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선거 전문가…PR 전문기업 ‘웨버 샌드윅’의 잭 레슬리 회장

TV토론 정치인 ! 유권자는 진실인지 아닌지 안다

잭 레슬리(57) ‘웨버 샌드윅(Weber Shandwick)’ 회장을 지난 12일 만났다. 웨버 샌드윅은 세계적 PR 회사다. 83개국에 지사를 두고 있다. 포춘지 선정 50대 기업 중 3분의 2가 이 회사 고객 명단에 들어 있다. 삼성전자도 3D(3차원) TV 해외 홍보를 이 회사에 의뢰하고 있다.

 레슬리 회장은 30년 경력의 ‘선거 전략’ 전문가다. 고(故) 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1986년),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94년)의 당선에도 기여했다. 잇따른 선거를 앞둔 한국 사회, 반(反)월가 시위로 요동치는 미국 사회에 세계적 PR 권위자가 어떤 조언을 해 줄지 궁금했다. 그의 진단과 조언은 의미심장했다. 레슬리 회장을 만난 시점은 스티브 잡스가 작고한지 며칠 뒤였다. 잡스가 정치에 뛰어들려 했다가 포기한 이야기도 듣게 됐다.

글=성시윤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레슬리 회장은 미국 조지타운대 외교학과를 나왔다. 대학 졸업 직후 고(故) 에드워드 케네디 전 미국 연방 상원의원의 보좌관이 됐다. 80년 에드워드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을 때를 포함해 8년간 그를 보좌했다. 82년 케네디의 상원의원 재선까지 도운 뒤에는 정치컨설턴트로 변신했다. 콜롬비아·아르헨티나·에콰도르·코스타리카·칠레의 대통령선거, 넬슨 만델라가 이끌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총선 등에 조언을 해 줬다. 이런 경력 끝에 2001년 웨버 샌드윅의 오너 겸 회장이 됐다. 웨버 샌드윅은 9·11 테러 직후에 아메리카에어라인 같은 항공회사들에 조언을 하는 등 기업들의 ‘위기 관리’에도 컨설팅을 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레슬리 회장이 j 의 다양한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궁금해졌다. ‘다소 엉뚱하고 공격적인 질문이 나오더라도 이해해 달라’고 당부하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남미·필리핀·아프리카의 민주화에 기여한 것 같은데.

 “커뮤니케이션은 매우 민주화된 수단이다. 폴란드의 솔리대리티(폴란드의 민주화를 이끈 자유노조)와 함께 일하면서 실감했다. 서구가 냉전에서 이긴 것은 미사일과 탱크 덕분이 아니었다. 팩스머신과 텔레비전 덕분이었다. 커뮤니케이션은 변화를 불러오는, 강력한 도구다. 잘 활용한다면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다.”

●나쁜 정치인이 선거에 이기도록 도와줄 수도 있나.

 “아주 좋은 질문이다. 내 업무 윤리를 묻는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지지자들과 함께 일해 온 것을 나는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여기저기서 많이 받았었다. 하지만 거절할 때도 많다. 나는 변호사들과는 다르다. ‘누구나 좋은 변호사를 얻을 권리가 있다’는 말이 있지만 누구나 좋은 PR 전문가를 얻을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좋은 정치인은 왜 PR 전문가가 필요한가.

 “나는 고객들에게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 테니스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동영상을 찍어 보여 준다면 자신이 테니스에서 뭘 잘못하고 있는지를 알려 줄 수 있다. 내가 해 온 일은 누군가가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을 동영상으로 찍어 보여 주는 것과 유사하다. ‘파란 셔츠를 입는 게 좋겠다’ 따위를 알려 주는 게 아니다. 그들이 유권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프레임을 짤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한국도 여러 선거를 앞두고 있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에게 해 주는 조언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라(Be yourself)’이다. 정치인의 메시지는 그들의 가슴속에서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유권자를 설득할 수 없다. TV토론회에선 특히 그렇다. TV는 X선 장비와 같다. 정치인이 진실을 이야기하는지, 아니면 그저 유권자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지를 유권자들은 분별할 수 있다.”

