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가치와 명분 ② 건전한 경쟁구조 ③ CEO의 역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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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누구 라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많다. 본인은 절대 `줄서기`를 하지 않았는 데도 동료들에게 그렇게 인식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렇게 규정되는 라인은 △업무적으로 윗사람과 잘 맞는다든지 △같은 팀에 근무한 경력이 있었는지 △학연ㆍ지연이 같다든지 등에 의해 다양하게 형성된다. 그러면서 본의 아니게 라인 간 갈등의 당사자나 희생양이 되곤 한다.
그렇다면 이런 라인(줄서기)을 피할 수 있을까. 대답은 대체로 `아니다`인 것 같다. 중간지대에 있다 보면 보호막이 없어 라인 간 갈등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혈연ㆍ지연ㆍ학연과 같은 전근대적인 방식에 의해 형성된 라인은 조직에 악영향을 끼치는 반면, 업무 협조나 프로젝트 공유 등과 같은 사례로 만들어진 라인은 회사 발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라인, 즉 `사내정치`가 반드시 독은 아니라는 얘기다. 세계 최고 기업 중 하나인 GE는 특유의 포트폴리오 사업전략 등에서도 독보적인 입지를 갖고 있으며, 동시에 다른 강점도 지니고 있다. `좋은 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흔히 `리더십 파이프라인`으로 표현되는 GE의 건전한 리더십 경쟁구조는 잭 웰치에 이어 제프리 이멀트라는 리더를 만들어냈다. 그뿐만이 아니다. `친환경 사업으로의 대대적인 포트폴리오 전환` 등 `가치와 명분`을 내걸고 벌이는 경쟁은 GE라는 거대한 기업이 시대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한만현 모니터그룹 대표는 “`사내정치`라고 하면 `줄서기`부터 떠올리는 한국의 많은 기업과 경영진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좋은 정치`를 GE가 가장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GE 같은 기업이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내정치가 가능하다면, 기업 내부에서의 정치란 절대로 관리하거나 억제해야 될 문제가 아니라 CEO가 나서 활성화해야 하는 `기업 경영 전략`의 한 부분으로 포함돼야 한다. 훌륭한 리더십과 폴로어십으로서 정치가 구현돼야 하는 것. 사람들은 흔히 `정치`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갖기도 하지만 정치적이지 않은 사람은 사실 의욕이 부족한 사람이다. 한 기업의 리더나 임원이 되고 싶은 욕망 자체가 일종의 권력욕이다. 권력욕이나 정치 같은 단어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라는 얘기다. 매일경제 MBA팀은 한만현 모니터그룹 서울사무소 대표와 김광현 고려대 경영대 교수 등 국내외 전문가들의 조언을 종합해 `좋은 정치 만들기 3단계 전략`을 만들었다. ◆ 1단계: `가치와 명분` 만들기 본래 정치란 특정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벌이는 전쟁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무기가 `명분`이다. 기업 입장에서 가치는 회사마다 약간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회사의 지속성장과 주주ㆍ직원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물론 방법론상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정치`가 이뤄지는 기업이라면, 바로 이 지점에서 `건전한 토론과 경쟁`이 등장하게 된다. 이견을 가진 리더그룹이 각자 명분으로 삼는 건 바로 회사의 성장과 직원복리, 주주이익 등의 공유된 가치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CEO가 창업 초기 혹은 기업혁신 과정에서 명백한 기업의 가치와 명분을 만든 다음 회사 임직원들이 공유하게 하면, 기업 내 정치가 자연스럽게 발전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는 것이다. 한만현 대표는 “정치에서 명분이 때로는 전부인 것처럼, 기업에서도 올바른 명분을 추구하는 구조를 만들어놓기만 하면 이를 두고 벌이는 리더십 그룹 간 경쟁은 회사에 발전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 대표는 이러한 `가치와 명분 만들기`에 성공한 대표적 기업가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을 꼽았다. 단순한 경영이 아니라 기업 내에서의 `좋은 정치`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는 것. 