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MBA] 110년 `할리` 살리려 `할리` 만 남겼다

110년은 긴 시간이다. 기업 평균 수명이라고 해봐야 30년 남짓이고, 브랜드 수명은 10~15년에 불과하다. 110년 동안 한 브랜드가 꾸준한 성과를 내며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할리데이비슨이 특별한 지점은 여기가 아니다. 110년 전에 만들던 모델을 그대로 유지해 지금까지도 만들고 있다는 점, 110년 전 감성이 지금까지 통한다는 것, 그리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빠짐없이 수익을 내고 있다는 점이 이 브랜드가 살아온 시간보다 더 놀라운 일이다.

이 브랜드는 마니아들 사이에선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동종 업계에서 브랜드 가치 1위 자리를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할리데이비슨`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사람들이 연상하는 이미지는 거의 비슷하다. `심장을 두근거리게`하는 엄청난 배기음을 내뿜는 거대한 모터사이클, 그리고 가죽재킷과 부츠로 무장한 마초맨들이다.

핵심 키워드로 브랜드를 풀어내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자유`와 `저항`이라는 두 가지를 제시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한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가 백이면 백 비슷하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오랜 기간 브랜드 아이덴티티 정립을 정교하게 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특히 브랜드 이미지에 주력 제품 외에 고객들 이미지까지 투영됐다는 점에 대해 브랜드 전문가들조차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

물론 할리데이비슨에도 굴곡은 있었다. 올라만 가던 매출이 하락세를 보이며 브랜드마저 가치 하락 현상을 보인 것이다.

전통을 중시하는 할리데이비슨이었지만 2009년 위기에 처한 브랜드를 구할 구원투수로 외부 출신인 키스 완델을 영입했다. 그는 할리데이비슨 역사상 두 번째로 외부에서 영입된 최고경영자(CEO)였다. CEO가 되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할리데이비슨을 직접 경험한 적이 없는 남자였다.

그러나 그는 외부 출신에 대한 편견을 완벽하게 극복하고 단숨에 매출을 전성기 시절로 돌려놓았다. 포천 100대 기업인 존슨컨트롤스 사장을 지내다 영입된 그는 할리데이비슨 특유의 외부에 투영되는 문화나 이미지는 바꾸지 않으면서 과감한 구조조정의 칼을 뽑아 브랜드 2개를 없애는 등 체질을 완벽하게 개선했다.

완델 CEO는 최근 매일경제 MBA팀과 이메일 인터뷰를 하면서 “그동안 할리데이비슨이 내린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개선해 나갈 부분을 빨리 파악하는 것이 내 임무였다”면서 “겉으로 보이지 않는 제품 개발과 제조 유연성 강화, 과감한 브랜드 철수 등을 통해 나 자신을 할리데이비슨에 적합한 CEO로 `트랜스포밍`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이다.

-할리데이비슨 역사상 두 번째 외부 영입 CEO다. 두려움은 없었나.

▶특별한 고충은 없었다. 다만 할리데이비슨 고유 문화가 오랫동안 지속돼왔고, 그동안 내린 많은 결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우리에게 닥친 문제는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를 빨리 파악해야 하는 부담감은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나는 외부에서 왔기 때문에 객관적인 눈으로 할리데이비슨이 다른 곳들과 맺고 있었던 비즈니스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문제를 판단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또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내부 사람 관점에선 선뜻 하기 어려운 결정을 나는 빠르고 쉽게 내릴 수 있었다.

-어떤 문제가 있다고 파악했고, 어떻게 개선했나.

▶일단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했다. 내가 했던 가장 어려운, 하지만 할리데이비슨을 되살리기 위해 내렸던 가장 중요한 결정은 뷰엘(Buell)과 MV 어구스타(Augusta) 브랜드를 없애고 생산을 중단한 것이다. 할리데이비슨이라는 핵심 브랜드에 집중하기 위해선 필수적인 선택이었다. 또 콘셉트 구상에서부터 제품 제작에 돌입하는 단계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제조 유연성 향상이 필수였다. 이를 위해 제조 부문에 대해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런 노력을 기울인 결과 제품 공급이 훨씬 빨라졌고, 딜러들 영업이 한결 수월해졌다. 사람들은 할리데이비슨을 소유하기를 꿈꾼다. 그리고 나는 CEO로서 그런 고객들 꿈을 실현하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장애물을 쳐낼 의무가 있다.

