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성능 투자` 의 역설

어떤 컨설컨트는 경영자에게 핵심역량에 집중 투자하고 비관련 사업에 투자를 삼가라고 권한다. 반면 다른
컨설턴트는 경영자에게 기존 사업과는 다른 새로운 사업모델로 `창조적 파괴`의 변화를 추구하라는 조언을 한다. 그렇다면 경영자는 이 두 갈래
길에서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사례1=1990년대 초 미국 일회용 배터리 산업은 듀라셀, 에너자이저, 레요박 3개사가 시장을
90% 점유하면서 17%에 이르는 높은 수익성을 보이고 있었다. 면도기 사업에서 혁신 차별화 전략으로 공격적 성장을 이룬 질레트는 1996년
듀라셀 인수를 통해 일회용 배터리 시장에 뛰어들었다.

같은 소비재 생활용품회사였던 질레트는 면도기 시장에서 성공했던 전략을 배터리
산업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자해 배터리 수명을 높인 `울트라` 등 신제품을 통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듀라셀 시장점유율은 조금 상승했지만 20%를 넘던 수익성은 2000년 15%대로 추락했다. 이어 경쟁사인 에너자이저가 신제품 대응
출시에 이어 경쟁 면도기 업체 시크(Schick)를 인수하는 등 반격에 나섰다. 질레트의 차별화 전략은 무엇이 잘못됐던 걸까.

#사례2=철강산업에서는 미니밀(mini-mill)로 불리는 전기로 업체들이 US스틸 등 고로 기술의 일관제철소들을 와해시켰다.
미니밀 업계가 1960년대 처음 생산한 제품은 콘크리트 철근으로 품질 수준이 가장 낮은 철강제품이었다. 당시 철근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일관제철소들은 기꺼이 철근 시장에서 물러났다. 이후 미니밀 업계는 일관제철소가 약 12% 이익률을 올리던 앵글철강 시장에 눈을 돌렸고
일관제철소는 앵글철강 생산라인도 기꺼이 정리했다. 미니밀은 이익률이 18%대에 시장 규모도 앵글철강에 비해 3배인 구조용 형강 시장까지
진출했다. 결국 미니밀은 최상급 시장인 강판까지도 진출했다. 제품 질과 수익성을 중시하던 일관제철소들 전략이 잘못됐던 것일까.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사례3=반면 삼성전자는 세계 메모리산업에서 20년간 선두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D램, 스택(stack)
방식, 낸드(NAND) 플래시메모리 등 과거 삼성전자가 택했던 제품이나 생산공정 기술들은 선두체제를 강화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1992년 D램 부문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 이래 1996년 1GB D램을, 2001년 4GB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후
2003년 플래시메모리 세계 1위, 2010년 30나노 공정 개발에 이어 2012년 SSD 부문 세계 1위에 올랐다.

이처럼
질레트와 일관제철소 업체들의 기술혁신과 사업 전개는 왜 실패로 귀결되고 삼성전자 메모리 산업 내 기술혁신과 사업 전개는 왜 성공으로 끝난
것일까. 이는 산업별 제품 수요 체계 특성에 달려 있다.

어떤 컨설컨트는 경영자에게 핵심역량에 집중 투자하고 비관련 사업에 투자를
삼가라고 권한다. 반면 다른 컨설턴트는 경영자에게 기존 사업과는 다른 새로운 사업모델로 `창조적 파괴`의 변화를 추구하라는 조언을 한다.
그렇다면 경영자는 이 두 갈래 길에서 어떤 길을 가야 할까.

◆ 피라미드형인가 역피라미드형인가

 기사의 2번째 이미지
피라미드형은 낮은 성능과 낮은 마진인 로엔드(low-end) 시장의 수요가 많고, 성능과 마진이 커질수록
시장 규모가 줄어드는 형태다. 반대로 역피라미드형은 로엔드 시장 수요가 적은 대신 성능과 마진이 커질수록 시장 규모가 커지는 형태다.

피라미드형은 상층부로 갈수록 시장이 점차 줄어들어 제품 성능을 올리는 차별화 전략은 기업 성장에 효과가 없다. 이때 피라미드
하층부에선 치열한 가격 경쟁이 일어날 것이다. 일회용 배터리 산업은 피라미드형으로 볼 수 있다. 듀라셀과 에너자이저가 배터리 수명을 대폭 늘린
신제품을 개발해 시장에 내놓았지만 소비자들은 이에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 기업의 차별화 전략으로 이득을 본 것은 저가형 제품으로 원가우위를
추구한 레요박이었다.

반면 철강산업에서 제품 수요 체계는 역피라미드형으로 철강 품질이 높을수록 높은 마진을 기록했다. 철강업체들의
차별화 전략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이었고 고객도 높은 마진으로 보답했다.

이러한 역피라미드형 산업의 기업들에 아킬레스건은 바로 저가
경쟁자의 출현이다. 역피라미드형 산업구조는 저원가 업체가 진입하기 쉽다. 콘크리크 철근 시장 비중이 상층부보다 작아 기존 일관제철소 기업들이
이를 쉽게 포기했고 전기로 업체는 단계적으로 상층부의 앵글철강과 형강, 철판을 공략해나갔다.

◆ 성장하는 제품 피라미드인가

피라미드가 성장하는냐 아니냐 여부도 중요하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용량이 늘어날수록 노트북과 모바일 기기의 수요 증대로 더 높은
가치를 얻을 수 있었다.

즉 제품 성능 향상에 따라 피라미드가 성장했다. 메모리산업은 기존 기술의 연속선상에서 성능을 높이는
혁신이 기업성장을 이끌 수 있었다.

기술 투자를 늘려 지속적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반면 일회용 배터리처럼 수요 체계가 정체된 피라미드 형태에선 차별화를 위한
성능 투자는 무의미하다. 높은 성능에 가치를 부여하는 구매자가 적기 때문에 과잉투자로 인한 손실만 입게 될 것이다.

[박경민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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