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정치학

에스코이어 5월호 기사

윤종용은 스타였다. 한국 기업 역사상 전무후무한 전문경영인이었다. 윤종용 부회장은 1997년 삼성전자의 총괄 대표이사를 맡았다. 당시 삼성 전자의 연매출은 2조원이 채 못 됐다. 2008년 퇴임할 때 삼성전자의 연 매출은 70조원을 넘어섰다. 10년만에 회사를 35배나 성장시켰다.

윤종용 부회장을 발탁한 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었다. 윤종용 부회장은 1980년대 중반 삼성전자에서 현대전자로 이직했다. 이건희 회장은 1987년 취임하면서 윤종용 부회장을 다시 불렀다. 선대 이병철 창업주는 한 번 떠난 사람은 다시 쓰는 법이 없었다. 윤종용 부회장은 분골쇄신 일했다.

여기까지라면 미담이다. 훌륭한 오너가 뛰어난 경영인을 알아본다. 경영인은 오너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마음껏 뛴다. 스타 ceo가 된다.

이제부터가 이면이다. 윤종용 부회장은 스타로 키워진 게 아니다. 스스로 살아남아서 스타가 됐다. 이건희 회장이 윤종용 부회장을 다시 부른 건 맞다. 이유가 있었다. 이건희 회장은 아직 젊은 후계자일 뿐이었다. 왕위에 올랐다고 왕노릇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새로운 최고경영자가 조직을 장악하는 가장 빠른 방법 가운데 하나가 떠난 사람을 불러 들이는 리턴 인사다. 사람이 조직을 떠나는 가장 빈번한 원인은 사내 정치다. 권한 다툼과 자리 다툼이 사내 정치의 본질이다. 윤종용 부회장이 삼성을 떠난 것도 생산량을 무리하게 10배로 늘리라는 상사의 지시에 맞섰기 때문이었다.

리턴 인사로 리턴 매치가 벌어진다. 조직에 뿌리가 없는 신규 인재는 왕따나 당하기 일쑤다. 리턴 인재는 조직을 잘 안다. 리턴 인재가 회사를 떠날 수 박에 없었던 명분에 동의하는 후배들이 많다면 지지 기반으로 삼을 수 있다. 리턴 인재를 통해 회사의 새로운 인맥을 조성하는 게 가능하다. 실제로도 윤종용 부회장을 통해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 조직을 장악할 수 있었다.

윤종용 부회장은 1997년 삼성전자의 총괄 대표이사를 마았다. 명실상부한 스타 ceo가 됐다. 이때부터 윤종용 부회장의 사내 정치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사실 삼성그룹의 대내적 2인자는 이학수 부회장이었다. 윤종용 부회장과 이학수 부회장은 모두 같은 시기에 삼성전자 ceo와 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윤종용 부회장한텐 이때가 가장 화려하지만 가장 위태로웠떤 시기였다. 위로는 이건희 회장이 있었다. 뒤에는 이학수 부회장이 있었다. 윤종용 부회장은 우선 삼성전자 안에 윤종용 라인을 구축했다. 반도체의 황창규, 전자의 이윤우, 정보통신의 진대제, 휴대폰의 이기태 같은 인물들을 포진시켰다. 모두가 지금도 삼성전자의 기술 전성기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덕분에 이학수 부회장의 비서실 라인과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이학수 부회장은 인사와 재무를 틀어쥐고 각 계열사를 중앙 통제했다. 윤종용 라인한테도 강력한 무기가 하나 있었다. 실적이었따. 윤종용 라인은 하나같이 기술과 영업에 능했다.

자기 라인을 구축한 다음엔 명분을 세웠따.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대의였다. 정치는 대의명분 싸움이다. 기업의 사내 정치라고 다르지 않다. 윤종용 부회장은 품질과 경쟁력에 관련된 부분에선 결코 양보하는 법이 없었다. 필요하면 이건희 회장한테도 직언했다. 이학수 부회장과도 맞섰다. 그만큼 명분이 쌓여갔다. 세력도 커졌다.

결국 윤종용 라인은 이학수 라인과 맞짱을 뜬다. 2006년 S-LCD 사업을 둘러싼 공방전이었다. S-LCD는 삼성전자와 소니가 반반씩 투자한 합작법인이었다. 손실만 봤다. 사실 S-LCD 사업의 뒤엔 오너 일가가 있었따. 당연히 이학수 부회장은 조용히 무마하려고 했다. 윤종용 부회장은 청산하자는 입장이었다.