-3개 브랜드 중 2개를 없애는 것은 아주 엄청난 작업 아닌가.

▶당시 두 브랜드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그 누구도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뷰엘은 17년 동안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고, MV 아구스타는 인수 후 아무런 시너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됐다. 그런데도 신모델은 개발해야 하기 때문에 돈은 계속해서 엄청나게 들어가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이럴 땐 과감하게 두 브랜드를 없애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브랜드에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할리데이비슨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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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데이비슨은 구조조정 이후 나은 체질을 갖추게 됐지만, 두 브랜드를 없애면서 판매대수는 줄었다. 2009년 키스 완델 최고경영자(CEO) 부임 당시 22만3023대였던 글로벌 판매는 이듬해 21만494대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2011년 23만3177대, 2012년엔 24만7625대를 판매해 2009년 판매대수를 이미 넘어섰다. 완델 회장이 부임했던 2009년 전해에 비해 10억달러 이상 감소한 매출 47억8190만달러를 내며 표류하던 할리데이비슨은 2011년 53억1171만달러, 2012년 55만8050만달러를 기록해 전성기 시절 매출인 60억달러를 향해 가는 중이다. 키스 완델 CEO는 이제 구조조정을 마쳤으니, 브랜드에 집중하고 이 브랜드를 널리 퍼지게 하기 위한 유연한 생산ㆍ유통구조 마련, 외국시장 진출 확대 등 목표를 향해 뛰겠다고 다짐했다.

-브랜드 구조조정만큼 엄청난 인력 구조조정도 화제였다. 펜실베이니아 요크 공장 직원 2200명 중 1200명이 구조조정 대상이었다.

▶정말 힘들고 끔찍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할리데이비슨에 오기 전에도 이런 일을 오래 해왔기 때문에 이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는 점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었다. 각지에 위치한 제조공장 비용 효율성을 증가시키고, 유연한 장기 노동협약을 위한 재협상을 진행했다. 또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아웃소싱으로 돌려 인력 감축에 따른 생산 차질을 막았다. 이 같은 생산 유연성 확보는 결국 회사와 고객에게 모두 이득이 됐다. 제품 개발 기간은 5년 반에서 3년 반으로 줄었다. 제품 공급 사이클이 줄어드니 딜러들이 고객에게 집중할 시간도 늘어났다.

-브랜드와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을 어느 정도 마쳤는데, 다음 목표는.

▶`아웃리치 시장(Outreach Market)` 공략과 외국 시장 강화다. 18~24세 젊은 층, 여성층, 아프리카계 미국인, 히스패닉을 일컫는 `아웃리치`는 할리데이비슨의 떠오르는 시장이다. 특히 미국에서 할리데이비슨은 이들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 입맛에 더 맞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고객별ㆍ나라별로 선호하는 제품이나 즐기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는 만큼 우리는 이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고객에 대한 스터디는 어떤 방식으로 하나.

▶내가 직접 경험한 바로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과 기존 시장으로 분류되는 미국과 유럽 시장 고객은 완전히 달랐다. 일단 아시아 시장에선 모터사이클이 단순 이동수단으로 여겨졌지, 그 이상이 아니었다. 또 모터사이클 구매를 위한 금융 프로그램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모터사이클을 탈 수 있는 면허 소지자도 많지 않았다. 이런 문화적 차이는 그냥 사무실에 앉아서 파악되는 것이 아니다. 밖으로 나가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고, 그 지역 라이더들을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관심을 가지는 이슈가 뭔지에 귀 기울여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모터사이클이 레저 스포츠라는 인식을 주기 위해 회원 30명과 함께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만리장성까지 가는 이벤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젊은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이들을 잡기엔 할리데이비슨 제품의 가격 장벽이 너무 높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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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람들은 우리 제품이 엄청난 고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초보자용 입문용 제품은 7000달러 정도에도 구입할 수 있다. 이 모델들에 대한 수요가 분명히 존재하는 만큼 꾸준히 개발하고 판매할 계획이다.

-외국 시장 강화는 다소 뻔한 목표 같기도 하다.

