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MBA] 잘 나가는 비결? 보스가 없기 때문

보스 없는 직장 고어社 켈리 CEO 인터뷰
혁신제품 1000여종 개발, 연매출 30억달러, 50여년간
흑자경영
다수에 의한 의사결정 좀 느려도 실행단계선 무서운 추진력 발휘
◆ 보스 없이 잘나가는 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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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5년차인 A씨. 회사는 A씨에게 새해를 맞아 거래처에 선물할 2013년 달력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다. A씨는 디자인부터 모든 것을 도맡아가며 밤새 시안을 만들었다. A씨의 시안은 부장의 손을 거쳐 상무, 전무, 대표이사의 승인을 받고 나서야 제작에 돌입할 수 있었다. 그렇게 탄생한 달력에 뒤늦게 문제가 발견됐다. 10월 달력에 실린 신상품 사진 설명에 치명적인 오타가 발생한 것.이 문제는 다시 부장을 지나 상무, 전무의 보고 라인을 통과해 대표이사의 책상까지 올라갔다. 대표이사는 사원들의 기강을 잡겠다는 차원에서 달력 수정 비용을 A씨의 월급에서 제하기로 했다. 이 조치는 대표이사, 전무, 상무를 거쳐 결국 부장의 “너 덕분에 내 출세길도 막히겠다”는 비아냥과 함께 A씨에게 전달됐다. 이쯤에서 A씨는 화가 울컥 치민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달력 하나 만드는 데 왜 이렇게 많은 결제 라인이 필요할까. 그리고 마법사도 아닌 `그들`은 왜 손가락으로 지시만 내리는 것일까. 그들은 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일까. 그런데도 왜 그들은 회사에 존재해야 할까.

글로벌 인사컨설팅 업체 타워스왓슨은 지난해 세계 29개국의 직장인 3만2000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필요성에 대해 물었다. 10명 중 6명꼴로만 그들이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한다고 답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 비율이 41%로 뚝 떨어졌다. 국내 직장인 중 49%만이 `그들`이 자신을 존중해준다고 답했다. `그들`은 때론 가족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당신과 보내는, 당신의 `보스(Boss)`다.

그러나 보스가 없는 `보스 청정지대`도 존재한다. 아웃도어 의류 원단 `고어 텍스`로 유명한 미국 기업 `고어(Gore)`가 대표적이다.

글로벌 화학기업 듀폰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던 빌 고어는 소규모 비밀 프로젝트팀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다. 서로를 잘 알았던 팀원 사이에서 보스는 없었다. 동료들만이 존재했다.

그는 이 소규모 팀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회사를 만들길 원했다. 듀폰에 사표를 던진 빌 고어는 1958년 1월 자신의 집 지하실에 회사를 설립했다. 회사명은 `고어와 동료들(W.L. Gore&Associates)`. 창립자의 철학이 녹아든 회사 명칭처럼 고어의 사전에는 `동료(Associate)`는 있지만 `보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보스가 없다보니 자연스레 부하직원, 직위, 서열, 권위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선장 없는 배`를 연상시키는 고어의 성과는 놀랍다. 보스가 없는 고어는 30여 나라에서 연간 30억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50년 가까이 순이익을 남긴 고어는 의료ㆍ섬유ㆍ전자 부문에서 1000여 종의 혁신 제품들을 생산해낸다. 이직률은 미국 기업 평균의 3분의 1 수준이다. 미국ㆍ영국ㆍ독일ㆍ이탈리아 등 세계 각국에서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선정됐다.

매일경제는 `보스 없는 직장`의 비밀을 풀기 위해 테리 켈리 고어 최고경영자(CEO)를 최근 서면 인터뷰했다. 2005년 동료들의 설문조사를 통해 리더십을 인정받아 CEO의 자리에 오른 켈리 CEO는 “내게 CEO는 흔히 고위직 하면 떠오르는 권력과는 전혀 무관하다”며 “동료들이 같은 목표를 향해 소통하며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각자에게 적절한 권한을 나눠주는 것이 내 임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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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켈리 CEO와의 일문일답이다.-고어에는 왜 보스가 없나.

▶고어에는 임원진이나 조직도가 없다. 정말 몇 안 되는 동료만이 대외용 공식 직함을 갖고 있다. 창립자 빌 고어는 수직적인 경영 조직 대신 수평적이고 동료끼리 상호 연관성이 높은 `격자(lattice)` 조직이란 새로운 개념을 고안해냈다. 격자 조직은 소규모 팀의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반영해 협력을 극대화한다. 고어는 소규모 팀별로 동료들이 주체가 돼 각자 알아서 일하는 자기경영(self-management) 시스템을 통해 돌아간다. 동료들이 서로 돕는 문화 속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보스는 필요없다. 대신 팀을 성장시키고 동료들의 성공을 극대화하기 위한 리더(leader)는 존재한다. 리더는 동료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리거나 통제하는 보스와는 다르다. 지식과 기술, 일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이 조직 안에서 자연스럽게 리더로 떠오른다.