●솔직하게 드러낼 만한 ‘자신(yourself)’의 존재가 없다면.

 “그럼, 그는 선거에서 진다.”

●컨설팅을 해 주다가 그런 사람임을 알게 된다면.

 “나는 그런 사람들과는 일하지 않는다. 하하.”

●하지만 때로는 제의를 거절하기 쉽지 않을 텐데.

 “사람이 나이가 들면 거절하는 게 좀 쉬워진다.”

●젊을 때는 쉽지 않았다는 얘기 아닌가.

 “내 답변을 그런 식으로 해석하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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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겐 정치적 성향이 있다. 기업이라면 그것 때문에 당신 회사에 일 맡기는 것을 불편해할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다. 다양한 정치적 성향의 사람들이 우리 회사에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DC에 있는 우리 조직인 ‘파월 테이트-웨버 샌드윅’을 예로 들어 보자. 지미 카터의 언론보좌관 출신인 ‘파월’(Jody Powell)과 로널드 레이건의 언론보좌관이었던 ‘테이트’(Sheilla Tate)가 모두 들어와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 회사는 미국에선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회사로 인식돼 있다. 런던 지사의 경우도 노동당·보수당·사회민주당 출신이 모두 포함돼 있다. 그래서 회장이 친(親)민주당 인사라는 사실이 우리 회사의 영업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

●스스로 정치인이 될 생각은 없나.

 “없다. 젊었을 때는 아마도 약간 그런 생각이…. 그러나 지금은 없다. 내가 운이 좋아 어떤 형태로든 공공을 위해 봉사하고 있으니까. 현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임명을 받아 백악관 산하 ‘아프리카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전에는 유엔난민기구(UNHCR) 미국 지부의 의장도 했다. 이런 식으로 계속 공공서비스에 관여하고 있다. 하지만 출마라는 건 완전히 다른 것이다. 내가 조언을 해 왔던 선거에 그야말로 내 전부를 바쳐야 하니까. 내가 그것을 즐길 것 같지는 않다.”

●다른 얘기로 넘어가 보자. 중동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기존 권위와 제도를 비판하는 시위가 뜨겁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나.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수단으로서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징표다. 튀니지에서 일어난 과일상들의 시위가 ‘아랍의 봄’을 이끌어 냈다. ‘소셜 미디어’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소셜 미디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떻게 소셜 미디어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지도자들이 이해해야만 한다. 나중에 역사가들은 이렇게 쓸 것이다. ‘팩스와 복사기가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듯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중동을 변화시켰다’고. 결국 이 모든 것이 커뮤니케이션 때문이다.”

잭 레슬리 회장이 컨설팅 한 유명 인사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고(故) 에드워드 케네디 미국 연방 상원의원, 고 코라손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내외,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당신 같은 PR 전문가를 가장 필요해 할 사람이 월가의 금융회사들이다.

 “사실 이미 우리 고객사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뭐라고 조언하고 있나.

 “만약 월가가 지금의 시위를 단기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위기로 본다면 크게 실수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정부·금융산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도에 대한 신뢰가 세계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런 경향은 30년 전부터 계속 심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정보를 얻기 위해 제도에 의존했지만, 이제는 인터넷 같은 소셜 미디어에 의존한다. 사람들은 금융산업 같은 제도의 가치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소수를 부유하게 만드는 수단쯤으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금융산업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니 금융회사들은 금융 시스템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모든 사람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조언하고 있다.”

●제도권이 이런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실패 때문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위기 관리에 있어 제도권이 하기 쉬운 실수는 직관에 따라 대처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직관에 따르지 말고 사전에 대비한 대로 대처해야 한다. 9·11 테러 당시 항공산업이 위기에 잘 대처한 예가 대표적이다. 테러리스트가 비행기를 몰아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할 줄 누가 알았겠나. 하지만 미국 항공산업은 잘 극복해 냈다. 다양한 가능성에 대비해 위기 관리 매뉴얼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위기 관리의 성공 여부는 사전 준비와 훈련에 달려 있다.”