▶그동안 국외 판매엔 다소 제약이 있었다. 북미에서 대부분 제품이 팔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리데이비슨 브랜드 강화를 위해 세계 각국에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필수다. 또 할리데이비슨이 `오만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고객이 원할 때 제대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딜러십 강화는 꼭 필요했다. 나만 해도 할리데이비슨 CEO로 부임하기 전에 “할리데이비슨을 구입하려면 1년은 기다려라”는 딜러 답변에 화가 나 다시는 할리데이비슨 숍을 찾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CEO로 취임한 직후인 2009년에 5년 안에(2014년까지) 외국에 100~150개 딜러십을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2012년 5월로 국외 딜러십 개수는 이미 100개를 넘었다.

-다른 브랜드와는 어디에 차별성이 있고, 이들과 벌이는 경쟁은 어떻게 극복하나.

▶모터사이클 브랜드는 생각보다 많다. BMW나 두카티, 혼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일단은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제품에 브랜드만의 독특한 색깔을 드러내야 한다. 할리데이비슨은 디자인, 소리, 느낌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브랜드 색깔을 보여주는 브랜드다. 또 할리데이비슨 라이더들은 함께 어울려 타기 때문에 동호회인 `H.O.G.` 활동이 어느 브랜드보다도 활발하다. 이렇게 보면 할리데이비슨은 제품뿐 아니라 삶의 경험을 판다는 점에서 경쟁사와 차별되는 포인트가 있다고 본다. 또 이런 좋은 제품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시장 개척도 필수적이다. 중국 인도 브라질 같은 시장 개발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 이유다. 중국에는 2011년 딜러십이 5개에 불과했지만 최근엔 13개까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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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할리데이비슨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모터사이클`을 탄 `거친 중년 남자` 이미지에 대해선 어떤 생각인가.

▶40대 이상 고객이 우리 핵심 계층이라는 것을 부인하진 않겠다. 하지만 젊은 층이나 여성도 우리 고객으로 점차 편입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아울러 이런 확실한 브랜드 이미지 덕분에 제품 재구입률이 그 어떤 브랜드보다 높아 우리 브랜드 이미지는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보고 있다. 우리 고객들은 3년 반에서 4년마다 새로운 제품을 구입하는데, 우리 브랜드 내에서 다른 제품으로 갈아타지, 다른 브랜드로 잘 옮기지 않는다.

-110년 전 만들었던 모델을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만들지만, 새로운 제품 개발에도 적극적인 이유인가.

▶그렇다. 브랜드는 잠들지 않고 깨어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새로운 제품 개발이다. 여기에 최신 기술과 디자인까지 결합하면 고객 만족도는 올라가게 돼 있다. 최근 할리데이비슨에서 발표한 `프로젝트 러시모어`는 더 좋은 제품을 만들려는 의지에서 시작됐다(프로젝트 러시모어란 할리데이비슨 인기 모델 중 라이더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사양을 최신 기술력과 스타일에 접목시켜 완전히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2014년 프로젝트다).

-이미 CEO로 부임한 지 4년이다. 앞으로 할리데이비슨 미래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취임 당시부터 나는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을 강조해 왔다. 전 세계적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탄탄한 경영진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리더십 개발과 CEO 승계 계획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회의를 한다. 또 할리데이비슨은 미래 지구를 보호하기 위한 활동도 계속하고 있다. 모터사이클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대한 줄이려고 한다.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할리데이비슨이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로 남는 것이다. 아주 커다란 도전이 되겠지만 아시아 시장 중 북한에서 `자유`를 상징하는 할리데이비슨이 달릴 수 있다면 정말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 He is…

키스 완델(Keith Wandel)은 2009년 위기에 처한 할리데이비슨에 구원투수로 투입된 외부 출신 CEO다. 취임 후 총 3개 브랜드 중 2개 브랜드를 없애고, 펜실베이니아 요크 공장 인원을 절반 가까이 줄이는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강력한 리더십을 보이며 주목받았다.

외국 시장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완델 CEO 영입 이후로 평가된다. 할리데이비슨에 합류하기 전까지는 21년간 존슨컨트롤스와 함께하면서 회사를 포천 100대 기업에 오르게 할 정도로 성장을 일궈냈다.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데이턴대에서 MBA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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