한 대표는 “안 교수는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사회공헌과 수익의 균형`이라는 가치를 설정하고 임직원들과 이를 공유했다”며 “여기에 사람들이 동의하고 일을 하다 보니 사내정치가 `좋은 정치`로 형성됐다”고 평가했다. ◆ 2단계: 건전한 경쟁구조 만들기 아무리 올바른 가치를 설정해놓고 명분을 만들어 두더라도 기업 내 리더십 경쟁구조가 건전하고 공정하지 않으면 어렵게 만들어놓은 가치와 명분도 금방 망가진다. 김광현 교수는 “조직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 조직의 목표와 개인의 목표가 대립적일 수 있다. 이때 조직의 이익이 곧 자신의 이익이 되도록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이 `명분`을 얻게 되고 치열하게 자신의 이익과 일치하는 조직의 이익을 위해 경쟁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시스템상으로 개인과 조직의 이익이 일치하도록 만들어 놓으면 임직원들이 `줄서기 전쟁`이 아니라 `회사 성장전략`이나 `아이디어`를 놓고 전쟁을 벌이게 된다는 것. 김 교수는 “이러한 건전한 경쟁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성과보상과 승진 시스템`이 엄밀하게 짜여 다수가 납득할 수 있게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대표도 “GE의 경우 권한위임, 성과에 대한 보상과 필벌이 확실해 리더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오는 경우가 없다”며 “이런 경쟁구조가 `좋은 정치`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다”고 분석했다. 건전한 경쟁구조는 우리나라에 많은 오너기업에 특히 중요하다. 오너기업의 경우 `혈육간 정치`부터 시작해 그들을 둘러싼 `줄서기`와 온갖 협잡이 난무할 수 있다. 괜히 드라마 단골 소재가 되는 게 아니다. 한 대표는 “이를 막기 위해서는 현직 오너가 가진 두 가지의 핵심 권한 `사람에 대한 권한` `돈에 대한 권한`을 활용해 `줄서기 정치`가 용납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힘을 가진 `독재자`이고 혈육이나 후계자들마저도 휘두를 수 있는 권한을 가졌기 때문에 오히려 `건전한 경쟁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현직 오너가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창업 초기 혹은 취임 직후 정립한 가치와 명분은 가족기업ㆍ오너기업일수록 오히려 쉽게 망가진다는 것이 전문가들 조언이다. ◆ 3단계: CEO의 세 가지 핵심역량 투입 `가치와 명분 만들기`에 성공하고 `건전한 경쟁구조`를 만들어냈다면, 오너 경영자든 전문경영인이든 진짜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 이때 CEO는 세 가지 핵심역량을 투입해야 한다. 한 대표는 “CEO는 △경청을 통한 균형감각 유지 △정확한 의견 선택 △선택된 의견의 확고한 실행이라는 세 가지 핵심역량을 키우고 활용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풀어 보면 매출신장과 수익창출, 직원복리, 주주이익, 사회기여 등 각 기업이 공유하고 있는 핵심 가치를 놓고 다양한 방법론과 전략이 제시될 때 치우치지 않고 잘 듣는다는 메시지를 줘야 `좋은 정치`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의견을 누가 의견을 제시했는지에 관계없이 선택하는 결단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마지막으로 선택된 의견은 반드시 회사의 자원을 투입해 실행한다는 의지도 보여줘야 한다. 만약 CEO가 세 가지 핵심역량을 투입해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다면 오너나 CEO의 의중이나 판단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임직원들은 곧바로 `줄서기 정치` `나쁜 정치`로 빠져들게 된다. 이를 현재 가장 잘하고 있는 경영자로 한 대표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을 꼽았다. 그는 “이건희 회장이 선대 회장으로부터 배운 핵심 중 하나가 바로 `경청`이었다”며 “이러한 경청 의지와 기술이 같은 목표를 놓고 등장한 다양한 방법론과 전략을 균형감 있게 들어볼 수 있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한 대표는 이어 “좋은 정치가 활성화됐는지 여부는 결국 눈에 보이는 기업 성과와 임직원들의 승진인사 등에서 나타난다. 최근 출신 학교마저 다양해지고 있는 삼성의 임원 인사가 이 회장의 `세 가지 핵심역량 투입`이 성공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의 소지가 많은, 즉 `나쁜 정치`가 등장할 여지가 많은 가족기업ㆍ오너기업일수록 오히려 예측 가능한 시스템 안에서 임직원들을 `정치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승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