이 일은 결과적으로 양쪽이 서로를 인정하는 계기가 됐다. 삼성그룹은 2006년 기존의 구조조정본부를 축소하고 삼성전략기획위원회를 설치한다. 이학수 부회장이 이끄는 구조조정본부가 독점해온 전략기획업무를 삼성전략 기획위원회로 일부 돌려놓은 셈이었다. 이학수 부회장이 위원장이었다. 윤종용 부회자이 좌장이었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삼성그룹은 윤종용 라인이 끌고 있따. 신종균 삼성전자 모바일 부문 사장과 윤부근 삼성전자 생활가전 부문 사장도 모두 윤종용의 후계자들이다. 반면에 이학수 부회장의 라인은 대부분 일선에서 퇴진했다. 오랜 동안 이학수 라인이 총괄해온 구조조정본보의 후신인 미래전략실도 최지성 부회장이 맡고 있다. 최지성 부회장은 윤종용 부회장의 직계다. 기술과 영업통들이 인사와 재무통들을 압도한 셈이다. 윤종용 라인이 이겼다. 윤종용이 이겼다.

스타가 기업을 키운다. 기업 실적만큼 팔레토의 법칙이 딱 들어맞는 경우도 드물다. 20퍼센트의 인력이 나머지 80퍼센트를 먹여 살린다는 얘기다. 당연히 20퍼센트한테 주어지는 권한과 보상이 나머지 80퍼센트를 압도할 수 밖에 없다. 안 그러면 20퍼센트는 더 큰 보상을 찾아 떠나기 때문이다.

20퍼센트의 주류가 있으면 그 안에서 스타도 나온다. 경쟁력 있는 기업은 이런 스타를 통해 주류를 조성하고 주류를 통해 전체를 통제한다. 스타는 기업한텐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 스타를 중심으로 주류 집단이 형성된다. 주류가 되기 위해 비주류도 노력한다. 대외적으로는 스타가 기업의 얼굴마담 역할도 한다. 스타 본인은 발군의 능력으로 기업을 끊임없이 혁신시킨다.

정작 스타를 키우는 기업은 없다. 모순이다. 스타가 있어야 기업이 성장한다. 그런데도 기업은 스타를 키우지 않는다. 키우지 않는게 아니다. 키우지 못한다. 사내 정치 때문이다. 기업은 경쟁을 먹고 산다. 기업의 대외 경쟁력은 기업 내부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하냐에 달려있다. 기업이 인위적으로 스타를 키우면 오히려 내부 경쟁력이 훼손된다. 경쟁은 공정해야 하기때문이다. 그렇다고 경쟁에서 올라오는 자가 곧 스타인 것도 아니다. 기업은 민주적인 조직이 아니다. 차별적 조직이다. 능력에 따라 계급도 나눠진다. 그렇다고 성과 관리가 완벽한 것도 아니다. 열심히 일한다고 알아주는 것도 아니란 얘기다. 대부분의 기업은 민주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이전투구에서 이겼다고 진정한 스타감은 아니란 말이다.

결국 기업에서 경쟁력 있는 스타가 등장하느냐는 전적으로 사내 정치의 효율성과 스타의 개인적 역량에 달려있게 된다. 기업마다 사내 정치의 효율성은 제각각이다. 어떤 사내 정치는 스타의 등장 자체를 막아버릴 수도 있다. 능력은 있지만 사내 정치를 돌파하지 못해서 스타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스타는 싫든 좋든 주어진 사내 정치를 거쳐야 비로소 탄생한다. 안 그러면 진정한 스타는 나오지 않는다. 스타나 나오지 않으면 기업의 경쟁력은 약화된다. 여기서 착각하면 안 된다. 원인은 스타를 키우지 못해서가 아니다. 사내 정치의 비효율성과 비생산성에 있다.

역설적으로 한국의 오너 대기업은 스타가 등장하기에 적절한 조직 구조다. 상식이 뒤집힌다. 오너가 스타를 시기하고 질투할 거라고 여기면 오산이다. 오너의 권위는 신성불가침이다. 스타가 아니라 조물주다. 오너가 유난히 질투심이 많고 나서기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일단은 더 쉽게 스타를 용인한다.