-당신은 동료들의 지지를 통해 CEO에 선출됐다. CEO로서 당신의 역할은.

▶난 내 열정과 헌신을 바쳐 고어의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의 역할은 동료들에게 리더십과 권한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그 결과 CEO는 보다 더 장기적인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회사의 목표와 비전을 세우고 기업 문화에 맞는 업무 환경을 유지하는 게 나의 일이다. 물론 회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 발생하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업무의 상당 부분을 동료들과 소통하는 데 사용한다. 동료와 소통을 통해 조직에서 어떤 일이 어느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지금껏 보스는 당연한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점점 더 많은 기업에서 보스를 없애고 있다. 복종의 문화가 기업 경쟁력을 훼손하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고어와 모닝스타컴퍼니는 직원들의 창조와 자율성을 믿고 보스를 없앤 대표적인 기업이다. 크리스 루퍼 모닝스타컴퍼니 창업자는 “인간은 자기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때 가장 생산적이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MBA팀은 테리 켈리 최고경영자(CEO) 등을 인터뷰해 두 회사가 보스 없이 성장할 수 있는 비결을 찾아보았다.

-고어는 직원들이 프로젝트 형식으로 각자 하고 싶은 일을 직접 찾아서 하는 방식이다. 나태한 무임승차자들이 생겨나지 않는가.

▶고어는 직원들이 `스위트 스팟(Sweet Spotㆍ야구방망이에서 공을 가장 멀리 보낼 수 있는 지점)`, 즉 자신의 재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고어의 전 직원은
자신의 업무를 직접 선택함과 동시에 책임을 진다.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 저절로 동기가 부여된다. 이 때문에 고어에서 동료의 게으름이 문제가 되는 상황은 거의 없다.

또한 매년 동료들끼리 서로 기여도에 따른 순위를 매기는 다면평가를 실시한다. 이 평가를 통해 누가 얼마나 회사를 위해 기여했는지 명백하게 알 수 있다. 잠재적으로 업무 수행에 문제가 되는 부분도 파악할 수 있다. 동료들은
서로를 실망시키지 않고 서로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디든 사내 정치꾼들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업무 성과를 부풀리거나 개인적인 평판관리에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다.

▶고어도 이런 문제점에 노출돼 있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고어 특유의 문화가 내부 갈등과 사내 정치를 감소시킨다고 확신한다. 고어는 사내 정치를 하거나 조직보다 자신을 더 중시하는 직원들에게는 혜택을 주지 않는다.

동료는 다른 동료를 돕고 팀에 기여하도록 권장한다. 이에 대한 기여와 보상을 확실히 한다. `동료 간의 건전한 압박(healthy peer pressure)`을 통해 (평판관리나 사내 정치가 아닌) 팀의 성공이나 회사의 목표를 깨닫고 이에 최선을 다하도록 만든다.

-동료들이 서로 평가를 하다보면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는 없나.

▶고어 창업자 빌 고어의 보상 철학은 확고하다. 성과에 대한 보상은 기업의 성공을 위해 노력한 동료의 기여도와 비례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상은 다른 동료들의 상대평가로 이뤄진다. 또한 타 공장과 비슷한 부서에서 유사한 업무를 하고 있는 직원의 보상내역도 참고한다. 재무적인 부분보다 질적 분석 결과를 중시 여긴다. 또한 과거ㆍ현재ㆍ미래 기여도를 통합해 동료들이 장기적으로 성과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회사는 상위 기여자에게 합리적이고 장기적인 투자와 결정을 내리도록 권고함과 동시에 단기 목표 달성에 치우치지 않도록 지원하고 있다.

-고어는 업무와 관련된 모든 동료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의사결정 속도가 늦춰질 수밖에 없다.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불리할 수 있다. 소수의 보스가 빠른 결정을 내려주는 것이 더 낫지 않나.

▶고어의 기본철학은 적절한 결정을 위해 특정 사안에 대한 지식과 책임을 갖고 있는 동료들을 의사결정 과정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초기 의사결정 과정에 너무 많은 동료를 포함시키면 실행에 돌입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거꾸로 많은 동료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한 만큼 해당 사안에 대해 당장 지원하고 움직일 준비가 된 상태란 뜻도 된다. 결국 실행 단계에서 빠른 추진력을 통해 오히려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비된 시간들을 상쇄할 수 있다. 반면 생명과 직결된 의료용품이나 고어의 명성에 해가 되는 등 긴급 상황에서는 의사결정이 매우 빠른 속도로 이뤄진다.