●한국의 국가 브랜드 얘기를 좀 해 보자. 한국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산업 발전소(industrial powerhouse)’라 할까. 한국 하면 개인적으로 자동차와 가전제품 같은 제품들이 먼저 떠오른다. 추상적으로 보자면 한국의 이미지는 ‘퀄리티’와 ‘이노베이션’이다. 삼성의 가전제품이나 현대의 자동차는 가격뿐 아니라 품질에서도 업계의 선구자다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노베이션에서 앞장서 왔기 때문이다. 또 한국 하면 ‘근면’이 떠오르는데, 미국 내의 한인사회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긍정적인 모습들이다.”

●이런 이미지가 20년 뒤에도 여전히 유지될 것으로 보나.

 “그렇다. 한국이 겪게 될 도전은 일본과 비슷할 것이다. 내가 어릴 때 ‘메이드 인 재팬’은 ‘저가’로 통했다. 그러다 소니 같은 브랜드를 통해 고급 퀄리티의 이미지를 심어 줬다. 하지만 일본의 경쟁자로 한국이 떠오른 것처럼 한국도 머지않아 경쟁자를 맞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리더십을 구축하고 유지할 것인지를 한국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아직 수년 정도의 시간은 남아 있지 않나 싶다.”

What Matters Most?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내 호기심을 유지하는 것 입니다. 호기심이 없다면 인생은 별 재미가 없죠. 호기심은 내가 하는 일에 나를 뛰어들게 만듭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게 하죠. 또 호기심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해법을 늘 찾게끔 해 줍니다. 그리고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을 찾고 싶어 하게 합니다. 호기심은 나 자신의 비즈니스를 위한 새로운 혁신책을 찾도록 이끌죠. 호기심을 갖는 것, 그것이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j 칵테일 >> ‘일찍 일어나고 … 청문회 가고 …’
상원의원 일과 들은 잡스 “지루하네요, 출마 안하겠어요”

얼마 전 작고한 스티브 잡스도 잭 레슬리 회장의 고객이었다. 레슬리 회장이 잡스 이야기를 꺼낸 것은 “스스로 정치인이 될 생각은 없나”라는 질문을 j 에게 받고서 자신이 왜 정치인이 되지 않았나를 설명하던 중이었다.

“1980년대 초 스티브 잡스가 고객이었다. 그가 내게 정치 컨설팅을 받고 있었던 이유는 당시의 컴퓨터 시장을 마치 정계와 같은 경쟁의 장으로 봤기 때문이다. 정계로 치자면 IBM은 ‘현직 대통령’이고, 애플은 ‘대권 도전 후보’ 같은 상황이었다. 83년이었나, 아마도 그가 매킨토시를 출시하기 전이었다. 당시로선 매킨토시 같은 개인 PC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었다. 나와 잡스는 ‘IBM이 공급자 중심이고 고객을 통제한다면, 애플은 개인 소비자 중심이고, 개인의 크리에이티브를 해방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런데 잡스가 매킨토시를 내놓고 나서 실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나 보다. 어느 날 나에게 전화를 해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큰 집인데 집 안에 가구가 하나도 없었다. 의자 하나만 달랑 있고 장난감 기차 선로만 놓여 있는데, 기차가 선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잡스가 ‘마당으로 나가자’ 하길래 함께 밖으로 나가 잔디밭에 앉아 얘기를 했다. 잡스가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과 함께 일한 시절을 얘기해 봐요. 미국 상원의원의 일상이 어떤 것인가요. 아침에 일어나 취침할 때까지 뭘 하죠’ 하고 묻더라.”

●그래서 뭐라고 말해 줬나.

 “있는 그대로 말해 줬다. ‘새벽 일찍 일어나야 한다. 나 같은 보좌관들이 집으로 찾아올 거다. 출근을 해서 오전 9시에 청문회에 들어간다. 그러고 나서…’ 이런 식으로 상원의원의 하루 중 반나절 정도를 얘기했을 뿐인데….”

●잡스가 뭐라 하던가.

‘그건 지루할 것 같네요. 출마하고 싶지 않아요’ 했다. 슬픈 일이지만 정치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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