 사태 때 당국의 대응은 어땠을까?

 

천안함 사고와 관련한 당국의 발표는 끊임없이 바뀌면서, 갖가지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우선 사고 발생 시점부터가 자꾸 바뀌었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사고 발생 2주가 지나서야 3월 26일 21시21분57초에 사고가 난 것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최원일 함장은 오후 9시 23분이라는 시간을 컴퓨터에서 확인했다는 증언을 했다. 또한 열상감지장비(TOD)에 기록된 시각도 처음에는 2분 40초 정도 늦다고 했다가, 나중에 다시 1분 40초 늦는 것으로 말을 바꿨다.

 

기본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의혹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합참의장이 천안함 침몰에 대해 첫 보고를 받은 시점을 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더니, TOD영상을 계속 숨기다 편집된 내용 일부를 보여주고, 다시 숨겨진 화면이 있었다고 지적받고 나서야 추가 공개하기도 했다.

 

사고 대응에 대한 발표도 계속 바뀌었다. 서해상 해군의 가장 강도 높은 대비 태세인 ‘서풍1′의 발령 시각도 원래 21시 45분이라고 발표했다가, 21시 40분으로 수정했다. 대응 시작 시간을 5분 ‘깎은’ 것이다. 처음에는 함미 쪽 장병들이 69시간 동안 생존할 수 있다는 발표를 하며 구조작업을 독려하더니, 나중에는 초기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또 실종자 명단을 가족에게 먼저 공개했다고 발표하더니, 알고 보니 언론에 먼저 공개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이 모두가 ‘위기 상황에서는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위기대응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존슨앤드존슨은 유명한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으로 오히려 소비자에게 신뢰받는 기업이 됐다. 1980년대 초, 미국 시카고 인근에서 존슨앤드존슨의 진통제 타이레놀을 복용한 사람 일곱 명이 잇따라 사망한 사고가 일어났다. 그런데 당시 존슨앤드존슨은 사고 내용에 대해 전혀 은폐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오히려 신속하게 소비자들에게 사실 그대로를 전하고 ‘타이레놀 복용에 주의하라’는 메시지까지 전달했다. 그것도 모자라 결국 전국의 타이레놀 전부를 리콜하는 정책을 펼친다.

 

결과적으로 누군가가 청산가리를 타이레놀에 주입했던 것으로 드러나 제조사 책임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 이 사건에서, 존슨앤드존슨은 미국 소비자의 신뢰를 한 몸에 받게 된다. 결국 이 기업은 미국에서 가장 평판이 좋은 기업이 되고, 타이레놀은 대표적인 진통제가 됐다.

 

두 번째, 더 근본적인 시사점은 전문적 분야의 위기 방지에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천안함 사태 뒤, 엄청나게 비싼 군 장비와 위용을 자랑하는 군 조직이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었는지가 매일 국민들 앞에 공개되고 있다. 첨단 열감지장비의 시간은 계속 틀리고, 녹화된 영상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고 있으며, 위기 대응은 매뉴얼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책임지고 모두를 총괄하는 위기시 지휘자도 없었다.

 

이런 상황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 최첨단 금융상품을 다루는 투자은행에서 벌어지는 일을 연상시킨다. 엄청난 전문성을 자랑하는 금융공학 전문가들이 만든 파생상품은, 어이없게도 조그만 위험에도 송두리째 흔들리곤 한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손실을 투자자들에게 끼치고는 사라져 버린다.

이런 사고의 전통적인 사례가 세계적 금융사인 베어링스를 단 한 번에 파산시킨 닉 리슨의 1995년 금융사고다. 베어링스는 높은 수익을 올리는 닉 리슨을 지나치게 믿었고, 그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시스템을 허술하게 가동한다. 결과적으로 리슨은 1992년부터 3년 동안 2억 파운드 규모의 투자손실을 냈으나, 이를 회사쪽에 숨긴다. 베어링스의 총 자산은 4억 7천만 파운드였으니, 회사 규모의 절반 가까운 돈을 까먹었는데 누구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군사분야는 매우 특수한 분야다. 전문지식이 없이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더욱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군 내부에서만 군사 문제를 통제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우리는 금융권에서 일어나는 대형사고로부터 더욱 잘 알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기업내의 전문화된 영역은 내부의 감시나 견제에서 벗어나 있어 위기의 원인이 됨”이라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 보고서의 결론에서 “일단 사고가 나면 수습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하며, “위기에 따른 손익을 산술 계산으로 따지다가는 큰 낭패가 초래”된다고 밝혔다. 바로 지금, 사고를 수습하고 있는 당국이 마음 속에 새겨두어야 할 문구가 아닐까.

 

물론 삼성경제연구소의 이 보고서는, 삼성이 겪었던 ‘엑스파일’ 사건 등 스스로의 위기에는 적용되지 못했다. 삼성 스스로도 투명하게 내용을 공개하지도 못했고, 적절한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특정 대기업에 종속적인 연구소 지배구조의 한계가 드러난 셈이다.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행할 수 있는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는 점이 다시 한번 드러난다.

 

천안함 사태도 마찬가지다. ‘철저한 정보공개’가 위기 대응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그러나 실행하기 어렵다. 당장 주변 사람의 이해관계가 모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존슨앤드존슨처럼 이를 돌파해 낸 기업이나 조직이 더욱 빛나는 성공사례로 남아 있는 것은, 아마도 그만큼 말은 쉬우나 실행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원재 현겨레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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