윤종용 부회장이 그런 경우였다. 삼성그룹만 그런 스타를 배출한 게 아니다. LG 그룹은 김쌍수 회장과 남용 부회장을 배출했다. 현대자동차그룹엔 피터 슈라이어가 있다. 오너한테 권한만 위임받는다고 스타가 되는게 아니다. 이제부턴 사내 정치에서 이겨야 한다. 그런 면에서 윤종용 부회장은 교과서적인 스타 CEO다. 자기 라인을 만들고 명분을 세우고 실적을 올리고 그 힘으로 권한을 확대했다. 결국 자기 라인을 회사의 주류로 만들고 퇴임했다. 반면에 남용 부회장은 그렇지 못했다. 스타 CEO였지만 LG전자를 혁신하는데 실패했다. 외국인 인력을 중용한 게 화근이었다. 사내 입지만 줄여놓았따. 사내 소통마저 단절됐따. 무엇보다 실적을 내지 못했다.

한국 스타 CEO들은 끝내는 오너와의 갈등 탓에 밀려나는 경우가 빈번하다. 양면적이다. 오너는 스타의 등장을 용인하면서도 한편으론 견제 구도를 만들어 놓는다. 이건희 회장은 윤종용 부회장과 이학수 부회장을 경쟁시켰다. 이건희 회장이 윤종용 부회장을 미워해서도 아니고 못 믿어서도 아니다. 사내 정치의 원리도 견제와 균형이다. 이런 사내 정치를 딛고 일어서야 진정한 스타 CEO가 될 수 있다.

물론 스타의 몰락이 오너와의 개인적 관계가 꼬여서인 경우도 있따.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이 대표적이다. 정주영 왕회장 시절 능력을 인정받아서 현대건설 사장까지 승승장구했다. 정주영 회장과의 갈등 떄문에 회사를 떠나야 했다. 원인은 정주영 가신들과의 갈등 탓이었다. 범현대 그룹에선 오너와 갈등을 빚은 스타 CEO가 적지 않다. 오랜 동안 현대 계열 기업들은 가신 그룹에 의해 주도됐다. 가신 그룹은 스타의 등장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견제한다. 결국 오너와 스타 사이를 이간질한다.

그래도 주인 있는기업이 주인 없는 기업에 비하면 스타의 존재에 더 열려있다. 금율권은 충분히 스타들이 속출할 수 있는 분야다. 실적으로 말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정작 한국의 은행과 증권사는 스타 양성소가 아니다. 오히려 스타가 더 적다. 모두가 스타가 될 수 있는 조직에선 사내 정치가 오히려 스타의 배출을 막고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도 있따.

한국시티은행이 전형적인 사례다. 한국씨티은행은 최근 고객 정보가 유촐되면서 곤욕을 치렀따. 영업이익이 수년째 감소하면서 지점을 30퍼센트 가까이 폐쇄하는 극약 처방까지 내렸다. 한국씨티은행은 분명 쇄락하고 있따. 한국씨티은행의 하영구 회장은 10년 넘게 장기 집권하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은 사실상 포스트 하영구가 없다. 이렇다 할 스타 금융인을 배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영구 회장의 독주 체제가 워낙 공고한 탓이다. 스타는 잠재적 대권 주자가 될 수 있다.

과거의 신한금융지주도 비슷한 경우였다. 라응찬 회장의 독주 체제가 20년 넘게 계속 됐다. 끝낸 경영권을 놓고 갈등을 빚었던 라응찬 전 회장과 신상훈 전 사자아의 싸움은 회사 밖에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오너와 스타 사이보다 스타와 스타 사이의 사내 정치가 더 복잡하고 어렵다. 봉건제보다 공화제에서 권력 투쟁이 더 치열한 법이다.

삼성은 스타를 배출하는 사내 정치를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해온 기업이다. 덕분에 사내 정치의 역학 관계가 회사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하는 데 성공했다. 또 윤종용이라는 사내 정치력까지 겸비한 기술 임원이 있었다. 윤종용 부회장이 사내 정치에서 최종 승리한 덕분에 삼성전자는 영업 효율성과 기술 경쟁력을 최우선시하는 조직으로 진화활 수 있었다.

스타가 기업을 키운다. 스타를 원한다고 스타가 나오는게 아니다. 모든 건 사내 정치학에 달려있따. 그러니까 사내 정치를 이겨내고 스스로 스타가 된 진짜 스타가 기업을 초일류로 만든다. 기어을 초일류로 만드는 건 8할이 스타의 사내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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