-아무리 다수의 동료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신중히 검토하더라도 잘못된 결정이 나올 수도 있다.

▶창립자 빌 고어는 종종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그건 충분한 리스크를 지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혁신을 위해서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흘수선(Waterlineㆍ배의 선체가 수면이 닿는 부분을 가르는 선)` 원칙이 있다. 우리는 각각 사안의 의사결정 이전에 리스크 여부를 주위 동료들과 상의하도록 돼 있다. 배의 흘수선에 비유해보자. 물이 닿지 않는 배 흘수선 윗부분에는 누구나 구멍을 뚫을 수 있다. 이처럼 일상적인 결정에는 자유가 허용된다. 반면 흘수선 아래 구멍을 뚫어 배가 침몰할 수도 있는 사안이라면 꼭 주변의 동료들과 의견을 나눠야 한다. 흘수선 토론은 결정에 대한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주요 결정에 대한 총체적인 책임의식을 갖도록 해준다.

-채용은 어떻게 하나.

▶고어에 들어오려면 평균 5~8명, 또는 그 이상의 동료들과 면접을 거쳐야 한다. 잠재적으로 같이 일할 동료들이 면접에 참여해 입사 희망자에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겠느냐”란 식의 질문을 던진다. 고어는 개인보다 팀과 동료 간 관계에 중심을 두는 인재를 찾는다. 예를 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사람보다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란 식으로 접근하는 인재를 좋아한다.

-고어는 전 세계 30여 개국에 진출해 있다. 유교나 카스트제도 등 계급 문화가 강한 곳에서는 고어의 문화가 자리잡기 힘들 것 같은데.

▶고어의 문화는 개인에 대한 믿음과 1대1 소통, 공정성과 신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건 어느 조직이나 필요한 범조직적 가치라고 생각한다. 한국ㆍ중국에서는 직책으로 개인의 일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 지역에서는 고객과 외부 사람과 업무상의 필요로 `직책(title)`을 표기한다. 그러나 고어에서 `리더`와 `직책`은 완전히 다른 의미다. 리더에게는 통제가 아니라 `팀으로 교류할 때 어떻게 행동하도록 기대되는지`가 요구된다.

고어는 세계 각국의 지사에서도 동료의 성공을 극대화하기 위한 `스폰서(Sponsor)` 제도를 운영한다. 스폰서는 고어에 새로 입사한 동료가 적응할 수 있도록 워크숍을 운영하고 고어의 문화가 사업 성공에 기여하는 역할을 설명해준다.

-고어는 공장이나 조직 인원이 150명을 넘으면 분사한다. 소규모 조직이 오히려 협업을 저해할 수 있지 않나.

▶우리는 조직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면 그 조직의 효율성이 저하된다는 점을 알아챘다. 조직이 커지면 팀원들이 서로 1대1로 유대관계를 맺기가 어려워진다. 진행 업무를 전체 팀원에게 공유하기 위한 소통 과정은 더 어려워진다. 팀이 중심을 잃거나 주요 사업기회에 대한 탐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고어는 큰 규모의 팀을 나눈다. 그를 통해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의 발굴을 가속화한다. 소규모 팀에서 동료들은 성장 기회를 얻는다.

-다른 기업들이 고어처럼 보스를 없애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과 접근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스를 없애려면 리더가 개인적인 권력과 통제에 대한 욕구를 내려 놓을 준비가 돼야 한다. 조직 내 다른 동료들과 자신의 권한을 나눌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기업의 많은 리더들은 수직 구조의 심플함을 선호한다.

만약 당신이 이 심플한 피라미드식 수직 구조의 정상에 올라 있는 사람이라면 고어의 모델을 적용할 생각이 없을지 모른다. 회사의 운영방식은 다양하니까.

■ She is…

기계공학과 최우등 졸업…집에선 네아이의 엄마

테리 켈리 고어 CEO는 1983년 미국 델라웨어대 기계공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뒤 고어에 입사했다. 켈리 CEO는 “고어에서
일하던 지인들이 고어의 보스 없는 경영법은 매우 독창적이며 엔지니어가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라고 추천했다”며 “30년 전
입사통지서를 받고 기뻐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켈리 CEO는 고어가 세계 각국 군인들의 보호복에 사용되는 고기능 섬유 소재를
만들고 판매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1998년에는 아시아의 첫 섬유 공장인 중국 선전 공장 설립을 추진했다. 4명의 자녀를 둔 켈리 CEO는 어린이 건강관리 관련 비영리 단체
`니머스`의 회원이기도 하다. 그는 “더 많은 여성과 소수민족이 고위 경영직에 오르면 미래 리더십에서 중요한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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